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버거운 관심들
*주의* 본 그대로를 적었을 뿐이지만, 내부 오리엔탈리즘과 특정 연배의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글입니다.
자가용 없이 의성을 돌아다니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초록창 길 찾기에서 타라는 버스와 정류장 노선표를 대조해 봐도 겹치는 버스가 없었다. 버스 도착 안내 모니터를 봐도 막막했다. 노선표를 본다고 얼쩡거리고 있으니, 간이 대합실 장의자에 앉아 있던 아지매들이 어디에 가냐고 물었다. 엄마와 나는 조문국 박물관에 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지매들은 오는 버스를 타고 본인들이 내리는 곳에서 내리면 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더니, 버스를 기다리던 모두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요양 보호사 일을 하러, 누구는 생활 지원사 일을 하러, 또 누구는 목욕탕엘 간다고 했다.
“생활 지원사, 그거는 젊은 아들이 밥, 빨래하기 귀찮아서 하는 거 아니가?”
좁은 간이 대합실은 요양 보호사와 생활 보호사 아지매의 은근한 신경전으로 달구어졌다. 엄마가 내 옷을 잡아끌어서 대합실 밖으로 나왔다.
“니 잘났니, 내 잘났니 아주 시끄러워 죽겠다.”
“근데, 내가 봤을 땐, 둘 다 남을 요양시킬 때가 아니고 다 요양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어쭙잖게 노-노 돌봄 문제에 대해 나불대고 있는데, 대합실 안에 있던 한 아지매가 밖에 나왔다. 우리가 타지에서 왔는 지를 묻고는, “여서는 버스 탈 때 돈 안 내도 돼요. 그냥 타면 돼요.” 하고, 올해 새해부터 의성 시내버스가 전면 무료가 됐다는 정보를 전했다. 뜻밖의 관심 어린 조언을 해 준 사람에게서 라면, 박물관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와는 달리, ‘가다 보면 무슨 다리 같은 게 보이는데, 거기서 내려 좀 걸어가면’ 박물관이 나온다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내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대합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버스에 올라탔다. 금방까지 의성버스는 전면 무료!라고 알려줬던 아지매까지도. 승객이 우르르 올라탔는데, 오히려 버스 기사는 버스에서 내렸다. 아지매들이 ‘오는 버스를 타면 된다.’ 고는 했지만 확인 차, 내리는 버스 운전기사를 가로막고 버스가 조문국 박물관에 가는지 물었다. 버스 기사는 “내 쉬는 시간입니다.” 하고 정류소 앞 복권 가게에 들어갔다. 복권 가게에서 담배를 사고 나오는 기사에게 다시 물으니, “내 화장실 좀 가자.” 며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버스 출입문 앞에서 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볼 일을 보고 온 버스 기사가 나타났다. 절박한 심정으로 버스를 타도 되는지 물었다. 세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받은 것이 언짢던지,
“나 참, 어딘지 말해 주면 아나.” 하더니 “마, 타고 있는 아지매들 보고 (하차벨) 눌러 달라고 하이소.” 하고 운전석으로 갔다. 우리는 버스 기사의 불친절함에 경악했다. 엄마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쩔 줄 몰라하다가,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엔, 다음에 예정된 버스 번호가 나오 질 않았고, 이대로 차를 보내 버리면, 영영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좌석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던 아지매들은 뒤늦게 탑승한 우리를 보며 “왜 이제사 타는교.” 했다.
설상가상으로, 버스 하차 안내 방송 장치가 고장 나 있었다. 주변 아지매들은 연신 ‘거기서 내려가지고 쪽바로 20분쯤 걸으면 박물관 나온다.’ 고 하는데, 미심쩍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자기가 내리는 곳에서 하차하면 목적지로 갈 수 있다고 가장 큰 목소리를 내던 아지매는 여기서 내리면 안되고, 두 세 정거장쯤 후에 내려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막막한 심정으로 창가를 스쳐 지나가는 정류장 이름을 보고만 있었다. 비봉, 비봉 2리, 하2리 … 이대로 팔자에 없는 의성 버스 투어를 하나 했는데, 한 아지매가 여기서 내려야 한다며 하차 벨을 눌렀다. 도로 한가운데 조문국 박물관 500m라고 적힌 큰 입간판이 서 있었다. 우리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이 동네에서는 오는 버스 아무거나 타서 감으로 내리나 보다.”
“사람 다니는 길이 없는데.”
