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지하철 타다가
요즘 H 트랙스에선 별 걸 다 판다. 머랭 쿠키 시식이나 슬라임 가판대는 놀랍지도 않다. 정작 주력 품목인 음반은 소홀한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하나도 없을 수가 있지."
최애의 신보를 손에 넣지 못한 캐럿이 분개했다. 세 사람은 본래의 목적을 잃고 매장을 배회했다. 덴마크 수도에서 왔다는 호랑이가 물러간 자리엔 난데없는 유아용품 코너가 생겼다. 매대에 캐릭터가 인쇄된 도시락과 수저, 가제수건, 내복을 입은 마네킹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거 딱 조카 사이즈 아닌가요?"
재작년에 고모가 된 캐피털 K에게 물었다. 팔뚝 길이 정도 되는 마네킹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캐피털 K는 손을 저으며, "어휴 엄청 컸지." 했다.
내 애도 아니고 아기를 가까이서 볼 일도 없으니, 아기들이 얼마나 빠르게 크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K가 조카 명절 선물이라며 인형을 사 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인형 보다도 커졌다는 말이지.
"나중에 조카가 고모가 인형 사준 것도 기억하려나요?"
"그러게...... 슬슬 돌아갈까요?"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흩어졌다. 전철 타러 가는 길 복판에 황토색 봉제 인형이 엎어져 있었다. 걸음을 늦추면서 누가 무슨 이유로 인형을 흘리거나 버렸을지 상상해 봤다. 누군가 크레인 게임 상품으로 뽑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버렸다 - 뽑기 기계 속 인형은 주로 인기 있는 캐릭터의 모습인데 반해, 널브러져 있는 인형은 어떤 캐릭터와도 닮지 않은 그냥 토끼 인형이었다. 게임 상품이라기보다는 아직 캐릭터의 명성에 눈이 뜨이지 않은 두세 살 정도의 아기의 물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걔는 참 속상하겠어.’ 지나치려고 하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칭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개찰구로 가는 계단 중턱 즈음이었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엄마 어깨 위에서 옷을 잡아당기며 보채고 있었다. 엄마는 “나 참, 잘 챙겨야지.”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이가 인형을 안고 가다가 손아귀 힘이 빠져 인형을 놓친 듯싶었다.
‘이 인형인가요?’ 손짓했다. 엄마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고 있던 아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떨어져 있던 인형을 주워서 짧은 보폭으로 다가오는 아이에게 줬다.
“감사합니다, 해야지.”
아직 말이 서툰 아이를 대신해서 엄마가 인사를 했다. 애가 인형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장면을 지켜보기엔 낯 간지러워서 서둘러 지하철 타러 갔다.
빈자리를 찾다 보니 조카와 고모로 보이는 사람 옆에 앉았다. 조카는 닌텐도 스위치에 코를 박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고모는 오락에 열중하고 있는 조카에게 근황을 물었고, 조카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안내 방송이 나올 즈음, 고모는 조카에게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 질문을 했다. 조카는 버튼을 연타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 새낀 좆밥이고요.”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 대답은 내 속의 어떤 감상적인 부분을 박살 냈다. 어린아이에게만 지켜줘야 할 동심이 있는 건 아니다. 어른에게도 지키고 싶은 환상이 있는데 이 경우엔, 인형 하나에 기뻐하던 꼬마가 버르장머리 없는 중닭이 되지 않을 것이란 환상이다. 성장기 내내 여러 사람의 보살핌을 받은 나 조차도 고약한 사춘기를 거쳐서 때 묻은 성인이 됐지만 서도.
그럼, 나도 어른 여럿의 환상을 깨버린 셈이다. 근데, 어른이 됐으면 '애들이 다 그렇지.' 넘어가야죠. 어쩌겠어요. 그죠? 아이가 깨어진 어른의 환상에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환멸에서 회복하는 건, 멋대로 환상을 품은 어른의 몫. 내 작은 호의가 어린아이를 바른 길로 계도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일지라도, 잠깐의 기쁨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환상쯤은 품어도 되겠지. 그것이 다시 떨어진 인형을 주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