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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정 Oct 09. 2023

나를 바꾸는 방법

당신의 삶이 자랑스럽지 못한 이유

   나는 날 때부터 목에 탯줄을 두 번이나 감고 있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총 세 번의 수술을 받았고, 병원은 달에 적어도 두세 번은 가며, 어딘가 새롭게 아파서 병원만 갔다 하면 반드시 '타고나길 이렇게 아프기 쉬운 몸'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고 일생을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체력적으로 불리함은 확실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내 신세를 한탄하고는 했다. 하물며 성격이라도 좀 나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을 몸이 아플 때도, 마음이 아플 때도, 쉴 틈 없이 하다 보니 앞 문장에서 '이렇게'를 빼고 '나는 왜 태어났을까.'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오늘 역사책을 읽다가 장보고 이야기를 보았다. 그가 바다에서 날아다니듯 했다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었던 나는, 그의 이야기를 읽고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장보고는 지금으로 따지면 아주 흙수저라고 말할 수 있는데, 본인이 가진 능력을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탓하지 않고 계속해서 본인만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했고, 결국에는 태어난 나라 외에 다른 나라에까지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 요약만 본다면 '그게 뭐 어떻다고?'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워낙 역사 속 인물이고 우리와는 동떨어진 세상에 살았던 인물이니. 하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가 신분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타고난 신분을 받아들이고 평생을 살다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장보고의 패기와 노력은 도전적이라고 말하기도 부족한 수준이다.

   그런 그의 인생을 짧은 글로 마주했을 때, 나는 이토록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신분을 뛰어넘는다는 생각도 감히 하기가 힘들었던 그 시절에, 자신만의 살 길을 찾은 것도 모자라서 주변국들에 말 그대로 신 대우를 받을 정도로 성장한 이가 있다니! 물론 재능의 영역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것이 비단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만약 신분제의 한계를 느끼고 도전조차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름 없이 사라질 역사 속 어느 아무개였을 것이다. (당시 백성은 이름을 짓지 않았다.) 그런 시대에 살았던 사람조차 꿈을 의심하지 않고 환경을 탓하지 않았는데, 나는 의식주가 편안하게 해결되고, 내 이름마저 온전히 있는 이 상황에 환경을 탓하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몇 년 전쯤,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다.


   "30이 넘어서도 본인의 학력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일생에 이룬 것이 그것뿐인 사람이다."


  스물다섯이 되어 이 글을 보니, 내가 고등학교 시절 성적을 크게 올린 것보다 자랑할 것이 그다지 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이후로 내가 그 정도까지 노력하며 살아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현재의 나는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퇴근하면 체력이 없다는 핑계로 내내 누워만 있었으면서, 주말에는 주중에 열심히 살았다며 하기로 한 일에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러자 내 삶에 구멍이 생겼다. 매일을 채워가지 않으니 나라는 물이 말라가고 있었고, 또 게으름이라는 구멍이 생겨 삶이라는 독에 물이 채워질 리 만무했다. 결국 삶에 슬럼프가 찾아왔다. 무엇을 할 의지도, 기력도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은 분명 있는 것 같은데, 확신이 없었다. 반년 전만 해도 사람들에게 행복의 가치, 스스로를 가꾸고 사랑하는 것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었는데 정작 내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내가 예전에 그렸던 인스타툰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백수였고, 당연하게도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꿈이 있어 지금보다 행복했다. 스스로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과거의 나에게 위로와 힘을 받았다. 과거의 내가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잠시 외면하고 있었지만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였다. 주변에서 아무리 힘을 주고 도움을 주더라도 나를 바꾸는 것은 결국 나인 것이다. 뻔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이 분명한 사실이다.  이건 정말 귀한 기회다. 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나의 의지만으로 내 삶과 환경을 바꿀 수 있음이 분명하다. 조금씩 움직이자. 자그마한 움직임이 모여 삶이라는 독을 가득 채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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