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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rn 민주 Apr 12. 2023

나는 李玟注(이민주)이다.

2020년 초에 나는 개명을 했다.



우리 집에서 딸 넷 중 나만 돈을 주고 지은 이름이었다.

그렇게 돈을 들인 '이정화'란 이름으로 47년을 나름 잘 살았었다.


내 이름에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 결혼 이후, 전 시어머니를 따라다녔던 점집마다 '고독한 이름이다, 단명할 이름이다' 등의 기분 싸한 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나쁜 일이 생기면 이름 탓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명이 쉬운 일도 아니고, 당시엔 무엇보다 개명의 번거로움을 이길 만큼 샤머니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인지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친구를 따라간 철학관에서 꽤 큰돈임에도 불구하고 철학관 선생님의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냐~”란 말 한마디에 울컥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해 3월 내 모든 신분증은 변경됐다.


선생님은 작명한 이름 두 개를 뽑아주셨다.   

이소연-부가 강한 이름
이민주-평화가 강한 이름     

이름도 이름이지만 왠지 금전보다는 평화란 말에 마음이 꽂혀서 민주로 고민 없이 결정했다.


이름을 바꾸면서 신기하게 접촉사고부터, 크고 작게 넘어지고 다치는 사고가 자잘 자잘 이어졌다.  누구는 내게 이름을 바꿀 때 조금 시끄러운 일이 생기는 거라 했다. 오랜 시간 불리던 이름이 나가면서 티를 내는 거란다. 시어머니를 따라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따라다닐 때와는 달리 20여 년의 세월을 겪으며 샤머니즘이 꽤 강해진 나에게는 오히려 길한 징조로까지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유 없이 부러지는 갈비뼈가 여섯 개까지 늘어났고 피로골절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의사를 설득하여 정밀 CT를 찍고 암일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게 5월 19일이니 '이민주'로 살고 두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단명할 이름이었는데 개명해서 안 죽고 살겠구나


처음에 친구들은 내게 이름을 잘못 바꾼 거 같다고, 작명가를 가만 안 둔다며 열을 내줬고 나도 그 순간은 누군가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일이 설사 이름을 잘못 바꿔서 생긴 일일지라도 내가 선택한 거였고 누구를 원망한다 해서 바뀔 일도 아니었다. 아주 잠깐 후회는 했어도 이내 '단명할 이름이었는데 개명해서 안 죽고 살겠구나~'로 생각을 바꾸니 은근 이름에 빌 힘이 더해졌다.


소견서를 들고 대학병원에서 본 PET CT의 결과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암세포들로 온몸이 점령당한 뒤였다.

당장 입원하라는 말을 듣고 내 정신이 아닌 채로 코로나 검사를 하고 다음날 밤에 아직은 낯선 '이민주'라는 이름표를 팔에 차고 입원을 했다. 이름을 바꾸면 바꾼 이름으로 많이 불러줘야 한다더니 병원에서는 연신 내 이름을 불러줬다. 주사 맞을 때, 식사 시간마다, 검사를 가야 할 때도 나는 하루에도 족히 열 번은 넘게 '이민주 님~'으로 불리며 평화로운 나의 이름에 적응해 갔다.


그리고 2주 뒤 ‘미만성거대 B세포 림프종’이라는 병명까지도 생소한 이름의 혈액암 환자가 되었고 1차 항암까지 받고 거의 3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항암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항암 후 열흘 정도만 지나면 괜찮아지고 다음 항암까지 열흘 정도는 꽤 살만했다.




열심히 산 거지 잘 산 게 아니었다.


그렇게 컨디션이 좀 좋아질 때마다 난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한가하고 마음이 편했던 적이 있었던가~?’

늘 새벽부터 바빴고 밥도 굶어가며 나를 호되게 몰아치며 살아왔던 지난날들에 그래도 감사히 돈은 따랐지만, 평화라는 말은 생소했기에 두 이름 중 고민 없이 평화를 선택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삶이 좀 버거웠었나? 버겁다기보단 조금은 지칠 때도 있었지만 엄청난 노력 없이 늘 감사하게 잘 올 수 있었기에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 건가? 놓치고 사는 건 없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지 못한 채 살았었다. 아니 누구보다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항상 자신 있었고 대부분이 즐거웠다.


하지만 정작 난 가장 중요한 걸 놓쳤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미련하게 잘 산다고 착각하며 결국 나를 지키지 못하고 놓쳐버리고 나서야 드는 생각... 열심히 산 거지 잘 산 게 아니었다!

결국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슬프게 했고 나의 일상은 강제로 정지가 돼버렸다.



평화로운 이민주로 살아가기


스스로에게 쉼을 주지 않아서 이렇게까지 온 거 같아 나의 미련함에 혀를 찼지만 어찌 됐든 나에겐 강제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암환자에게 평화가 웬 말이냐?'라고도 하겠지만 뭐 평화가 별 건가?

오늘 무얼 해야 하고, 이번 주도 반드시 2W(1주일에 2건의 계약과 보험료 20만 원을 하는 것)를 해야 하고, 이달 꼭 해야 하는 것들과 어디까지 가겠다 정해놓고 달려갈 일 하나 없는 그런 시간이 완전 평화지.


이정화로 살아온 47년을 후회하진 않는다. 이정화였기에 가능했던 나의 시간들임을 적어도 나는 아니까...

하지만 난 '이민주'로는 다른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열심히가 아니라 행복하게~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 되는 삶.

큰돈 주고 지은 이름값하며 엄청나게 평화롭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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