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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국중박, 어떻게 봐야 할까요?

by Choi 최지원

K 헤리티지의 새 지평을 쓰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며칠 전 국중박의 올해 관람객은 600만명을 넘기며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영국 박물관에 이어 세계 관람객 수 4위에 올랐다. 케데헌, 무료 입장, 그리고 박물관 굿즈(일명 ‘뮷즈’)까지, 이른바 삼박자가 톡톡히 공신 역할을 했다. 나 역시 올해만 벌써 세 번을 방문했으니,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이 명실상부한 한국의 명소가 되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실은 나는 전시회를 선호하던 사람이었다. 영어로 치면 Exhibition은 좋아했지만, Museum은 그다지. 박물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늘 비슷했다. 지루하다(서사를 잘 모르기 때문). 정신이 없다(전시장 자체가 여러 섹터로 나뉘어 있고, 그 안에 또 수많은 전시품이 공존하기 때문). 그래서 늘 무엇을 봐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박물관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더 고리타분한 내 인식의 전환은 국립중앙박물관 도슨트 실습에서 시작됐다. 하나의 작품을 맡아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는 실습이었는데, 나는 의도치 않게 두 개의 작품을 맡게 되었다. 원래 배정된 작품은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였지만, 당시 2025 경주 APEC을 맞아 경주로 대여를 나가는 바람에 황남대총 납분 유리병과 유리잔으로 급히 준비하게 되었다.


두 작품을 깊이 공부하고 여러 선생님들의 도슨트를 들으며 깨달은 건, 예술에 대한 흥미는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훨씬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 그래서 도슨트란, 각 전시와 공간 그리고 작품마다 감상법을 알려주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격증을 따고 3개월간 공부해보니, 도슨트는 역시 나에게 취미로서 딱 좋겠다는 잠정적 결론. 본업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훨씬 짜릿하고, 지금 직업으로 증명하고픈 욕심과 공헌하고 싶다는 바람 역시 더 크다. 무엇보다 취미에 생계가 걸리는 순간만큼, 그 취미가 빠르게 빛을 잃는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약간의 두려움도.. 경험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결론. 주저않고 도전한 지원이에게 무한 칭찬. (자래써 지워나)

Twenty years from now you will be more disappointed by the things that you didn’t do than by the ones you did do.- Mark Twain
황남대총 납분 유리병, 유리잔을 설명하는 나. Hook-Content-Story-Wrap 도슨트 정석대로 스크립트를 짰더랬다.



사설이 길었지만 다시 본론으로 가서, 요로코롬 생긴 박물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국중박 도슨트 투어를 다녀왔다. 역사 교사 출신의 국재인 도슨트님이 진행해 주셨는데, 도슨트님 역시 무엇을 볼까에 앞서 어떻게 볼까에 대한 감상법을 먼저 던지며 박물관의 감상 요령을 설명해주셨다. 1년에 600번도 넘게 국중박을 오고 가는 분이라니 이런 다수 경험자의 팁을 안 믿을 수는 없지.


✔️ 재방문 여부

- 재방문이 어렵다면? 대표 작품부터 보자. 뉴스나 공식 행사에서 귀빈들이 감상한 작품을 살펴보면, 그 박물관의 대표작을 단번에 알 수 있다.

- 재방문이 가능하다면? 한 번에 욕심내지 말고, 2시간 기준으로 1~2개의 섹터만 정해 깊이 볼 것.


✔️ 중요 작품 판단 여부

- 공간을 낭비하는 유물을 봐라. 작품의 크기와 상관없이, 유난히 넓은 공간을 할애받은 유물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 낭비는 곧 최고의 대우다. e.g., 사유의 방

- 작품 캡션에 황금 딱지를 찾아라. 우리나라 유물만의 특징이 담긴 표식으로, 국보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작품에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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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시각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는가? 최근 배우 박정민과 김금희 작가가 함께한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접하며, 독서 접근권이 제한적인 시각장애인들에게 매우 배려 깊은 시도이자 이야기를 공유하는 스펙트럼을 넓힌 도전적인 시도라고 생각했다. 비단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모든 독자의 독서권에 또 하나의 옵션을 얹어준 느낌이랄까.


요즘 전 세계 박물관의 전시 방식 역시 같은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보는 전시를 넘어, 오감을 충족하는 전시로. 국중박에서도 선덕대왕신종의 소리를 들려주는 동시에, 그 울림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영상을 함께 보여준다. 크게 체감되지는 않지만, 바닥에서는 소리에 맞춘 미세한 진동 역시 전달된다고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리 미세한 진동이라 하더라도 유물에게는 결코 가벼운 자극이 아닐 수 있다. 약한 유물일수록 그 영향은 치명적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꽤나 과감한 시도 아닌가? 사실 국중박은 내진 설계를 두 차례에 걸쳐 진행했고, 진도 8까지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지진이 난다면 다들 국중박으로 대피를..)



