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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우 Apr 17. 2023

권경애 학교폭력 소송 불출석 패소 사건에 부쳐

스위스 치즈 모델을 통한 법률서비스 분석과 CRM의 도입

사고(accident)와 사건(incident)은 다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빌리자면,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이 사고이고,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이 사건이라고 했다. 사고는 처리의 대상이고, 사건은 해석의 대상이라고 하였다. 사고에서는 사실의 확인이, 사건에서는 진실의 추출이 쟁점이 된다고 하였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즉 사고가 일어나면 최선을 다해 되돌려야 하고 이를 복구라고 부르지만, 사건에서는, 그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고, 복구는 퇴행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요컨대, 사건은 우리를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최근 법조계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권경애 씨 학교폭력 소송 불출석 패소사건”이 그것이다 한 변호사가 세 번씩이나 불출석해서 결과적으로 항소심(2심)에서 쌍방불출석에 의한 취하간주(민사소송법 제268조 제3항) 되어 버린 일이다. 이는 법조계에 있어서는 하나의 사건이다. 권경애 씨 개인에 대해서는 어떤 심한 욕을 해도 부족한 일이다. 변호사의 자격을 박탈해야 마땅하며, 그 이외에도 처벌을 할 수 있는 최대의 한도로 처벌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권경애 씨를 처벌한다고 해도, 국민 일반의 법조계에 대한 불신을 일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질이 개인의 일탈이었다고 하여도, 개인에 대한 처벌로써 복구할 수 없을 만큼의 법조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이상 복구는 퇴행이 된다. 따라서 ‘권경애 씨 학교폭력 소송 불출석 패소사건’은 사고가 아닌 사건이 된다.


사건은 복구가 아니라 해결되어야 한다. 앞서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얘기한 바와 같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진실의 추출이 관건이 된다. 여기서 진실의 추출은 개인의 일탈이라는 사실의 확인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권경애 씨 사건에서 진실의 추출은 더 이상 문학의 층위에 머무를 수 없기에 경영학의 층위로 이행할 필요가 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의 제임스 리즌 교수는 스위스 치즈 모델로서 사건과 휴먼 에러 사이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접근했다. 스위스 치즈의 불규칙한 구멍들은 좀처럼 겹쳐지지 않지만, 어쩌다 구멍의 위치가 겹쳐져 일치하게 되면 하나의 구멍이 이어지듯이, 잠재적 위험 요소들이 어느 순간 서로 만나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되면 사건이 발생한다는 내용이다. 이상적인 상황은 잠재적 위험 요소들이 각 층위별로 하나도 없는 상황이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러한 잠재위험이 없는 상황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결함들이 겹쳐지는 확률을 줄이기 위하여 스위스치즈를 여러 개 겹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경우, 변호사 개인의 성실성 혹은 법무법인이나 법률 사무소의 시스템에 기반하여, 공판 이후에 당사자에게 알려주는 경우가 많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더러 있다. 법률 사무 자체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녹록지 않은 분야이므로 당사자에게 모든 것들을 알려주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당사자들도 어련히 잘 알아서 변호사가 처리해 주겠거니 생각하고, 변호사도 그냥 알아서 처리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잦다. 따라서 스위스 치즈 모델에 따른 방어 연쇄 층위(successive layers of defense)가 결여되어 있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다. 


권경애 씨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의 호소문에서도 


당신이 어처구니없이 소송을 말아먹었으니 다시 소송을 살려내라고 소리치면서 도대체 그런 일이 벌어진 게 언제냐고 했더니 작년 10월 이랍니다. 장장 5개월이 흘렀습니다. 5개월 동안 변호사는 저에게 말 한마디 없이 제가 전화할 때까지 입 꾹 다물고 있었던 겁니다.

라는 구절이 있다. 5개월 동안 당사자는 변호사의 불성실로 인해서 자신이 당사자인 재판이 어떻게 되어가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는 스위스 치즈 모델에서 당사자의 관여라는 치즈 조각이 사라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위스 치즈 모델을 통해서 당사자의 관여라는 치즈 조각 추가가 필요하다는 진실을 추출해 냈다면, 그다음으로 고민해 볼 것은 그 방법론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당사자 관여라는 위험 방지 층위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 된다. 


여기서 최근 떠오르는 CRM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생긴다. CRM이란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의 약자로 한국어로는 「고객 관계 관리」를 의미한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및 고객의 시각에 맞는 활동에 기반한 관계 유지를 통해, 고객 생애 가치(LTV)를 향상시키는 개념이다. 고객관리의 기술적 영역에서 다소 방만한 법률사무서비스에 CRM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의뢰인과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음에 더불어 마케팅 영역에서부터 의뢰인 정보관리까지 편리해지는 편익을 누릴 수 있다. 이에 CRM을 도입한 법률서비스 제공 업체와 그렇지 않은 업체 간 영업 효율성 및 서비스 만족도의 간극이 커지므로 CRM 도입은 새로운 업계의 스탠다드로 시장논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


너무 많은 인용에 관대하길 바라며, 다시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인용해 본다. "단편소설은 삶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파열의 선(線)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삶의 어딘가에 금이 가고 있는데 인물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나서야 그들은 파열을 깨닫는다" 권경애 씨 사건이 미세한 파열의 선이라면,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파열이 되기 전, 스위스 치즈의 구멍이 더 크게 나기 전에, 법조계가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사건의 해결은 모든 관계자들의 책임과 의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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