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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l 22. 2023

산책이 좋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여름 아침 산책이 내게 준 것들

  길고 지루한 장마로 인해 근 일주일만에 산책을 재개했다. 산책을 시작한 지 이주만에 장마가 와서 한창 불타오르던 산책욕이 살짝 사그라들려던 차, 얼마전 도서관에서 빌린 손미나의 ”괜찮아 그 길끝에 행복이 기다릴거야“책이 꺼져가던 산책욕에 작은 불씨를 던져주었다.

 토요일 아침 6시 10분, 방문틈새로 새어들어온 빛에 눈이 부릅떠졌다. 컴퓨터 책상 의자 팔걸이에 걸쳐놓은 아디다스 레깅스에 긴 티를 받쳐입고 선크림을 대강 바르고(얼굴에 흰 크림 뭉침은 모른척하고) 흰 운동화에 발을 구겨넣고 현관문을 나섰다.

 발이 땅에 힘껏 닿이면서 느껴지는 감촉에 에너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적당히 선선한 여름 새벽녘의 공기가 살갗에 닿이고,밤새 내린 비에 촉촉히 젖은 풀냄새가 코끝을 스치고,나직이 울려대는 새들의 지저귐, 쓰르라미,매미소리들이 청량하게 귀에 울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모든게 다 좋아서 너무 좋다 라는 말을 혼자 내뱉으며 앞으로 앞으로 힘껏 걸어나갔다.

 산책을 하다보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을 많이 만난다. 새벽부터 걷는 비교적 젊은 나를 한번씩 힐끗 바라보고 가신다. 그 시선이 내겐 그렇게 느껴진다. “젊은이가 산책의 매력을 일찍이 알아버렸구먼” 삼삼오오 모여걸으며 담소를 나누며 주름진 얼굴에 웃음꽃이 옅게 피는 어르신들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면 저렇게 산책하는 낙이 있겠구나. 그런면에서 나이든다는게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걷다보면 내 안의 나를 많이 마주하게 된다. 특히나 오늘 같이 이어폰을 가지고 오지 않은 날엔. 최신 유행의 음악 대신 자연의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내 안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요즘 고민거리들, 나를 복잡하게 만드는 생각들.내 마음 속에 얹힌 돌덩어리들. 길에 한 발씩 내딛으며 그런 것들도 함께 길 위에 올려둔다.

 걷다보면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때가 있다. 지금 이순간 이렇게 좋은데 그런것들을 생각해봤자 무슨 소용이냐며. 마음 속 돌덩어리들을 내가 가는 길위에 두고 힘껏 두발로 걸으며 부서뜨리자는 심정으로 더 세게 발을 굴러본다. 아 좋다 이 공기. 새벽의 어슴푸레한 햇살이 비추는 초록초록한 이 풍광들.

 오늘은 토요일이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걸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기분좋게 숨을 들이쉰다. 7시 ,주말이면 어김없이 이시간에 일어나는 아이들, 아마 아이들은 깨서 울고 불고 하며 엄마를 찾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걱정도 지금은 다 소용이 없다. 나는 지금 이곳에 있으므로 한달음에 달려갈 수 없다. 그 사실이 아이러니 하게 안도하게 한다.

 걷고 걷다보면 저 끝엔 뭐가 있을까? 궁금하지만 너무 늦으면 감기걸린 아들의 9시 병원 예약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잽싸게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가는 길 양쪽 길가에 핀 파스텔 보라색 꽃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가는 길은 더없이 행복하다. 집으로 도착해선 꼭 샤워를 한 것 마냥 마음 속 찌꺼기들이 싹 사라진 개운한 기분. 물론 땀범벅에 절은 몸을 찬물로 샤워해야 그 개운함이 몇 배의 효과를 안겨다 준다는 건 안 비밀이다.

 이 좋은 산책, 너무 늦게 알아버렸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너무 다행이다. 아까의 내가 의문을 가졌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 것 같다. 내가 가던 그 길 끝엔 무언가 특별한게 아니라 그냥 지금 이순간 이 길을 걸으며 느꼈던 행복감이다. 손미나씨의 책 제목이 시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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