KakaoTalk_Photo_2025-12-13-19-57-03 017.jpeg 청자 참외 모양 병

청자 빛의 기준점이 되는 청자 참외 모양 병이다. 한국의 청자 기법은 중국에서 전래되었다.

(대부분의 아시아의 예술 기법은 중국 > 한국 > 일본으로 전파된다. 아참 불교도! 그래서 삼국의 예술은 비슷한 듯 다르고, 또 다른 듯 닮아 있다. 이 흐름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비교해보는 것도 하나의 묘미)


청자 빛깔은 옥에서 비롯된다. 당시 옥은 매우 값비싼 보물이자,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 대안으로 옥과 가장 유사한 빛을 구현한 청자가 성행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옥색에 가장 가깝고,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색의 기준이 바로 이 ‘청자 참외 모양 병’이다. 이름 또한 무척 직관적이다. 병의 중앙이 참외 모양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당시 예술에 자주 등장하던 참외와 포도는 모두 씨가 많은 과일이다. 이 형태에는 다산과 번영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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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색청자와 상감청자는 그 기법이 지나치게 정교하고 과학적이어서 오히려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는 중국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완성 확률은 낮았다. 고작 1/100.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도공들이, 얼마나 많은 청자를 만들어냈던 걸까.


이 섹터가 좋았던 이유는 단 하나의 완성작이 아니라, 그 뒤에 놓인 99개의 실패를 조망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상하게도 성공담보다 실패담이 더 마음에 남는다. 당시 사람들의 좌절과 함께, 그럼에도 다시 시도했을 도전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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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차례 애정한다고 말해왔던, 나의 달항아리.

원래의 이름은 백자 대호였다고 한다. 그렇게 투박한 이름이었다니. 백자 대호가 달항아리라는 문학적인 이름으로 개명한 이유는 이렇다.


근현대 대표 작가로 꼽히는 김환기는 익히 알려진 백자 대호 애호가였고, 이 항아리 앞에서 달멍을 즐겼다고 한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 달항아리. 그래서인지 이 작품 앞에는 지금도 가만히 앉아 달멍을 하라고 의자가 놓여 있다. 전시 공간 하나하나에 이런 서사가 붙으니, 재미가 없을 수가 있을까.


달항아리는 어딘가 조금 찌그러진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렇게 큰 대호를 한 번에 물레로 빚으려 하면 균형을 잃고 무너지기 쉽다. 그래서 위아래를 따로 만들어 접합했는데, 그 결과 가운데에는 마치 행성의 고리처럼 결합된 띠가 남는다. 이 약간의 불균형, 완벽하지 않음, 그리고 넉넉한 여백. 바로 이런 담백함이 한국적인 아름다움으로 불린다.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윤형근, 김창열 역시 한국의 미를 이야기한다. 완성을 위해 100%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 남겨진 여백의 여운과 깊이를 즐길 줄 아는 태도. 그 미학의 시작점에 달항아리가 있는 건 아닐까.

백자 대호라고 불릴 때는 왠지 모르게 투박한 도자기 같았는데,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얻고 나니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이름 하나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이름의 생명력과, 서사가 가진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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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중박 유물 중 진품 챌린지를 가장 많이 받는 경천사지 십층석탑. 진품 맞습니다 ~




한국의 매력을 알려주는 매혹적인 걸작이 가득한 국중박. 재정 구조 개편을 둘러싼 논의로 여론이 뜨겁지만 무료든 유료든 내가 이리도 귀한 유물을 수두룩이 남긴 조상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넷플릭스로 수많은 영화를 보지만, 결국 오래 기억에 남는 건 극장에서 본 영화다. 그만큼 실제 경험은 다르다. 그래서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을 꼭 한 번은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경험을 만드는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의 동인이 되는 핵심 가치이다. 이 핵심 가치가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들고, 행동은 경험이 되어 결국엔 기억으로 남는다.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를 찾듯, 박물관의 핵심가치는 유물의 질과 양에 있을 것이다. 매일 빠르게 늘어나는 국중박의 방문객 수가 국중박의 핵심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경험은 화면과 활자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유물+테크)가 공존하는 국중박을 꼭 가보기를 추천하며(중개비 없음), 도슨트 투어도 꼭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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