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의 재시작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곳, 중환자실

by 김지니





나는 간호사다. 현재는 병동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내가 간호사로 처음 근무 하도록 발령받은 곳은 대학병원 중환자실이었다. 입사 후 신규 간호사로 발령을 받게 되면 병원의 정해진 기준으로 부서발령을 받는다. (정확히 각 병원의 인사발령 기준을 알 수가 없어 이렇게만 밝히는 점을 양해바란다.) 내가 중환자실에 가게 된 발령 기준은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면, 아마도 내가 희망 부서로 중환자실을 적어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왜 희망하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라면 그곳에 가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용감한 포부였던 것 같은데 나는 이 선택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병원 생활을 했다.


과연 잘 선택한 것일까?



이유와 기준은 잊어버리고, 일단 발령은 받았으니 일을 해내야한다. 어떤 직업이 쉬운 직업이 있으랴 각오는 했지만 첫 발령지는 생각보다 험준한 곳이었다. 응급실을 통해 오는 환자, 병동에서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 오는 환자, 수술방에서 나와 집중치료를 위해 들어오는 환자…. 중환자라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나에게 무겁게 다가왔다. 맡은 환자 명수는 작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처치와 약물을 사용하는 극도의 긴장감이 넘치는 업무 환경 속에서 나는 다정하고 활발했던 간호학과 학생에서 말수가 적고 맡은 일을 간신히 해내는 소심한 간호사가 되어갔다. 그 시절에 나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직장에서는 나의 본래 성격과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부터 배워가는 사회초년생이었다. 처음 사회에 발 디딘 누구나 그렇듯 나또한 사회생활이라는 거대한 조직속에 나를 맞춰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사회에 나를 끼워넣던 중,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지금까지 내가 배워왔던 간호학은 환자가 나아진다는 보람과 뿌듯함이 있는 학문이었는데, 부딪히는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쓸 방도가 없다.” 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는 업무 특성에 나는 점점 지쳐갔다. 내가 맡은 많은 환자들이 회복하여 병동으로 가기도 했지만, 많은 환자들이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까지 했지만 회복 하지 못하고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다 내가 휴무를 보내고 다시 출근하니 사망했다는 소식만 들리던 내 나이 또래의 대장암 환자, 다발성 장기부전이 진행되어 CRRT (지속적 신대체요법) 치료까지 받는 상황 이었지만 마지막까지 딸과의 면회시간에 의식을 놓치지 않으려 힘 쓰셨던 아버지 뻘 되던 간암 환자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고 꿈에서도 생각했던 환자가 있냐고 물으면 활동성 폐결핵으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다가 자가호흡이 가능할만큼 호전 되었던 환자분이라 할 수 있겠다.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다가 자가호흡을 하게 될 정도로 상태가 좋아지는 것은 흔하지 않는 일이라 뿌듯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밤이었다. 그러던 중 퇴근하기 전에 그 환자를 병동으로 전동보낼 준비를 하는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피를 토하기 시작 하시더니 장시간의 심폐소생술에도 돌아가셨다. 손 쓸수도 없는 긴박한 상황에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간신히 맡은 일만 하면서 다른 선배 간호사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신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나는 언제나 긴장하고 불안하고 슬픈 상태였고, 몰아치는 업무를 해결하는 중에서도 내가 과연 잘 해내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을 마주하자 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되었다. 무기력감이 파도처럼 나에게 몰려 들었다. 상태가 호전 되었다고 생각한 환자가 나의 간호를 받던 중에 갑자기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다니, 내가 무쓸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기력, 무력함, 무쓸모. 입사한지 6개월 차, 내가 나를 생각하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정서만이 가득했다.



나, 이대로 괜찮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