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Mar 12. 2023

나와 당신의 연결고리,"학동문구사"

급변하는 세상 속 변하지 않는 곳이 주는 마음의 위안

 어제 엄마의 생신 축하겸 근 한달반만에 친정에 왔다. 지난 일주일간의 피로를 온몸에 덕지덕지 단 채 무거운 몸으로 도착했으나, 우리가 도착한 곳 까지 슬리퍼를 신고 마중나온 아빠, 소고기 듬뿍 미역국에 갖가지 반찬들로 식탁가득 채운 엄마의 밥상, 살빠진 우리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엄마의 따듯한 눈빛. 덕분에 피로의 절반이 날아가 몸이 가뿐해 진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외할머니가 준 만원을 손에 쥔 서진이를 필두로 서아와 나는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각자 취향껏 과자를 고른 후 포근한 날씨를 만끽하러 2분 거리의 내 모교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따라 학교 맞은 편에 자리한 추억의 문구점 "학동문구사"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마법에 이끌리듯 양손에 두 아이의 손을 하나씩 잡고 조심스레 문구점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그 시절 아주머니가 너무도 같은 모습으로 떡하니 서계신게 아닌가?

 짙은 쌍꺼플의 눈에 짧은 파마머리, 푸근한 인상의 그때 그아주머니. 달라진게 있다면 늘어난 주름 몇개와 희끗해진 머리. 30여년의 세월을 통과하며 할머니로 변했다는 사실 하나였다. 벌어진 입을 살짝 다물며 매장안을 휘휘 돌아보았다. 그 시절과 정확히 같은 진열대의 모습. 나는 그곳에서 주머니속에 동전을 짤랑대며 과자를 고르던 초등학교 시절 소녀로 변해있었다.


 그때 입구의 포켓몬카드에 시선이 뺏긴 서진이에게,


 "그거 신상이다, 어제 나왔다"

 아주머니가 내뱉으신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말투도 너무 같아서 또 한번 놀랐다.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저 여기 초등학교 졸업생이예요"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주머니는 반색하며

"몇회 졸업생이고" 라고 물으셨으나

나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대신


 "저 여기 만두 진짜 몇십개 사먹었었어요, 그 간장맛에 홀딱 반해서 그때 받은 용돈 다 여기 털어넣었어요"


 그말에 웃으며 대충 언제적인지 아시겠다고 하셨다.

 하교 후 늘 이곳의 만두, 뻥튀기 위에 올려진 떡볶이, 피카추돈까스 등을 사먹으며 허기를 달래던 시절. 초등학교 6년 개근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곳 "학동문구사"덕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잠시 추억에 젖은 내게 할머니는


 "그때가 좋았다, 애들도 바글바글해서 장사할 맛 낫제,요즘은 애들도 많이 줄고 근처에 대형마트까지 생겨서 영 재미가 없다"


 라는 말과 씁쓸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도 덩달아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보아하니 서진이처럼 포켓몬카드를 사러오거나,나처럼 추억팔이를 하는 어른들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시는 듯 했다. 아주머니께 이곳 덕분에 그 시절 아이들이 재미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며 위로아닌 위로를 하며 그 시절 단골메뉴였던 꾀돌이 쌀대롱을 집어들었다.

 어느새 서진이도 양 손에 포켓몬 카드를, 서아도 색색의 카라멜 네개를 손에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아까 편의점에서 돈을 다 써 수중에 백원 하나가 없다는 사실에 난감해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좌이체 되나요?"

라는 내 말에 아주머니는 당연히 된다며 요즘 애들은 카드들고 다닌다고 하셨다.

 엄마가 준 동전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이곳에서 계산하던 게 당연하던 그 시절을 살았던 나는 그말이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서둘러 송금을 하고 나오며 나는 아주머니께

 "아주머니 건강하세요 또 올게요", 아주머니는 내게

 "그래 애둘 잘 키우고 건강해라 ,하도 거쳐간 애들이 많아가 누군지 모르겠다 담에 또 오면 기억해주께"


서로 기약없는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그때 저 멀리서 고등학생 한무리들이 "할머니"라고 외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내겐 아주머니인 "할머니"는 "그래 왔나" 하며 반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며 생면부지인 그들과 동질감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다. 저들과 이 "학동문구사"라는 매개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져왔다.

 몇 년 후 저들도 나 처럼 두아이들을 데리고 와 물건을 고르며 추억을 회상하게 되겠지?  그때까지 "학동문구사"가 건재해주기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급변하는 세상 속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주는 마음의 안정은 실로 대단한거니까...

작가의 이전글 나도 당신도 "이상한 엄마"가 될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