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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약 Jan 03. 2022

아프니까 환자다 5 - 향정 중독자

향정신성의약품에 중독된 사람들

스틸녹스정 1정씩 10일분


아침부터 이상한 처방전이다.손도 벌벌 떨면서 얇고 뭉개는 목소리로 얼른 약 달라고 시위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약값은 줄 수 없단다. 이건 무슨 소리일까? 아무리 봐도 이 할머니에게는 자비를 베풀면 안될 것 같았다.


DUR에 걸린 졸피뎀만 도대체 몇줄인가 


  DUR (Drug Utilization Review)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공하는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 중 하나다. 환자의 처방전에 기존 사용 약들과 겹치는 약이나 용량 과다, 금기 약물 등을 체크한다. 그런데 이 환자는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zolpidem) 처방을 지난 일주일간 너무 많이 처방 받은 것이다. 


 이 쯤되면 이 환자는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으로 봐야 한다. 약사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향정신성의약품 중독 환자를 간간히 마주하는데 딱 그 케이스다. 이런 환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특정 약물을 반복적으로 처방 받는다. 

 2. 해당 약물을 하루에 정해진 용량의 3-4배 이상 복용한다. 

 3. 병원에서 처방을 거부하면, 새로 생긴 병의원을 찾아다니며 처방전을 계속 끊는다. 

 4. 약을 왜 안 주냐고 시비, 폭행, 소리지름, 기물파손까지도 하며 약에 집착한다. 

 5. 절대로 본인부담금 등 계산을 하지 않으려 들거나, 혹은 돈이 많다면 현금 플렉스 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6. 일부 사람들은 주민번호나 외국인번호까지 위조하며 비급여로 해당 약물 처방을 시도한다.  


이 할머니 이런 특징들을 다분히 보였다. 심한 경우 경찰을 부르기도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이 약을 줘서 보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심지어 며칠 전 20대 여성이 비급여로 해당 약을 타기 위해 시도했는데, 위조된 처방전에 기재된 번호 역시 가짜였던 것을 잡아냈던 일이 떠올랐다. 아! 이건 약을 내줘선 안 될 것 같았다. 





최근에는 마약성진통제가 있냐고 전화가 심심치 않게 걸려온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상당수는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로 보인다는 사실. 아마 병의원이나 약국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약사들은 감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이 환자가 어떤 상태일지 말이지. 


전에는 나이든 사람들 중에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들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점차 그 연령대가 낮아지는 기분이다. 20대도 이런 케이스가 꽤 보이니... 환자에게 대놓고 말할 수도 없고, 깝깝한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난감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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