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ch story do you prefer?
Which story do you prefer?
The one with the tiger. That’s the better story.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대학내일 잡지를 뒤적이다 우연히 뮤지컬 관람 교외활동을 보게 되었고, 별 생각 없이 신청했던 그 선택이 처음으로 무대 예술과 마주한 순간이 되었다. 내가 처음 본 작품은 잭 더 리퍼.
아직도 그날의 막이 오르던 찰나가 선명하다. 기껏해야 15평 남짓한 무대 위에 기둥이 세워지고, 회전 장치가 움직이며 공간이 순식간에 변주되었고, 나는 신도림이 아니라 런던의 어둑한 골목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넘버가 끝날 때마다 터져 나오는 박수와 환호가 생경했고, 어색하게나마 박수를 치며 나도 무대를 느낄줄 아는 청중인냥 으쓱해졌었다. 막이 내린 뒤 극장을 나섰을 때, 무엇을 본 것인지 곧바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경탄했고, 저물어가는 저녁 내내 발걸음은 현실에 있었지만 마음은 무대 위를 계속 배회했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나는 무대와 연기, 그리고 앙상블의 최상의 하모니인 뮤지컬에 매료되었다.
틈이 날 때마다 여러 뮤지컬을 극관했지만, 이번 만큼 인상적인 뮤지컬은 없었다. 아니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나? 별다른 조사 없이 관람한 탓에, 노래가 없다는 사실을 인터미션 때가 되어야 깨달았다. 1막 내내 넘버를 기다렸지만, 끝내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하긴, 박정민 배우가 노래를 그리 잘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뮤지컬을 도전했다고 해 의아했었다. 사실 그래서 박강현 배우 회차를 선택하기도 했다. 뭐랄까.. 이 작품은 기존의 뮤지컬도, 그렇다고 연극도 아닌 새로운 공연 양식처럼 느껴졌다. 노래도, 악기도, 앙상블도 없는 140분 동안 무대는 배우의 열연만으로 스펙터클한 바다 한복판으로 깊숙이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관람했을 때, 무대 장치가 크지 않고 활용이 다채롭지 않아 GS아트센터가 극을 감상하기에 그리 적합한 공연장은 아니라 여겼다. 그런데 이번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는 프로젝션 영상과 음향이 정교하게 어우러져서, 마치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했다. (일하다가 10분 전에 뮤지컬 보러 갈 수 있는 최고의 위치..우리 회사의 최고의 복지이지 않을까..)
라이프 오브 파이를 책이나 영화로 접한 관객이라면, 파이가 리처드 파커와 배 위에서 함께 생활했다는 서술이 허구에 가깝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전 정보 없이 공연을 관람했기 때문에 해당 서술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1막 내내 서사에 몰입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 특성상 사실 여부나 현실 가능성을 따지는 일은 큰 의미가 없지 않는가? 오히려 파이가 극한의 상황에서 선택한 생존 방식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떻게 표현되는지가 관람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뚜둥..
후반부에 상대적으로 짧게 등장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과 식인이라는 더 팩트풀한 서사가 기존 서사를 재해석하게 만들었고, 나에겐 유주얼 서스펙트보다 더 한 반전이었다..
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작품의 의미를 해석한 숱한 영상을 봤다. 혹자는 인간이 고통을 견디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허구를 발명하는지, 이야기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성찰하게 하는 서사라고 말한다. 또 다른 혹자는 이성과 본능 가운데 결국 파이를 생존하게 한 것은 본능이라고 해석한다. 그리도 종교적 상징과 결부지어 작품을 읽어내기도 한다.
이 모든 해석과 작가의 의도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1막에서 서술된 동물들과의 배 위 동거 이야기를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140분 내내 폭풍과 파도에 흔들리는 배 위를 연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흔들림 없이 단단히 존재감을 지탱해낸 박강현 배우를 믿고 싶기 때문이다. 호랑이의 골격과 움직임, 꼬리 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구현한 퍼페티어들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얼룩말과 오랑우탄의 붉은 장기까지 재현한 무대는 철저히 사실감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 완성도를 보고도 그들의 존재를 허구라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관객들의 다층적 사유가 열린 결말의 가장 큰 미덕아니겠나? 단일한 해석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관객 각자가 스스로 의미를 두도록 유도하니 이 작품 감상의 본질적인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다. 올해만 벌써 네 번째 뮤지컬을 관람했는데, 라이프 오브 파이는 연출의 신선함과 서사의 반전 덕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것 같다. 잭 더 리퍼 마냥.
살아보니 깨달은 바에 따르면,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예술, 배움, 나눔이다. 이 세 가지가 없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는 필수적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은 삶의 층위를 넓혀주었다.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 작품을 꼭 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