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Mar 11. 2023

나도 당신도 "이상한 엄마"가 될 수 있다.

백희나의 "이상한 엄마"를 보고나서, 일하는 엄마에 대한 생각

 지난 일요일,일하는 엄마로서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든 공연하나를 보았다. 바로 백희나의 이상한 엄마 , 알사탕, 장수탕 선녀님에 비해 귀에 꽂히는 노래는 없었지만 마음에 오래 꽂혀 여운을 주는 메세지가 있었던 공연이었다.

 미리 찾아본 공연 후기에서는 백희나의 다른 작품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 기억에 남는 노래가 없다, 잔잔해서 지루하다 등의 혹평이 많았지만 나는 백희나의 작품이 가진 한 방을 믿었다. 항상 동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어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던 그녀의 작품들.

 내용은 워킹맘인 엄마로 인해 열나고 아파도 혼자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 초등 1학년 호호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리고 그런 호호에게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일을 놓을 수 없는 엄마의 고달픔을 녹여낸 이야기. 복직 한지 이틀차인 나의 눈물샘을 마구 터뜨리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호호엄마가 급한 마음에 친정엄마에게 건 전화가 잘못 연결되는 바람에 하늘에 있는 "이상한 엄마"에게 한가지 미션이 떨어졌다. 아픈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던 이상한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두고 지상으로 내려오게 된다.  열나고 아픈 상황에서 엄마의 부재로 모든 걸 혼자 감내할 뻔한 8세 호호는, 예상치 못한 이상한 엄마의 보살핌으로 따뜻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상한 엄마와 함께 한 계란 요리로 속을 달래고, 숨바꼭질 놀이로 심심함을 달랜 호호. 이상한 엄마의 끈임없는 요리시전으로 집안 공기는 여느 때와 달리 훈기가 가득하다.

 엄마와 함께 등교하는 것, 놀이터에서 술래잡기하는 것이 소원인 호호는 해바라기처럼 늘 엄마를 기다린다. 바쁜 엄마지만 늘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믿기에 엄마가 일하는 게 싫지만은 않다는 너무 빨리 철들어버린 아이.

 나는 어떤 장면보다도 아픈 애를 두고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밀린 일에 어쩔 수 없이 모니터 앞에 풀썩 앉으며 한숨을 쉬는 장면에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지난 금요일 내 모습이 오버랩되며 볼에서 눈물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옆에 앉은 남편의 눈가도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바로 이틀 전 금요일, 유난히도 일이 바쁜 하루였다. 꼬박 9시간을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보내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마음은 급한데 컴퓨터 화면엔 처리해야 할 문서가 가득했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했던 그날. 호호엄마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비오는 퇴근 길, 아이 걱정에 서둘러 퇴근하던 호호 엄마는 이런 대사를 던진다.

 "빗물이 화살처럼 마음에 콕 박혀든다"

 그 대사가 어찌나 마음에 와닿던지, 컴퓨터 화면에 치던 활자가 화살처럼 가슴에 박혔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호호엄마가 화살같은 비를 맞으며 도착한 집엔, 구름처럼 포근한 솜이불 속에서 잠든 아이가 보이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 옷걸이에 걸려있는,차마 챙겨가지 못한 이상한 엄마의 저고리를 물끄러미 보다, 그 저고리를 조심스레 입어본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첫 출근날, 어린이집 원장선생님께서 보내신 한장의 사진을 떠올렸다.

 지난 주 첫 출근때 원장선생님께서 서아가 포근하게 잠든 모습을 보내주셨다. 그 사진하나에 눈물이 핑 돌았다. 포근한 구름이불 속에서 호호가 편안히 낮잠을 청했듯 ,서아도 그렇게 선생님의 보살핌 속에서 구름속 같은 포근한 이불 안에서 낮잠을 잤겠지.

 극중 호호엄마가 이상한 엄마가 남기고 간 저고리를 입어보는 행동은 아마도 힘든 상황에서 구세주 같았던 이상한엄마의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가슴에 깊이 새겨넣는 것. 그리고 이상한 엄마가 남긴 저고리를 입고 도움의 손길이 간절한 곳에 찾아가 그녀도 누군가의 이상한엄마가 되어주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누군가의 돌봄노동에 빚지며 또 갚으며 살아가는 선순환의 구조에 놓인 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존재들로 인해 우리의 아이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하루를 무사히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나의 노동을 위해 누군가의 노동에 빚지고 있는 나.  어찌보면 나 또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부족하나마 누군가의 이상한엄마가 되어주며 그 빚을 갚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그런생각을 하니 일하는 엄마로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죄책감이 10그램정도 덜어진 것 같다.

 이상한 엄마가 저고리를 남기고 간 것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갚아나가라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자신이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백희나 작가의 작품 속 한방이다.

 그렇게 빚을 지고 나름대로 갚아가며 하루를 살아가는 나 그리고 모든 엄마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이상한 엄마가 필요하지만 또한 당신도 누군가의 이상한 엄마가 되어주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네요. 그러니 아이에게 죄책감 갖지 말아요. 그것이 최선인걸요"

 나는 그렇게 오늘도 이상한 엄마가 남기고 간 저고리같은 출근룩을 입고 나를 기다릴 27명 아이들의 이상한 엄마가 되어주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본다.

 

작가의 이전글 전주핫플카페에서 5분거리, 대단한 발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