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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Feb 15. 2022

내가 지켜줄게 8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여덟 번째 이야기 : 이사 - 


평화로움

포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이들도 밥을 찾아 포획틀에 들어오고 자원봉사 학생들도 이제는 고양이 포획과 보호에 있어 수준급이 되었다. 마을 입구 미장원 근처에서 시작된 포획은 마을 한 가운데 지역까지 범위를 넓혀갔고 조합이나 시공사 모두 너무나도 고맙게 협조를 알아서 잘 해주었다. 


노랑이는 찡찡이가 보호소로 간 후 여전히 숨바꼭질 놀이를 즐기고 있고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탄이도 포획틀 근처에는 가지 않고 있지만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마을입구 고양이들은 거의 대부분 잡혔다. 


고양이들을 포획하게 되면 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받고 다시 멀리 떨어진 어린이 도서관에 데려가야 했기 때문에 여간 힘든게 아니었지만, 이문냥이 사람들은 그래도 다들 기쁘게 일했다.



4월이 되면서 따사로운 햇살은 간혹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마운 존재였고, 내리지 않는 비는 이들에겐 오히려 고마운 봄의 가뭄이었다. 


사람 흔적 없는 도서관 앞마당은 난생 처음 재개발 지역에 들어와 본 이들에겐 천국과도 같은 자유로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북적이는 사람들의 공간이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던 것인지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쓰레기와 깨진 유리조각, 무언가 쾌쾌하게 썪어들어가는 냄새에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흉물스런 빈집들이 근사할리는 없겠지만, 사람이 사라진 공간에서 활개짓 하고있는 이문냥이 사람들과 길고양이들에게는 최상의 여유로움과 자유의 공간이 된 것이다. 


시간의 한가로움, 공간의 여유로움, 태양의 따사로움, 여기에 더해 믹스커피 한 잔이면 부러울 것이 없었다. 흉물스런 잔해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는 벚꽃이며 온갖 새순들도 마치 전쟁터의 종식을 알리는 전령처럼 평화의 아름다움을 흩뿌리고 있었다. 


포화


누군가 말하길 살아간다는 건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산을 넘고 또 넘는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산이든 물이든 인생에는 그만큼 넘겨야 할 어려움이 연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구조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이문냥이에게도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 덩이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컨테이너 어린이 도서관은 크지 않다. 네트망 케이지를 3층으로 쌓아놔도 30여 마리면 만석이다. 현재로선 몇 마리만 더 들어오면 포화상태가 된다. 미장원 한 쪽에 임시로 케이지를 만들어 보지만 두 세 마리면 끝이다. 조합과 시공사에서 제공한 이 컨테이너 역시 집들을 부수기 시작하면 내주어야 한다. 철거 대상이기 때문이다.


구조한 아이들 모두를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다른 장소가 필요했다. 에스펜이 나섰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봤자 결국은 돈이 문제였기 때문에 입을 땔수가 없었다. 연배가 비슷한 모모에게 슬쩍 말해 본다.


(에스펜)'세 평짜리 컨테이너로는 어림도 없네. 어떻하지?'

(모모)'미친 척 부동산에 알아볼까? 혹 알아? 싼 값에 나온 곳이 있을지...'

둘은 부동산에 알아보기로 했다. 모모가 그동안 경험으로 알아 둔 부동산 몇 곳에 전화를 돌려본다. 다들 월세도 문제지만 보증금이 문제다. 월 150에 보증금 2천은 있어야 하는데, 매일 기부금으로 버티고 있는 현 상태로는 어림도 없다. 다행히 코로나 사태가 확산되면서 상가 시세가 좀 떨어지고는 있지만, 쉽지 않은 것 같은 낌새다.


내내 전화를 돌리던 모모가 갑자기 급 반전하며 밝은 얼굴로 에스펜을 부른다. 


(모모)'언니.. 있네.. 여기가 좋은 것 같아'

(에스펜)'어딘데? 얼만데?'

(모모)'역 바로 앞인데 좀 높아. 4 층이야. 비어 있던 곳이라 단기 임대 한다니까 보증금 없이 싸게 해준다네.'


둘은 곧바로 부동산을 찾아갔다. 건물은 낡았지만 주변 시세보다 저렴했다. 바로 계약을 했다. 이사는 모레.


에스펜은 사람들에게 이사 계획을 말하고 역할분담을 하기 시작했다. 미장원에 있는 아이들까지 합하면 거의 40여 마리 되는 고양이들을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컨테이너 도서관에서 새 거처까지 옮기고 정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아직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케이지 그대로 옮겨야 할 지, 아니면 아이들을 꺼내고 케이지를 분해한 후 옮기는 것이 좋을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사람을 쓰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돈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데 돈 쓰는 것이 아까웠다. 기존 학생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알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동원하기로 했다. 


이사 날이 되자 고맙게도 사람들이 하나 둘 도서관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케이지 그대로 옮기기로 했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일하는 박씨가 쉬는 날 자신의 트럭을 가지고 와 열심히 도왔고, 사람들은 두 곳으로 나눠 대기하며 고양이들과 물건들을 날랐다.


1.5t 트럭이 있다고 해도 케이지들을 트럭까지 옮기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2인 1조가 되어 굴다리 밑 약 50미터를 걸어서 옮겨야 했다. 트럭에 싣고 옮긴 짐들은 4층까지 다시 올려야 했는데, 케이지에 비해 계단이 좁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여기까지도 그나마 양반이었다. 마지막 관문은 저녁이 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곳이라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미리 이야기 했지만 한전 공사가 늦어지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작은 랜턴 두 세개에 기대어 겨우 맞춰 넣은 케이지들과 물건들이 뒤엉키면서 제대로 된 정리는 밝은 다음날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갇힌 고양이들도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울어대는 아이들은 없었다. 6시간의 대장정이 드디어 마무리 되었다. 약간의 낭만을 섞어 조금은 쉽게 생각했던 사람들의 눈과 손과 몸 여기저기에는 영혼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는 털려버린 멍함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빗자루질을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잠시 암흑의 침묵 속에 땀자욱을 내려놓은 뒤 의도치 않은 짧은 해탈을 감상하고 있다.


아무도 찾아 오지 않던 죽어가던 건물 한 층이 사람들과 고양이들의 체온으로 모처럼 온기를 지니게 되었다. 이것도 인연일 것이다. 4층이어서, 건물이 낡아서 아무도 들어오지 않던 이 곳에 길고양이 수십마리와 사람들이 이렇게 북적이게 될 지 누가 알았겠는가? 역사 속에서 인연은 만들어지고 인연은 다시 역사를 만드는 순환의 고리다.  

에스펜과 모모는 사람들이 다 떠난 후에도 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 걱정에, 돈 걱정에, 온통 걱정 투성이의 일을 용감하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커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밤은 이미 10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서울의 어느 하늘 아래 길고양이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예감하고 있었다.


- (예고) 아홉 번째 이야기 : 코코와 아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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