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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ug 18. 2023

당신은 얼마나 단호한 엄마인가요?

단호함이 무기가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할 때

 나는 단호하다는 말에 취약한 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넌 단호하지 못해”라는 뉘앙스의 단어를 풍기면 정곡을 찔린 듯 속으로 발끈한다.

 두 아이들과 함께 한 속초여행, 긴 산책로를 걷다 서아가 안으라고 보챈다, 첫째아들은 늘 그렇듯 엄마 손 이라고 짜증섞인 투로 외친다. 평소라면 둘째를 힘겹게 안고 첫째의 손을 잡았겠지만 그날따라 힘이 들었다. 00아 엄마 힘드니까 아빠 손 잡으면 안될까?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는 소리를 질러대며 짜증을 내고 내 손을 꽉 잡으며 세차게 흔들어댄다.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속으로 꾹 인내한다.

 그 화는 남편에게 향한다. 늘 같은 레퍼토리로

“쟤는 진짜 왜저럴까? 어디 나올때마다 스트레스 받아“라고 미간을 찌푸리며 하소연한다.

 나와 같은 표정을 짓던 남편은 내게

”그럴 때 좀 단호하게 해야해, 자꾸 받아주니 00이가 저러는거야“


남편의 말에서 “단호함”이라는 표현을 듣는 순간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그래서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거야? 나때문에 00이가 저런거라고?”

 

남편은 손사레를 치며 그런뜻이 아니라했지만 나는 이미 심통이 나있었고 ,화풀이라도 하듯  첫째 아이에게 다가가 화가 응축된 단호함을 연기한다.

”앞으로 다시는 엄마한테 손잡는다고 하지마, 너랑 같이 안다녀”

 더 돌아보자는 남편의 말을 무시한 채 둘째를 안고 주차장 옆 벤치에 털썩 앉았다. 남편의 그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모든 잘못을 내게 돌린 듯한 느낌에 화가 났지만 잠시 호흡을 고르고 보니 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정곡을 찔린 느낌이랄까?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난 늘 마음에 짐을 안고 산다. 동생을 유독 질투하는 첫째를 보며 “둘째때문에 얘가 애정결핍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우려를 꼬리표 처럼 달고 산다. 그리고 가끔 어디를 나가서 뽑기를 해달라고 하거나,장난감을 사달라고 할 때마다 나는 첫째아들의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줄까봐, 그 순간의 기억이 자라는 내내 속상하게 할까봐 거절하지 못했다. 그런 나의 단호하지 못함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서진이의 행동을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단호함은 나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마트나 백화점의 장난감 코너에선 심심찮게 아이들과 실랑이 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를 향해 잔뜩 찌푸린 인상을 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사주는 풍경들을 자주 접하곤 한다. 오락실이나 뽑기기계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앉은 자리에서 삼사만원은 기본이다.

 모두들 나같은 마음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단호하면 혹시나 상처를 입지 않을까. 정신적 외상이 생겨 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까하는 과한 우려. 단호함이 당연시되던 과거의 육아환경에 비해 공감중심의 현대 육아에서 단호함은 아이들의 마음에 손상을 입히는 무기로 전락해버린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요즘 학교 현장은 참 어렵다. 조금만 아이에게 상처되는 말 행동이 있어도 아동학대라 규정짓고 많은 선생님들이 직위해제를 당하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만큼 힘든 일을 겪는다. 대부분 자신의 아이가 학교생활에서 선생님으로 인해, 친구들로 인해 조금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하고 싶은 과한 보호 심리에서 나온 것이다.

 엄마로서 내 아이가 상처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온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과하면 아이에게도 좋지 못한 결과로 돌아온다. 조그마한 좌절에 노출되어도 너무 쉽게 주저 앉아버린다.

 교실에선 그 모습을 자주 본다.27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는 교실에서 발표를 하려고 아이들이 손을 들었을 때 자신이 선택받지 못하면 표정이 일그러지고 짜증섞인 투정이 곳곳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가정에선 늘 주목받던 아이가 많은 아이들이 생활하는 학교에서 주목받지 못할 때 오는 심리적 좌절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나를 비롯해 요즘 일부 부모들은 유년기를 꼭 질병대하듯 과하게 관리하는 것 같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입게 하지 않으려 온몸에 완충재를 꽉꽉 넣어놓은 채 세상에 내놓고 싶은 마음일까?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낸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유년기에 머무르며 부모가 다해결해 주기 만을 바랄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학교나 단체생활은 심리적 좌절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배움터가 된다. 다양한 아이들과 생활하며 생기는 갈등에서 타인의 마음도 이해해보며 적절히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많은 아이들을 관리하느라 엄마와는 다른 단호할 수 밖에 없는 선생님과의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며 세상에 대처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의 잘못된 사랑이 아이들이 겪어야 할 적당한 심리적 좌절감과 그를 극복해나가는 마음근력을 약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나도 반성할 부분이다. 글을 쓰다보니 삼천포로 빠졌지만 이제 서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마음 속으로 정리가 되는 듯 하다.

 그 작은 속은 다 알지 못하지만 우려만큼 아이들은 부모의 단호함을 큰 상처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첫째에게 사고 싶은 걸 좀 안사줬다고, 힘든 상황에서 손잡는 걸 거절했다고,어쩌다 큰 소리를 한 번 내었다고 그걸 두고두고 얘기하진 않았다. 납득이 되게 얘기해주면 수긍하는 아이었고, 그 순간 짜증이나 투정은 부렸지만 그것을 내내 마음에 두고 엄마인 나를 미워하거나 상처받진 않았다. 그저 단호함이 아이에게 무기라고 생각한 내 마음의 문제였다.

 그래서 둘째가 늘 첫째에게 결핍을 준다고 생각한 내 마음의 문제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동생으로 인해 겪는 심리적 좌절이 알게 모르게 첫째의 마음근력을 키워주고 있을지도 모르니까...대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애정표현이나 스킨쉽을 많이 해주며 건강한 마음근력을 키우도록 내가 노력해야겠지? 그래야 단호함마저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느낄 수 있을테니까..

 단호함이라는 말만 들으면 발끈하던 과거의 나에서 벗어나 이제부터 아이들을 위한 단호함을 장착하기로 한다. 물론 그 단호함이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휘둘러야 하는 부드러운 검이라는 것을 늘 인식시켜 줘야겠지만 말이다.

#단호함이필요해#사랑을담은단호함#육아일기#에세이#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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