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일곱 번째 이야기 : 러브 -
모든 일에는 징조라는 것이 반드시 있다. 징후라고도 할 수 있는 이것은 어떤 일 또는 현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것이지만 이후 발생할 일의 결과나 현상의 진행 방향 등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침의 역할을 한다.
이문냥이 프로젝트가 잘 될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합과 시공사도 협력해주고 자원봉사 학생들도 충분했으며 지역 동물병원들도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포획틀을 치웠던 할머니가 달라진 것이 좋아질 징후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만난 몇 일 후 어느 저녁무렵 사람들이 포획틀을 확인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이를 본 사람들은 긴장했고 모두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문장들이 마구 나뒹굴기 시작했다. 좋게 말해야 할지, 강하게 말해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 지...
(할머니)'틀 저기 있어'
(학생)'네..?'
(할머니)'내가 여기에서 밥을 준 지가 벌써 10년이야. 내 애들 어떻게 하려고?'
(모모)'어떻게 하긴요. 아이들이 위험하니까 구조해서 좋은 데 보내 잘 살게 하려는거죠'
(할머니)'그걸 믿을 수 있어? 잡아다가 죽이려는 거지?'
(모모)'아이 참.. 할머니, 저도 여기서 밥 준지가 벌써 수 년이에요. 그런 제가 왜 죽인다고 생각하세요? 할머니가 계속 그렇게 하시면 고양이들이 결국 죽는다구요. 고양이 죽이고 싶으세요?'
할머니가 잠시 뒤 다시 말을 이어간다.
(할머니)'그래.. 그러니까 그 틀인가 뭔가.. 저기 있다고. 저기 마당 옆에 낭떠러지 같은 데다 던졌어. 앞으로 잘들 해봐'
(모모)'아.. 고마워요 할머니. 저희가 꼭 다 구할께요. 그리고 할머니, 그러려면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아이들 밥을 주시면 아이들이 포획틀에 들어가질 않아서요. 당분간 밥을 주시지 않으면 해서요. 부탁드려요 할머니'
할머니는 어떻게 하겠다는 답 없이 무심하게 돌아서서 집 방향으로 다시 향한다. 이문냥이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신건지 모르지만 모두들 정말 잘 된 일이라고 한 마디씩 하며 할머니의 뒷모습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다.
남학생 둘이 이내 틀을 찾아 왔고 모든 일은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제 밥을 주는 마지막 사람마저 없으니 아이들은 배가 고파질 수밖에 없었다. 그날이 지나가고 몇 일 후 늦은 오후 무렵이었다. 폐가 앞 2층집 마당에 설치한 틀에 턱시도가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미장원에 데리고 온 아이는 러브였다.
러브는 이름처럼 사랑이 넘치는 아이다. 다른 고양이들과 비교되는 무엇인가 다른 느낌의 고양이다. 러브라는 이름은 누가 처음 지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재개발 전부터 이 쪽 마을 사람들은 러브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정도로 러브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던 아이였다.
러브는 늘 문이 열려있는 넓은 마당의 이층집에 혼자 살고 있었다. 러브는 바로 옆 오래 된 폐가에서 살던 미루와 레오를 마주치면서도, 꼬동이와 마당쇠, 가필드 등 다른 아이들과 스쳐지나면서도 항상 도도하게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몸집이 작고 조심스런 성격의 러브는 고양이보다는 사람을 더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손길을 자유롭게 허락하지는 않았다. 이전에도 에스펜이 중성화를 하기 위해 포획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번번히 러브는 포획틀에 들어가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어 가까이 하고 싶어 하면서도 손길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러브 집 마당에는 봄이면 자목련이 피고 가을에는 노란 감이 열렸다. 마냥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집 마당에는 쓰레기가 쌓이고 이젠 밥을 굶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러브의 사정을 잘 아는 에스펜은 이 집에 러브가 가장 좋아하는 연어캔을 올려놓은 틀을 설치했다. 고양이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쉽게 잡힐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러브는 절대 틀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마당을 떠나지도 않았다. 심지어 사람들이 마당에 앉아 있으면 조금 떨어진 옆 자리에 앉아 함께 따사로운 태양빛을 즐기기도 했다.
한 번은 그런사람이 잡아보겠다며 마당에 앉아 있었는데, 손길 한 뼘 너머에 앉아 있던 러브는 긴 시간을 지나 새벽 2시까지도 그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철수하려고 마당을 나서면 뒤를 따라와 미장원 앞까지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잡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배고픔에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러브도 할머니의 밥 마저 사라지게 되면서 결국 포획틀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거리를 유지해야 했던 러브의 독특한 사정은 잡힌 후 검진을 위해 병원에 갔을 때 알게 되었다. 러브의 귀에는 중성화 표식이 없었고, 여자아이였기 때문에 수술을 하기 위해 개복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 말이 이미 중성화가 되어 있다고 한다. 러브는 버려진 아이였던 것이다.
같이 살던 사람이 중성화를 해주었지만 길냥이가 아니라서 귀는 자르지 않았던 것이고, 무슨 이유에서인가 버려지게 되면서 고양이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 버린 사람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선뜻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던 슬픈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무책임한 인간 때문에 러브는 버려졌고, 개복도 두 번이나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브는 저렇게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니, 사람보다 동물이 더 났다고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강하게 느껴지게 만든 아이였다.
러브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어린이 도서관 보호소로 옮겨졌다. 보호장 한 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러브에게 한 학생이 손가락을 내밀어 본다. 코인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손가락 끝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본다. 학생이 손가락을 러브의 턱에 대고 가볍게 터치해 주자 러브는 마치 지난 수 년간의 망설임을 한 순간에 던져버리듯 눈을 지긋이 감은 채 학생의 손에 스스로를 맡긴다. 1미터 간격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러브를 만졌어요! 러브가 골골 거려요..'
어두워진 보호소의 밤공기 사이로 러브의 사랑이 퍼져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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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어제 아침부터 갑자기 기력을 잃은 바둑이. 누나와 함께 구조되었지만 누나는 입양가고 혼자 남아 있던 바둑이. 늘 외로워 보이고 약해 보이던 바둑이가 이 글을 올리는 지금 이 순간 병원에서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어요. 어제 저녁 심각한 빈혈로 병원에 급히 이송된 바둑이는 몸 안에서 출혈이 발생한 상태라 수혈 후 수술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간 손상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생을 달리한 바둑이의 명복을 빕니다. 바둑아, 다음 생엔 반드시 건강하고 번듯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고 싶은 것 마음 껏 하며 살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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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고)여덟 번째 이야기 :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