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꿈꾸는 황금시대는 언제인가요?
Midnight in Seoul
2011년에 개봉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아시나요? 주인공인 길은 약혼녀와 함께 파리에 여행을 왔고, 소설가로 전향하려고 합니다. 그는 1920년대를 황금 시대로 생각합니다. 술에 취하던 중,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만나게 되고, 거트루드 스타인과 파블로 피카소도 만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는데, 아드리아나와의 데이트 도중 아드리아나가 동경하는 1890년대로 떠나게 됩니다. 그곳에서는 앙리 드 툴르즈 로트렉, 에드가 드가, 폴 고갱 등 그 시대의 예술가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길이 동경하는 1920년대 황금 시대에 사는 아드리아나는, 반대로 1890년대를 동경합니다. 길은 그를 통해 자신이 동경하는 황금 시대가 사실은 현재에 대한 거부에서 나옴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1890년대의 고갱과 같은 인물들은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PC 게임 황금 시대인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에 들어서 게임 기획자로 취업하고자 전문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 게임이라고 해봤자 피쳐폰 시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앵그리버드'나 '후르치닌자' 등 캐주얼한 게임밖에 없었기 때문에, 저는 모바일 게임을 개발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대를 다녀와보니 게임 기획을 공부하는 학생의 수가 3배나 늘어있었습니다. 군대에 있던 동안 2012년 12월에 넷마블 턴온게임즈에서 출시한 '다함께 차차차'와 2013년 8월 넷마블 몬스터에서 출시한 '몬스터 길들이기' 같은 고퀄리티의 모바일 게임들이 연이어 나오면서 수많은 고등학생들을 자극했습니다. 2011년도에 부산 지스타에서 이제는 사라진 NC소프트의 '리니지 이터널'이나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로스트아크'를 보며 저도 PC 게임 개발자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운 좋게 취업을 한 후에는 대부분 모바일 게임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PC 게임을 만드는 내 모습을 꿈꿨지만, 현실은 스마트폰 게임을 개발하는 저의 모습이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졌고, 과거 PC 게임을 만들었다는 업계 선배들은 마치 그 황금 시대를 경험한 사람처럼 부럽기도 했습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만약 내가 10년, 15년만 빨리 태어났다면?'이라는 생각을 수없이 해보았습니다. 대한민국 게임 붐을 주도했을 것 같았고, 나도 게임의 거장들과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을 것 같았습니다. 2023년에는 드디어 PC RPG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직접 개발을 시작해보니 모바일 게임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게임을 돌리는 데스크톱에서 렉 문제도 거의 없었고, 빌드 후의 테스트 과정도 스마트폰에 비해서 간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개발해보니 특별한 감정이나 설렘이 없었습니다. 결국 개발하는 플랫폼이 PC든 스마트폰이든, 저에겐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16년, 저는 모바일 게임 서비스 '겟앰프드'를 제공하는 윈디소프트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현재 '준인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때의 모바일 게임 시장은 흥미로운 동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초기의 모바일 게임 시장은 주로 캐주얼 게임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캐주얼 게임들의 활기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RPG 게임들이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많은 개발사들이 이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려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저희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직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고 모바일 게임 매출 시장의 파이를 크게 넓힌 '리니지 레볼루션'이 등장하기 전이었습니다. 저는 팀과 함께 모바일 MMORPG를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개발을 시작하며, 저는 시장의 흐름과 경쟁 게임들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뮤 오리진'이라는 게임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 게임은 중국에서 개발되어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서비스되고 있었습니다. 저도 게임을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진심으로 플레이하고, 심지어는 과금까지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게임을 하면서 끊임없이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 정말로 내가 아는 롤플레잉 게임인가?"였습니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그 게임의 플레이 스타일과 특징들이 전통적인 롤플레잉 게임의 정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뮤 오리진'이 중국에서 개발된 게임이라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중국에서 모바일 MMORPG 게임을 개발 후 한국 스마트폰 게임 매출 순위에서 크게 성공시킨 첫 사례로 기억합니다.
시장 자체는 아직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있었고, '뮤 오리진'의 막대한 매출 성적은 다른 RPG 게임 개발사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RPG 개발사들이 모바일 게임 시장을 더욱 주의 깊게 지켜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지금의 '리니지 라이크'장르들이 약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 속에서, 하드코어 게이머에서 아저씨 게이머로
2023년 현재로서, 중국에서 개발된 게임이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리니지 M' 스타일의 자동 전투 게임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PC MMORPG를 스마트폰에서 할 수 있다는 마음에 큰 인기를 끌었지만, 많은 게임들의 실패 끝에 지금은 젊은 세대 중에서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5년 간 이러한 게임 트렌드는 한국 게임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자동 전투 기능이 포함된 모바일 게임 생태계의 발전, 그리고 그 시대를 대표하던 하드코어 게이머들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 그 시절 20대 초반이었던 게이머들은 한국 게임 문화의 전성기를 경험했습니다.
