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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월 Dec 31. 2023

퇴행하는 남북관계, 거꾸로 가는 한반도 '평화복지국가'

한국이 유럽형 보편적 복지국가가 될 수 없는 이유

새해를 몇 시간 앞두고 두 개의 뉴스를 연달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한반도의 통일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불안정한 공존의 질서마저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더 나아가 이대로 가면 그냥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뉴스1. 쪼개진 한반도


12월 31일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한반도 위성 사진을 게재했다. 북쪽은 캄캄하고 남쪽은 환한 사진은 남과 북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머스크는 사진에 "미친 아이디어 : 한 국가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로 반씩 쪼개 70년 뒤 모습을 확인해보자"라는 문구를 달았다. 남북 분단 70년에 빗대어 공산주의의 쇠퇴와 몰락을 풍자하려고 한 것 같다.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게시물


머스크의 의도 따위는 중요치 않다. '미친 아이디어' 운운하며 가십꺼리로 만들어버린 한반도의 남과 북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위성사진처럼 동질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고착화되었다. 진짜 중요하고도 엄중한 현실은 이것이다. 이 분단체제라는 것은 언제 전쟁이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사실상의 전쟁 체제이며,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이 내면화 된 체제이다. 20세기 전쟁과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사라졌고 고통받았다. 


뉴스2. 적대적 관계로의 퇴행 


북한의 김정은 총비서는 12월 26~30일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총비서는 "남한과는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 부문 기구를 정리 개편하라"고 지시했다. 


이로써 남북관계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이전으로 완전히 퇴행했다. 


남북한 상호 체제인정과 상호불가침, 교류 및 협력 확대안을 명시한 '남북기본합의서'(1991년)에는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했다. 

한발 더 나아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수결한  '6.15 남북공동선언'(2000년)에서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2024년 새해, 남과 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에서 핵 전쟁도 불사할 수 있는 '적대적 관계'로 완전히 후퇴하였다. 윤석열 정부 들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한 한반도 평화의 시계가 급기야 멈춰버렸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를 밀어내고 다시 평화의 바람이 불어올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할까. 


한국이 유럽형 보편적 복지국가가 될 수 없는 이유


한반도에서 평화와 복지는 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적대적인 대결체제, 분단체제의 규정력이 강화되면 노동조합 활동, 진보정당 운동 등이 쉽게 '종북좌파'로 매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복지국가의 내적동력이 되어야 할 노동계급과 진보정당이 약화되면 정치, 사회, 경제적 진보와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길도 험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유럽과 같은 방식으로 복지국가를 달성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책 <평화복지국가> 표지


2013년 참여사회연구소가 펴낸 책 <평화복지국가>는 '분단체제'와 '복지국가'라는 동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주제가 상호통일적인 담론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분단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노동과 시민의 정치세력화에 기반을 둔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이 가능한가? 이 책이 제기하는 논점이다.


'분단전쟁체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지속해 온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김동춘 교수는 "복지 동맹에 기초한 복지국가 형성은 전쟁 체제 극복과 반드시 결합돼야 한다"(42쪽)며 "더 근본적인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복지국가는 국가 행정의 투명성과 민주주의 보장, 사회 계급간 타협, 사회적 타협의 체제이며 사회 통합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무척 중요한데, 분단 준전쟁 체제에서는 그것이 어렵다"(43쪽)고 지적한다.


어떤 복지국가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는 복지국가를 둘러싼 계급 관계,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절대적으로 좌우된다.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윤홍식 교수는 "분단 현실은 우리에게 과연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자본주의 근대 국가의 총화인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할 주체 형성과 정치적 연대가 가능한 것인지를 묻고 있다"며 "이런 질문은 남한 사회가 경이적인 경제 성장과 형식적 민주주의를 성취했으면서도 왜 서구 사회하고 다르게 시민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실현하지 못했는가를 묻는 것"(82쪽)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한국 복지국가는 복지국가를 뒷받침할 주체의 형성과 주체를 중심으로 한 계급 연대를 필요로 하며, 그 방식은 한국의 사회적 조건과 경제적 조건에 따라 상이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93쪽)이라고 설명한다. 윤 교수가 보기에 분단 체제는 이 지점에서 한국 복지국가의 전망에 규정력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분단 체제는 복지국가를 위한 주체 형성과 계급 간 연대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체제가 강해지고 평화 대신 전쟁의 위협이 강해지면 보편적 복지국가 전략은 동력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은 그 자체로 파멸이자 공멸이다. 생명이 사라진 땅에서 복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므로 터전의 항구적인 평화와 공존을 보장하는 체제 위에서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지속가능할 수 있다. 분단체제가 지배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평화담론과 복지담론이 만나고, 평화동맹과 복지동맹이 결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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