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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May 01. 2022

내가 지켜줄게 20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남아 있는 아이들 -


'어느 때부터 인가 대도시 골목에서는

길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기 어렵게 되었다.


아기 울음소리 같다며 소름 끼친다는 사람부터

새벽에 잠을 잘 수 없다며 예민해하는 사람들까지

그들을 자극하는

길고양이만의 독특한 울음소리가 있었지만,

요즘은 소리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습조차 보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작년에 자주 보던 아이들도,

옆동네를 주름잡던 아이들도 모두

마치 블랙홀에 빠져들어가듯

이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있는 것이다.


길고양이 수명이

길어야 2~3년이라는 말이 맞다면

짧은 수명 때문에 사라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2세들은 있어야 하며,

또한 그러한 것이 정상인데,

그들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사실

이 이상한 현상의 중심에는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분명한 원인 하나가 있다.


일부 사람들은

길고양이들이 쓰레기 봉지를 파 해쳐

집 주변을 지저분하게 만들고

새벽에는 귀신같은 어린아이 울음소리로

인간세상의 고요를 어지럽힌다고

생각해 왔다.


결국 그들은 대안을 만들어 냈는데,

길고양이들을 포획하여

중성화 수술을 한 후 방사하면

이상한 울음소리도 사라지고

길고양이들 역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은

정부 정책으로 시행되기 시작했고,

수년간 지속되면서

그들의 숫자는

눈에 뜨일 정도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지금은

포획된 길고양이들을 입양해 가는 사람들도

중성화되어 있는지 확인한 후

입양해 가는 경우가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고,

결국 길고양이들은 포획되어 보호되든

아니면 다시 방사되는 간에

중성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갇혀 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앞으로 길고양이는

인간 사회에서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사라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그들의

집단적 행위에 대한 의문부호는 생략한 채

중성화라고 하는 방침에

마치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처럼

그저 동의하게 되면서

길고양이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2세 생산의 권리를

강압적으로 박탈당하는

종족의 수모를 겪게 된 것이다.


123마리 이문냥이 고양이들도

모두 중성화 수술을 당했다.


자발적으로 하겠다는 아이들은 없었다.


구조하고 보호한 사람들이나

입양해간 사람들 모두

중성화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고

누구 하나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문냥이 고양이들의 세상도

시간이 지나 그들이 사라지고 나면

함께 소멸되고 말 것이다.


몇 년 후

새로 올라서게 될 대규모 아파트촌에는

옆 동네에 살고 있던 고양이 몇 마리가 들어와

걸어 다닐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가족을 만들어

오손도손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심각한 간 손상으로 삶을 달리 한 바둑이와

입양을 보내진 누이 하양이, 아빠 흰둥이,

그리고 혼자 길 위에 남겨진 엄마까지...

그들의 가족은 그렇게 흩어졌고,

그렇게 죽어갔으며,

그렇게 여기까지였던 것이다.'


봄의 경주가 잠시 뒷걸음치고 있던 어느 오후,

강렬한 햇살과 차가운 바람의 이중주를 바라보며

봉사자 세기창조는

이것  또한

그분의 뜻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깊은 사색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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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이


오복이는 삼색 고양이인데,

모습을 한 번 본 사람들은

그를 쉽게 잊을 수 없다.

유난히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지고 있는 오복이는

착하다는 말의 대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온순하면서도 크지만 귀여운 외모가

강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재개발 지역에 살 때에도

다른 고양이들을 무서워해서

혼자 있을 때를 제외하곤 밥을 주어도

제대로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

오복이는 쉼터에 들어온 이후 오히려

이곳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습식 사료는 전혀 입에 대지 않는 대신

건식사료만 즐겨먹는 습성이 있다.


찡찡이


노랑이의 단짝 찡찡이는

노랑이와 함께 입양을 갔다가

함께 다시 돌아온 아이다.

여전히 노랑이와 단짝을 저버리지 않고

쉼터에서도 노랑이 보호에 여념이 없다.



어느 때인가

동두천에서 온 태평이에게

노랑이가 혼나기 시작하자

노랑이를 대신해서

태평이와 거나하게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힘이나 노련미로는

태평이를 당할 수가 없었지만,

구내염으로 인해 대부분의 이빨을 뽑아낸

태평이의 신체적 한계 때문에

태평이에게 당하고도 태평이를 물어버린

행운의 사나이가 되었다.

이 싸움 이후로는

태평이도 노랑이를 혼내지 않고 있다.


노랑이


노랑이는 덩치가 매우 크다.

밥 양이 많아서 큰 것이라기보다는

원래 커다란 덩치를 타고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큰 몸집에 비해

성격은 온순해서

늘 다른 고양이들에게

쫓겨 다니던 아이다.



그러던 중

의리 있는 찡찡이를 만나

지금까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태평이에게 혼나던 보호소 시절도

찡찡이 덕분에 마무리되었고,

이제는 노랑이를 건드리는 고양이가 없다.

다시금 찡찡이와 좋은 사람 만나

여생을 편히 살아가는 것이

노랑이의 유일한 염원이다.


미시


미시는 독특한 털 색을 가지고 있다.

삼색이지만 머리는 검은색이 대부분이고

눈 위 이마에만 노란색 털이 나와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겁이 많아 보이는 눈동자인데,

실제로 미시는 겁이 무척 많은 아이다.



보호소에 들어온 이후에도 줄곧

케이지를 벗어난 적이 드물었는데,

다른 고양이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했다.

보호소 케이지를 오픈형으로 교체한 이후에도

케이지 지붕에 머물며 내려온 적이 없었는데,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는

존재조차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하고도 은밀하게 지내는 아이였다.

최근에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현관 입구까지 내려오기도 하고

뭉크와 자주 함께 다니고 있다.


유키

  

유키는 여우와 가장 친한 친구다.

조용한 성격에 착하기까지 한 아이인데,

요즘은 사람들을 오히려 관찰하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다.

중앙 홀 타워까지 내려와

여유를 즐기기도 하는데,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만

먼저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듯한 인상이

귀여운 아이다.



체구는 작은 편인데,

지금까지 병원 갈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건강 하나는 타고 난 아이다.

유난히 뾰족한 턱을 가진 것이

커다란 매력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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