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량과 증량
1년간 비닐 완충제와 셀로판테이프에 묶여 있다가 겨우 풀려났다. 내게 뱃멀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두 달 전, 생애 첫 여행에서였다. 꼬박 하루를 배에서 보냈는데, 선체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통에 뒤섞인 내용물을 몽땅 밖으로 사출해 버릴 위기도 있었다. 모든 걸 쏟아내고 빈 껍데기가 되어버렸다면,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어디론가 치워져 버렸을 것이다.
선박에서 내린 후에도 환승을 거듭했다. 마침내 도착 한 곳은 어느 가정집의 안방, 침대 밑이다. 여기 도착한 후로 일주일 간은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다가 하루 세 번 밖으로 끌려 나왔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은 계측을 위해서, 나머지 한 번은 침대 아래로 청소기 노즐과 걸레가 지나다닐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스트레인 게이지에 가해지는 무게는 89.5와 90kg 사이로 결코 가볍지는 않았지만, 하루 두 번만 중량을 견디면 되었기에 할만하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오히려 지루했다.
한 주가 지나자, 일이 적어 한가하다던가 지루하다는 감상은 섣부른 판단이었음이 드러났다. 사용자가 감량 정체의 원인을 로드셀 이상 탓으로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거 완전히 엉터리네.”
사용자는 디지털 패널에 출력된 값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바닥에 내려섰다가 다시 발판 위에 올라섰다. 비록 카스나 메틀러 토레도, 싸토리우스 태생은 아니지만서도, 가정적 규모에선 제법 정확한 계측값을 출력한다고 자부했다. 검교정 시험도 없이 결과 값이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건 근거 없는 비난이었다.
“아침에 쟀을 땐 88kg였는데, 지금은 89kg 인 게 말이 되나.”
“이 사람아, 옷을 벗고 재야지!”
“그런가.”
사용자는 트렁크와 러닝셔츠만 남기고 발판 위를 세 번 오르내렸다. 스트레인게이지가 원래 길이로 돌아가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지만, 만듦새가 허접하다는 오명을 벗기 위해 용을 썼다. 3회 연속으로 88.5kg을 출력하자, 사용자는 마지못해 신뢰성에 대한 의심을 거둬들였다.
“하 씨, 이럴 리가 없는데.”
“집에선 안 먹는 척하면서, 밖에선 뭘 먹고 다니는지 알 수가 있나.”
침대 밑으로 들어가면 그대로 잠이나 잘까 했더니, 사용자는 정리정돈을 잊고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연결하더니 최대 음량으로 성인병을 이겨내는 식단에 대한 유 선생의 가르침을 듣기 시작했다.
“요즘 연예인들 사이에서 핫하다는 애사비 다이어트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애사비는 애플 사이다 비니거의 준말인데요.”
체지방,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대목 즈음에서 스마트폰이 스르르 미끄러지더니 이윽고 스피커 최대 출력과 맞먹는 비강 마찰음이 나기 시작했다. 대낮같이 환한 빛과 도무지 지칠 줄을 모르는 유 선생의 가르침 때문에 수면은 글렀다. 충전기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스마트폰에게 “요즘 스마트 기기는 사용자 생체리듬 봐가면서 알아서 조도, 볼륨을 조절하던데.” 주의를 줬다가 AA 건전지나 쓰는 딸피는 닥치라는 욕이나 들었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인 게이지의 쥐약이다. 밤새 발광하는 디스플레이와 소음에 시달리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 측정 때는 전날 저녁보다 낮은 값을 출력했다.
“이거 봐, 이상하다니까.”
“똥 쌌겠지.”
다시금 고개를 드는 성능에 대한 의혹은 뒷전이고, 자율운동 기능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침대 아래 손 안 닿는 곳으로 기어들어가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아침 계측이 끝나고 나서는 원래 자리인 침대 밑으로 밀려났다.
휴식은 잠깐이었고, 청소 시간이 돌아왔다. 성가시긴 하지만, 먼지와 머리카락 뭉치와 함께 뒹구는 건 질색이었으므로 청소기 굉음을 견뎠다. 다시 침대 밑으로 들어가길 기다리는데, 평소라면 사용자가 계측할 때 옆에서 논평이나 하던 사람이 아무런 숫자도 찍혀있지 않은 디스플레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청소기를 내려놓더니 조심스럽게 발판 위에 올라섰다. 41.5kg, 평소에 가해지는 것에 절반 정도의 압력이었다.
“니도 한번 재 봐라.”
다음 사람이 올라서자, 이전보다 더 작은 저항 변화가 감지됐다.
“이거는 갑상선기능항진증 같은 건가.”
“또 시작이다. 병을 만들어라.”
이후로 하루에 처리해야 할 중량 측정 횟수가 확 늘었다. 칭량 시간이 아침, 저녁으로 일정하기라도 했다면, ‘이것만 끝나면 쉰다.’는 안도감이라도 느꼈을 것이다. 이건, 대중없다. 일거리가 불시에 나타나 쉬지 못하고, 상시 긴장된 상태로 로드셀 위에 하중이 실릴 때를 기다려야 했다. 소파에 누웠다 느닷없이 칭량.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냉장고 속 간식을 손에 들고 측정. 음식을 먹어치우고 나서 또 계측.
“음식 무게만큼 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침에 분명히 이것보다 적었는데?”
해가 지고 나면, 누군가는 다이어트 중인데 어째서 체중이 줄지 않는지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다. 내 기능을 의심하면서도 반복해 로드셀을 짓밟아 결과를 확인하려는 건 무슨 심보인지 알 수가 없다.
“내 몸무게는 안 변하거든. 이거 봐, 아주 정확하다니까.”
누군가는 자신의 체중이 킬로그램원기라도 되는 양, 발판에 올라서서 내 기능이 양호함을 증명하려고 했다. 별로 고맙지도 않다. 종일 이어진 칭량에 스트레인 게이지 응력이 극도로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져온 사과 박스는 뭔데?”
“사과 식초가 다이어트에 좋다길래.”
“사 먹으면 되지, 그거 누가 담그라고.”
멋쩍은 발놀림에 걸려 침대 다리까지 미끄러져 부딪혔다. 침대에 박은 충격으로 전지와 단자 사이 공간이 점점 벌어졌다. 이대로 전류가 멎기를. 침대 그림자 아래서, 다음 생에는 일 년에 한두 번 꺼내 쓰는 베이킹용 저울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