이들 중 대다수는 1980년대 초에 태어나, 그들의 젊은 시절에 다양한 게임 장르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FPS 게임에서의 클랜 리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공대장, 리니지의 혈맹 군주 등 여러 포지션에서 활약했던 이들은 그 시대의 게임 문화를 주도했습니다. 특히, 그들 어린 시절에는 영어나 일본어로만 제공되는 게임도 번역기의 도움 없이 직접 이해하며 플레이했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게임을 단순히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 그 시대의 게임 문화와 커뮤니티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23년 현재로서, 한때 게임 시장을 주름잡던 하드코어 게이머들의 모습은 크게 변화했습니다.
그들은 과거 젊었을 때 무수한 시간을 게임에 투자하며 레벨업을 즐겼던 그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일상과 가족, 일 등으로 인해 시간에 제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게임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시간에 쫓기는 현실 때문에 더 이상 하루 종일 게임에 몰두하여 1 레벨을 올리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전처럼 게임에서 얻는 보상감이 현실의 보상감보다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일상 속에서 잠시의 여유를 즐기며 간단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런 니즈에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바로 모바일 자동전투 게임입니다. 심지어 스포츠 게임에서조차도, 오프라인 시간에 따라 게임이 자동으로 진행되는 기능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콘솔 게임 역시 그들의 생활에 크게 어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회사 동료가 콘솔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 갓오브워나 다크소울 같은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도 2개월이 넘게 걸릴 때가 많았습니다.
선택의 기준도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영화나 음식, 음악 선택에 비해 게임 선택에 더 많은 고민을 투자합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넷플릭스나 영화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음악은 출퇴근 시간에 듣기 쉬우며, 음식은 매일 섭취해야 하는 필수품이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그들의 여가 시간에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선택의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됩니다. 그러나, 선택한 게임을 실제로 즐기기보다는 선택 과정에서의 기대감에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게임 플레이 도중 스트레스를 느껴 유튜브에서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관람하며 대리 만족을 얻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플레이하는 자동 전투 게임은 자신의 취향을 완벽히 반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선택한 게임에서 빠른 성장감을 느낄 때, 그 행복감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순간들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게임의 너무 높은 난이도에 부딪히게 되면 그 행복감은 서서히 사라져, 결국은 도전보다는 다른 게임을 찾게 됩니다. 이렇게 변해가는 그들의 게임 취향과 스타일은 20년 전, 게임의 세계를 주름잡았던 이들의 현재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리니지와 같은 게임을 찾고 있어요. 추천해주세요.” 이런 질문은 지금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옵니다. 특히 NC소프트의 리니지 시리즈와 그와 유사한 장르, 즉 '리니지 라이크' 장르의 게임들을 즐겨하는 유저들 사이에서는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심리와 취향, 게임에 대한 열정과 기대를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리니지 라이크 유저들은 "리니지와 같은 게임 또 없나?"라는 생각을 가지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명확한 목표와 계획에 따라 게임 내에서 자금을 투자하고, 그 대가로 빠른 성장과 다른 유저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캐릭터를 원합니다. 이는 그들의 게임에 대한 즐거움의 원천 중 하나입니다. 반면, 전략적 사고와 미세한 조작이 요구되는 젊은 유저들에게 불리는 '갓겜'이라는 잘만든 게임들에는 조작 난이도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리니지 라이크' 장르는 2016년부터 2022년 사이에 특히 주목받았고, 많은 게임들이 이 장르 안에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게임의 선호도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리니지 라이크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취향의 차이는 우리의 일상에서 음악이나 음식의 취향처럼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리니지 라이크 장르를 비난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이 완벽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일부 게임들은 과도한 과금 정책이나 업데이트의 방향성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개발사들은 단순히 이익 창출을 위해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저들의 취향과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리니지 라이크' 장르의 게임들 중에서도, "이 게임을 꼭 해봐야 해!"라고 추천하고 싶은 명작이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제 마음 속 기대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개발사들, 특히 경영진과 기획자들은 유저들의 기대와 희망을 잘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참신하고 흥미로운 게임을 선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2010년, Steam은 번역 서버를 도입하여 한국어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팀 포트리스 2, 도타 2, 카운터 스트라이크,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와 같은 인기 게임들을 필두로 비 FPS 게이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과거 불법 게임 소프트웨어 설치 문화에서 게이머들 사이의 '사놓고 안 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2020년 9월, 방탄소년단은 K-POP 역사상 최초로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하며, 세계에 K-POP의 매력을 전파했습니다. 이후 2021년,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2023년까지 한국 드라마의 제작 및 방송 열풍을 불러왔습니다. 또한, 2005년에 최초로 발행된 이영도 작가의 소설 '피를 마시는 새'의 독특한 세계관이 게임 제작의 소재로 크래프톤에 의해 선정되었고, 2023년 그 컨셉 아트와 소설 세계관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 저는 무심코 황금시대를 경험하며, 동시에 그것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저는 과거 2000년대 '황금 시대'를 향한 그리움을 놓아주기로 했습니다.
미래의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인물들이 이미 제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전 회사나 지금의 회사에서 함께 일하고 있거나, 어느 친한 지인을 통해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2040년의 차세대 개발자들이 꿈꾸는 '황금 시대'가 사실은 제가 지금, 2020년대 서울에서 체험하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