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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May 08. 2022

내가 지켜줄게 21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끈 -


새벽 3시.


모든 움직임이 정지되어 있는

시간의 정적 속에서

작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cctv 모니터 화면에 경고등과 함께

침입자 발생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린 것이다.



에스펜은 놀라 잠에서 깨어

부스스한 눈으로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봤다.


영상에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복도를 비추는 불빛 외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녹화영상을 틀었다.


누군가 계단을 조심스럽게,

매우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고양이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계단을 올라오던 고양이는

보호소 문 앞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고양이는 주변에서 한 참을 머물다가

계단을 다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영상을 보던 에스펜은 순간 깜짝 놀라

두 눈의 동공이

자신도 모르게 커지고 있음을 느꼈다.


'혹시 바둑이 엄마 다롱이 아니야?'


에스펜은 얼마 전

공터에 혼자 남아 있던

바둑이 엄마 다롱이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밥을 주던 아주머니가

며칠 전부터

다롱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몸도 좋지 않아 보이던 때였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날이 밝자 에스펜은

모모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다롱이가 아닌지 확인을 부탁했다.


모모가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전달했고

아주머니는 이내 보호소로 달려왔다.


아주머니는 거의 울먹이듯 두 손을 모으며

다롱이가 맞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그동안 다롱이는 계속

아이들을 찾아다녔던 것일까?

주변에 그 많은 건물들이 있는데

하필이면 그것도 멀리 떨어진 이곳에

어떻게 온 거지? 왜?'


보호소 아침 일을 마친 에스펜과 모모는

지하부터 옥상까지

건물 전체를 둘러보았지만

다롱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보호소 앞까지 둘러보고 간 다롱이.


고양이들의 속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다롱이의 방문은 정말이지

신기하고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보호소를 방문했던 다롱이는

다시 아주머니 앞에도 나타났다.


그 전보다 더 밝아진 모습이라고 한다.


요즘 이문냥이 보호소에는

온통 다롱이 이야기로 가득하다.


다롱이의 방문이 어떤 의미였는지

인간의 마음으로는 도무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얕지 않은 단상에 잠겨본다.


'지난 며칠 동안 사라졌던 다롱이의 행적은

어느 날 하루아침 사라져 버린

그리운 가족들을 찾아 떠났던

짧은 여행이었을까?'


고양이는 새끼가 성장하면

독립시키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인간의 판단인 세상에서,

다롱이의 느리지만 조심스러운

새벽 발걸음은

오늘도

이문냥이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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