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Dec 26. 2022

7년전 잃어버린 휴대폰, 사랑의 징검다리가 되어주세요

누군가가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관심의 미덕이 필요할 때

나는 어딜가든 흔적을 남기고 오는 사람이다. 가방, 휴대폰, 머플러, 화장품 등. 심지어 대학 면접고사에 주민등록증을 까먹고 가고, 결혼 반지를 두번이나 잃어버려 부모님과 남편의 속을 타게 했다.



처음 남편을 소개시켰을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은 빼놓고 다니면서 신랑감하나는 잘 골라왔네." 아마도 내겐 없는 꼼꼼함을 보신 것 같다.


부부교사인 우리가 결혼 후 처음 맞게 된 여름방학, 남편은 시험공부로 인해 눈코뜰새 없이 바빴고 나는 여유가 생겼다. 그때 메신저를 통해 친구에게 받은 한 장의 사진이 나를 단박에 제주도로 잡아끌었다. 자신만 두고 간다고 샐쭉해진 표정의 신랑을 뒤로 한채 나는 들뜬 마음으로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마주나온 친구와 한잔 술을 곁들이며 제주도의 밤을 오감으로 만끽했다. 5박 6일 동안 우리는 발닿는대로 여행을 했다. 해안도로를 하염없이 달리기도 하고 지나다 예쁜 포토스팟을 발견하면 주저없이 차를 대고 풍경을 맘껏 사진에 담았다.


close

게스트하우스를 매일 바꿔가며 머무는 재미도 쏠쏠했다. 낯선여행자들과 저녁을 먹으며 나누는 담소는 짜릿하기까지 했다. 구석구석 숨은 카페를 찾아 책을 읽으며 여유도 부리고, 동문시장 바닥에 쭈그려 앉아 고등어김밥, 오메기떡을 먹으며 여행의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제주도의 마지막날, 꿈같은 시간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출발 20분 전 공항에 도착한 나는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제야 비행기표를 다시 확인한 나는 그자리에서 어제 본 돌하르방처럼 굳어버렸다. 도착시간을 출발시간으로 착각해서다.


누구를 탓할 이유가 없었다. 허탈하게 뒤돌아나와 비행기표를 다시 끊으려 줄을 섰지만 이미 표가 매진된 상황이었다.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다. "내일 11시30분 비행기 예매완료, 하루 더 있다와." 망연자실한 내 목소리를 위로하듯 따뜻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왔다.


그 사건은 다음의 일을 위한 하나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혼돈을 뒤로 하고 나온 내겐 하루의 선물같은 시간이 다시 주어졌다. 친구는 위로의 회를 사주었고 우리는 구좌읍의 해안가를 돌고 카페를 한 군데 더 갔다. 다음날 나는 비행기 시간을 숫자 하나라도 틀릴까 머릿속에 한자한자 넣은 후 차에 올라탔다.


그러던 중 황금빛 해바라기밭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친구는 주저없이 차를 세웠다. 흥분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가지고 나오는 나에게 친구는 "뭣하러, 나의 DSLR 카메라가 있잖아"하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찰칵찰칵. 무수한 셔터소리와 함께 제주도의 해바라기밭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빨리가자"는 친구의 재촉에 차에 올랐고, 여행내내 함께 한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며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출발 30분 전에 도착했고, 친구를 향해 나는 힘껏 손을 흔들어댔다.


비행기 표를 확인하려 가방으로 뻗은 내손이 허전했다. 그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당연히 있어야 할 휴대폰이 아무리 휘저어도 손에 닿지 않았다. 차에도 없다는 친구의 목소리가 나를 더욱 절망케 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전화를 걸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위치추적도 먹통이었다. 갑자기 불길한 사실하나가 나의 뇌리를 재빠르게 스쳤다. 해바라기밭, 차 천장. 그렇다. 어이 없게도 나는 휴대폰을 차 천장 위에 두었던 것이다.


해바라기 밭에 정신이 팔려 휴대폰을 그곳에 놓은 손가락을 이제와 탓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순간 혼자 번개맞은 사람처럼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비행기 출발시간 안내멘트가 나를 일으켜세웠다.


지갑케이스로 둘러싸인 휴대폰엔 카드, 주민등록증, 지폐가 있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망연자실 흐린 눈을 하고 공중전화를 찾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울음을 토해내는 나에게 집으로 오는 기차표 좌석과 시간을 알려주는 남편의 담담한 목소리가 귀에 흘러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휴대폰과 함께 송두리째 날아간 하와이 신혼여행사진, 친구들이 보내준 결혼식 영상과 사진들이 어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딩동' 택배가 온 알림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경기도로 시작하는 낯선 주소와 전화번호. 조심스레 뜯어본 택배 속에 든 진분홍의 물건을 보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휴대폰이 살아돌아온 것이다. 살포시 열은 케이스 안 휴대폰은 그야 말로 비행을 세게 한 모양이다. 가뭄에 쩍쩍 갈라진 마른 논 형상을 한 액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기적적으로 내 품으로 뛰어들어온 휴대폰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재빨리 택배상자 겉면에 쓰인 낯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고맙다를 연발하는 내게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 자전거 여행 중에 길바닥에서 발견했다"며 "여행 중에 휴대폰을 분실한 적이 있는데 돌아가신 엄마 사진이 가득했거든요. 그때의 속상함이 생각나서요."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속상해할 마음을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헤아린 그녀의 마음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일은 두고두고 회자돼 그는 내 인생의 귀인으로 남았다.


그로부터 7년 후, 여전히 흔적을 남기고 다니지만 두 아이는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분실물을 허투로 여기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아파트 안에서 주운 작고 사소한 물건이라도 관리사무소에 맡기곤 했다.


최근에 나의 작은 동행도 생겼다. 잃어버린 모사사우르스와 관리사무소에서 눈물겨운 재회를 한 아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들은 그네를 타다 발견한 캐치티니핑 피규어를 의기양양하게 손에 잡아들고 또박또박 관리사무소로 향하던 그 작은 발걸음이사무치게 사랑스러웠었다.


하지만 세상사람 모두가 우리와 같지 않은 법. 얼마 전 TV에서 나온 KTX 직원의 고객 분실물 탈취 사건, 카페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아이가 애타게 찾고 있어요' 글들을 보며 문득 7년전 귀인이 떠오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한가지 희망을 걸어본다. 7년전 내가 그러했든 선순환의 고리가 돌아 애타게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들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길 말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의 만남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글을 읽는 당신이 그들의 징검다리가 되어주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달걀껍질 누가 개수대에 넣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