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약 May 01. 2022

아프니까 환자다 12 - 집착의 끝판왕

구할 수 없는 약을 구해달라는 환자의 요청

한가지 약제에 대한 카피약은 무수히 많다. 울트라셋정이라는 약제가 있다. 아세트아미노펜 325mg, 트라마돌염산염 37.5mg 으로 구성된 복합제로 중등도 이상의 통증에 사용하는 진통제의 일종이다. 이 약제에 대한 카피 즉, 제네릭(generic)약은 국내에 무수히 많다. 국내에 허가된 동일 구성의 약만 125종에 이른다.


한 환자가 울트라셋정 제네릭 제품을 처방 받았다. 물론 다른 약제들과 함께 말이다. 처음에는 A 회사의 해당 제품을 처방 받았는데, 자신이 그 약이 맞지 않는다며 난리난리를 병원에서 쳤다. 그리고 C 회사의 약제를 처방해 달라고 우겼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연락이 오기를, 해당 약제의 대체 가능한 약이 있으면 그것으로 내어 달라고 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처음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보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C회사 약이 아니면 절대 먹을 수 없어요


환자에게 처방전에 있는 약을 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만 A 회사의 약을 줄 수 있다고 안내했다. 그랬더니 순간 눈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이후 거품을 물고, 방방 뛰는 것이다. 아... 40살이 다 되어가는 사람이 저렇게 애들처럼 마음에 안 드는 일에 대해서 방방 뛰고 바닥에 뒹구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 약 무조건 구해놔!" 


환자는 막무가내였다. 환자가 원하는 C 회사의 약은 워낙 이름 없는 회사의 약이었고, 아무리 도매상들을 수소문해도 구할 수 없는 약이었다. 일명 품목도매상에서나 공급하는 약인데, 우리 약국은 해당 도매상과의 거래가 없어서 사입 자체가 안 되는 상태였다. A회사의 약은 식약처에서 동등성 입증이 완료된 대체 가능한 약이며, 제조사 수준이나 유통회사의 수준 역시 훨씬 높다고 평가되는 업체의 제품이라 이것이 나을 거라고 안내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난리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환자가 원하는 약으로 조제가 불가능하니, 가능한 약국을 찾아보시는 것이 낫겠다고 안내했다. 이후 환자는 약국 다시는 안 온다며 나가버렸고, 인터넷 사이트에 약국 별점 1점 테러와 악플이란 악플을 다 달아놓았다. 


 뭐 별 수 있을까. 그냥 해당 내역을 사이트에 삭제 요청하고, 환자의 고객 메모에 해당 사건을 기재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야지. 일종의 집착이 아닐까... 


ps. 리뷰 삭제를 포털에 요청하고 삭제를 했으나... 이후 약국 이용 고객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아이디를 동원해서 별점테러를 하는 중이다. 진짜 집착의 끝판왕이네... 저 정도면 병이다. 





집착이 있는 환자의 경우 이런 케이스가 꽤 많다. 약국에서 할 수 있는 건, 해당 약을 구해 줄 수 있는 경우 어떻게든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환자에게 해당 내용을 안내하는 것 밖에 없다. 약국마다 구할 수 있는 약의 범주는 다 제각각이고, 이 때문에 생기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은 인지할 수 없으니... 이해시키기도 어렵고... 


정신질환 환자들도 자주 마주하는 터라 이런 일들이 생각보다 많고, 특이 약제에 대해 미친듯이 길길이 뛰는 환자까지 어찌하지는 못하겠다. 이런 환자의 처방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심적인 부담이 너무 커서, 지치는 일은 생각보다 빈번하다. 모든 상황에 맞출 수 없는 현실에서는 그에 맞게 대안을 찾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조차 당하면 그날은 참 마음이 힘들게 끝나는 듯 싶다. 



 



   

작가의 이전글 약사도 아프다 9 - 세상에서 혼자가 된 느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