차도와 가드레일 사이에 난 좁은 길을 따라서 걸었다. 찻길을 따라 흐르는 개천에서는 너무 익은 포도 냄새가 진동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근처 금성산 고분군까지 한 바퀴 돈 다음, 버스 정류장을 찾아서 무작정 차도로 나왔다. 버스 정류장은 안 보이고, 갓길에 '포도 팝니다'라고 적힌 포터가 한 대 서 있었다. 안내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면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나오는 반 무인 판매 트럭인가 싶어 기웃거리고 있으니,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아재가 차 뒤편에서 나타났다.
"읍내 나가는 버스는 어데서 타야 돼요?" 물어보니, 트럭 옆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버스를 타면 된댄다. 정류장 표시가 트럭에 가려져 있나 했더니, 그도 아니었다. 아재의 말로는 지나가는 버스에 손을 흔들면 선다는데, 버스가 무슨 택시도 아니고. 배차 간격이 길고, 고령자가 많은 지역에선 그렇게 버스를 타기도 한단 얘길 듣기는 했지만, 실행에 옮길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앞서 의성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기사의 불친절함을 맛본 바, 정차지가 아닌 곳에서 버스를 세웠다가 쏟아질 버스 기사의 비난(그러나 지극히 타당한)이 상상이 갔다. 포도를 사지 않은 것도 멋쩍고 버스 타는 곳도 알아내지 못하고 "예... 감사합니다." 눈치를 슬슬 보며 게걸음으로 트럭으로부터 멀어졌다.
저 멀리 주차장이라고 쓰인 너른 공터에 마늘빵을 파는 푸드 트럭이 보였다. 이동하는데만 급급해서 관광하는 동안 차 한잔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보온 쇼케이스에는 마늘 페이스트와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윤기 흐르는 빵이 줄 맞춰 진열되어 있었다. 군침을 다시며 빵과 얼음 커피를 주문했다. 빵을 산 데는, 볼가심 말고도 다른 의도가 있었다. 체크카드를 넘기면서 버스 타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저도 가아끔 여서 버스 타고 의성에 나가는데요..."
푸드트럭 주인은 휴대폰으로 찍은 버스 노선과 시간표를 보여줬다. 성인의 머리에선 광배가 비친댔던가. 머리 후광 때문은 아니었다만, 훌쩍 높이 있는 가판대 하며 트럭 천장과 온열 쇼케이스에 달린 강한 조명 때문에 주인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새끼손톱만 한 금돼지 장식이 달린 팔찌뿐. 우리가 빈 일회용 컵을 돌려주고 트럭에서 멀어진 후에는 주차장 끝자락에 서서 횡단보도를 건너라며 팔을 흔들었다.
학미리 정류장에 앉아서 20분쯤 기다려서 버스에 탔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어떤 아지매가 "잘 갔다왔는교?" 하며 엄마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엄마는 얼떨결에 아지매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좌석에 앉았다. 어디서 본 사람인지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 손바닥을 맞부딛히며 반색한 아지매는 가음면에 있는 목욕탕에 갔다 왔다고 했다. 아지매에게 목욕탕을 멀리도 다녀오신다고 물으니, 가음면 목욕탕은 목욕값이 단돈 이 천 오백 원이라고 말했다.
돌아가는 버스에는 다행히도 안내 방송 장치가 멀쩡했다. 싼 가격에 목욕탕에 다녀왔다는 아지매를 추켜세우는 중에도 안내 방송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다. 남부 농협쯤부터 자리에 일어 나서 하차문 기둥에 매달려서 창밖을 확인했다. 다음 정류장은 의성 버스터미널이라는 안내에 하차벨을 눌렀다.
"만다꼬 누르는교. 어차피 종점인데."
아지매는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하차문이 열리고, 버스 안에 있던 승객이 우르르 내렸다. 그대로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면 되는데,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의성 아지매와 마주 섰다.
"예, 예, 들어가세요."
내일 이 자리에서 또 만날 것처럼 고개를 꾸벅이며 헤어졌다.
"나는 아까 저 아줌마를 못 봤는데 아는 척해가지고 놀랐다."
"아까 목욕탕 간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렇나."
인정머리 없는 도시인이 소화하기엔 고작 하루 치의 의성 아지매의 관심과 친절도 버거웠다. 기가 빠져서 이틀은 사회적 활동을 단절한 채로 집에서 여행을 반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