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Aug 10. 2023

사우나 중독자지만 세신 초짜의 목욕탕 일기

목욕탕에서 받은 세신이 내게 준 치유

 태풍 카눈을 뚫고 아이 둘을 차례로 등원시킨 뒤 집앞 10분 거리의 사우나에 당도했다.

 내 방학 후 바로 이어진 아이들의 방학으로 끊이지 않는 스케쥴을 소화해냈고, 학기 중 못만난 사람들과 차례로 만남을 가졌다. 예정대로라면 오늘도 친구들과 공주여행가는 날이지만 태풍의 위력이 걱정되어 방학 마지막주로 미뤄졌다.

 오늘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았다. 방학 중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말이다. 보통 사우나를 학기 중 주말에 남편에게 두 아이들을 맡기고 오곤 했는데 그때의 나는 늘 시간에 쫒기며 두 눈동자가 불안한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두 아이는 등원한 상태에 남편은 혼자 집이다. 여유롭게 느긋하게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기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배고픔도 잊을만큼 신이 났다.

 목욕탕 입장 순간부터 물을 한잔 마시고 느긋하게 입장한다. 천천히 자리를 잡고 총 네개의 탕을 차례로 들어간다. 늘 온탕만 갔다가 건식사우나를 들르고 냉탕가고 30분 컷으로 끝났던 지난 날들. 오늘은 본전을 뽑겠다는 일념으로 온탕, 열탕, 이름이 생각안나는 두개의 탕을 차례로 섭렵한다. 심지어 마사지탕도 들어가서 세찬 물줄기에 내 등을 맡긴다.

 그러다 세신실이 시야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시간에 쫒겨 눈여겨 보지 않았을 그 글자. 불현듯 내 친구 가희가 세신받고 너무 좋았다는 말이 떠오른다. 늘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봤던 세신실이 오늘따라 가깝게 느껴진다.  등15000원, 전신25000원. 평온한 마음에서 일순 갈등이 일어났다. 처음이니까 가볍게 라는 마음으로 등을 선택하고 미지의 그곳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마사지샵에서 볼법한 침대 세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속옷만 걸친 덩치좋고 눈썹문신이 인상적인 아주머니께서 웃으며 반긴다. 나는 그 생경한 풍경에 쭈뼛대며 저기 등이요. 라고 소심하게 말을 내뱉는다. 그말에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에이 등은 아숩지. 전신 받아. 꼼꼼하고 시원하게 잘 해줄게. ”어쩐지 그말을 거역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그럼 전신해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분홍색 침대에 몸을 뉘인다.

 몸의 일부만 탈의하는 마사지샵과는 다르게 세신실은 그냥 쌩 알몸을 오픈하는 자리다. 그런 자리가 거부감이 들지 않는건 아줌마도 반 나체상태라 그렇다. 몸을 엎드리자마자 발 뒤꿈치 각질을 밀어주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후 때수건 두개의 날렵한 움직임이 쉼없이 계속 된다.너무도 생경한 느낌이다. 때수건 두개의 움직일 뿐인데 뭔가 시원하고 쾌감이 느껴진다.

 온 몸 구석구석 안닿이는 곳이 없다. 마사지는 일부만 시원한데 때밀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원하다. 구석구석 안닿이는 곳이 없을 정도다. 속으로 안도한다.


“전신 세신받기를 잘했다”


 친구 가희가 왜 극찬했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누군가의 손길이 여기저기 미칠때마다 뭔가 몸 속에서 기분좋은 호르몬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왜 진즉에 나는 목욕탕에서 세신받을 생각을 안했는지 이제와 후회한다.

 이상하게 옷은 자주 사며 겉모습에는 투자를 하면서 내 몸속에는 투자를 잘 안하게 된다. 이를테면 운동이라던가, 마사지라던가. 비싼 비용이 부담이기도 하거니와 티가 안난다고 생각이 들어서다.

 세신을 받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몸을 위해 돈을 아끼지 말자. 한 두달에 한 번 정도는 내 몸을 위해 세신이나 마사지를 좀 받아야겠다. 받고 나면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효과는 실로 크다는 걸 안다. 평소 신경쓰지 못하는 내 몸 구석구석을 누군가의 손길을 빌려서라도 매만짐을 해주자고..그런 사소한 결심을 한다.(사실 세신을 받을까 말까한 순간에 이 돈이면 서진이 서아 좋아하는 교촌 허니콤보 한마리값인데 그생각을 했다.)

 몸의 앞 뒤 양 옆구리 세신을 다 받고 끝일 줄 알았는데 뜨거운 수건으로 얼굴마사지까지 해주신다. 서비스받은 느낌이다. 시간을 보니 40분. 25000원이면 너무도 가성비 좋은 매만짐이다. 내 온몸의 때가 놀라서 다 달아날만큼 열정적이시던 세신사 아줌마. 그런 아줌마에게 전신 받길 잘했다는 말과 함께 다음에 또 온다는 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이이쁜 아가씨가 등만 받으면 쓰나. 온 몸 다해줘야 더 예뻐지지”

 그말이 빈말인줄은 세살 딸 서아도 알 정도 지만 어쩐지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리고 나는 아주머니께 수고의 의미로 생수값 천원을 더 얹어 26000원을 이체한다. 빙긋이 웃어보이는 아줌마의 모습에 괜스레 나도 뿌듯하다.시간을 보니 벌써 두시간째다. 방학이라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내가 챙겨야 할 두 아이들이 지금 당장 집에 없다는 사실에 기뻐온다. 서두를필요도, 뛰쳐나갈 필요도 없다.

 개운하게 샤워까지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태풍을 염려하는 아주머니들의 우려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하지만 이곳은 평온했고, 그보다 내 마음은 더욱 평온해졌다. 40분의 세신 , 처음으로 느긋하게 보낸 두시간. 그 어떤 해외여행이나 물건보다 개학 전 내가 내 자신에게준 가장 큰 선물이다.

 개학하면 또 와야지. 또 열심히 살아야 할 명분이 생겼다.

작가의 이전글 안타까운 후배 교사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