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돌아가던 고개
바쁜 엄마로 살아가느라 나의 학창 시절은 군데군데 결핍이 자리 잡고 있다.
가난이라는 걸 아이가 인지하는 순간은 어느 때일까?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초등학교에서 받은 상처가 가장 크다. 가장 무지했고, 마음은 가장 말랑했다. 그래서 순수하게 날아오던 질문과 말들이 말랑한 마음에 무수하게 꽂혔다. 어설픈 웃음으로 방어할 수도 없던 나이었다.
나는 그냥 늘 그랬듯이,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옷을 입었을 뿐이었고, 좋아하는 옷을 조금 더 자주 입었을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옷은 비싸고 반짝여서가 아니라 아주 오랜만에 엄마가 사준 옷이었을 뿐이다. 엄마와의 추억이 조금 더 많이 담긴 옷이었을 뿐이다. “00이 거지야. 옷이 맨날 똑같아.”, “00 이는 옷이 다 이상해.” 그 말들로 나는 애정이 서린 옷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사준 사랑스러운 옷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8살에도 학교에서의 이야기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선명한 기억을 집에서 함께 공유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가장 바라던 소원은 학부모 참관 수업에 엄마가 꼭 와주는 일이었다. 사실 바람도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되고 처음 있는 참관 수업이라 못 온다는 가정은 없었다. 그냥 어린 마음에 엄마가 학교로 나를 보러 오는 날이구나. 나를 사랑해 주러 오는 날이구나.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해보겠다고 뛰어든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날은 초등학생을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작은 책상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교실 뒤로 우리 엄마보다 젊기도 나이가 좀 있기도 한 여자들이 한, 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빠르게 뒤를 돌아봤다. 돌아볼 때마다 여자들이 많아졌다. 또 뒤를 돌아봤다. 여자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 많은 여자들의 눈은 나를 지나쳐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 그때부터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이제는 제법 많아진 여자들 사이사이를 꼼꼼히 살폈다. 슬펐다.
너무 슬펐다.
학교가 끝나고 울면서 집까지 걸어갔다. 왜 학교는 참관 수업을 만들어서 나에게 더 상처를 주는 걸까. 참관 수업이 진행되는 교시가 끝나면 친구들과 엄마들은 기다렸다는 듯 제 짝을 찾아 안아주고 이뻐해 주기 바빴다. 나는 우두커니 내 책상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친구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지켜보고, “엄마 안 왔어?” 물어보면 아주 어색한 웃음으로 “응”이라고 대답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슬프고 화나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은 언제나처럼 어두웠고, 엄마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잠을 자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