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 연인이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면 좋겠어.’
이 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짐작하듯 내가 그렇지 못한 가정환경을 가졌기 때문이다.
좋은 가정환경이란 어떤 환경을 말하는 걸까. 돈도 넉넉하게 있고, 부모는 친절하고, 배움에 부족함이 없이 살아온 환경? 아니면 부모와 가깝지는 못 했지만, 배움에 뜻은 없지만 돈에 부족함이 없기에 남 부럽지 않은 환경?
가정환경의 기준도 다양하겠지만 나는 부모와의 관계가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나의 결핍이 반영된 내 생각이겠지만.
부모님은 맞벌이셨다. 맞벌이도 그냥 맞벌이가 아니라 아주 힘든 맞벌이.
아빠는 매우 엄했고, 엄마는 매일 아팠다.
체벌은 당연했고, 부모의 다툼도 당연했다.
욕설이 난무했고, 상처도 난무했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 혹은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쌓여온 상처들까지.
이런 환경이 나에게 가장 큰 결점이라고 느끼게 된 건 20살 첫 연애였다.
부모와 친구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연인을 보며 이 사람이 나와 내 부모의 유대관계를 혐오스럽게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걷잡을 수 없이 반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내 모습 어딘가에 가정의 불화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도 믿고 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모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내 모습일 수 있겠구나.
나도 모르는 내 모습에 내가 혐오하는 모습이 담겨있겠구나.
그 시절에는 그 모습을 계속해서 감췄던 것 같다.
부모와 연이 없는 것 처럼 살고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장난도 많이 치고, 고민도 나누며 슬플 때 같이 울기도 하는 그런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스스로에게 성격에 결함이 있냐고 묻는다면 ‘난 누구보다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가정환경을 한 사람의 가치로 두는 말이 싫었을지 모른다.
누가 들어도 심각하고 안타깝게 바라볼 과거의 일들이 있었음에도 난 부모님을 사랑하고, 남 부럽지 않게 멋진 여성으로 성장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크면서 깨달은 건 이미 세월의 반을 변함없이 살아온 사람에게 한참 어린 내가 변하라고 해서 변할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행동도 그 사람의 결핍에서 나온 행동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빠는 성장과정에서 할아버지에게 많은 도움을 얻지 못했다. 부모로서 당연히 했어야하는 기본적인 도움도 없이 자랐다. 그러니 자연히 우리 아빠는 어려서부터 자기 스스로 인생을 살아야했고, 그에 수반된 많은 것들을 포기해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그러니 내가 자유분방하고 미래를 계획하기보다 현실에 만족해가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빠에게 매우 불안정하고 철없어 보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넓은 관점이 어려서는 보이지 않았고, 내 앞에 놓인 현실만 바라보다보니 마주하기 힘들었다.
물론 이해를 했지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결론은 ‘난 다른 부모가 되자.’ 혹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면 자식을 낳지 말자.’라는 극단적인 두 가지 결론이 생겼다.
그리고 지인이 가정환경을 연인의 가치로 둔다면 물론 이해는 하지만 내 생각을 전한다.
가정환경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변화없이 큰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보다 가정환경의 잘못됨을 인지하고 스스로 무던히 노력한 사람도 있음을 말한다. 그런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보다 더 넓은 관점과 더 깊은 마음의 수용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연인이 생겼다면, 그 말을 쉽게 꺼내지 말라고도 말해준다. 가정환경은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때문에 오래 만났더라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쉽게 꺼낸 그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더 굳게 잠글 수 있다고 말해준다.
결점이 없는 사람은 용감하지만 결점이 있는 사람은 다정한 것처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