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기차를 잘못 탔나요?

지옥으로 가는 길은 고속철도

by 김몽콕

월요일 새벽. 통근 기차 안에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승무원이 검표를 했다. 비몽사몽 중에 표를 보여줬더니, 기차를 잘 못 탔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D 역에서 내리 셔서 다음에 오는 기차를 타세요."


승강장에 있는 지연 안내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에 목적지인 O 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S 역으로 가버리는 열차를 타버린 모양이었다. 잠깐 정신을 빼놓은 대가로 소중한 오전 반차와 교통비를 날릴 뻔했다. 도착하기 전까지 쪽잠을 자려던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다리를 달달 떨면서 안내 방송을 기다렸다.



객실 통로로 나와서 내릴 준비를 하는데, 출구 옆 간이 좌석에 앉아 있던 승객이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차하고 나서도 출구 좌석에 궁둥이를 뭉개고 있거나 펼쳐 놓은 의자 위에 소지품으로 영역 표시를 해 두는 경우를 자주 본 터라,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상대의 반응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휴대폰으로 시계를 확인한 그 사람은 "여기가 O역인가요?" 하고 물었다. 빈 좌석이 허다한 새벽 열차 간이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정기권 소지자 거나, 오 탑승으로 앉아있던 자리에서 쫓겨난 사람일 공산이 컸다. 어느 쪽이건, 이 사람이 곧 도착할 D 역에서 환승하지 않는다면, O역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저도 O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승무원이 차를 잘못 탔다고, 여기 D역에서 내려서 다음에 오는 기차를 타라고 하더라고요."


차를 갈아타지 않으면 목적지에 가지 못한다는 말에 상대의 손이 떨렸다. 새벽 4시에 B역에서 기차를 탔다며 자신의 승차권을 나에게 보여줬다. 나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고 하니, 처음 본 사람일지언정 그의 일과가 시작부터 꼬이지 않게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O역에 도착하는 그 사람의 기차 번호는, 어찌 된 일인지 내 승차권에 적힌 열차 번호와 달랐다. 도중에 기관차를 분리하는 복합 열차인가. 어쩌면, 잘못된 날짜에 예약된 표일지도 몰랐다. D 역에서 내려 갈아타야 할 기차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로 달리는 열차는 감속하고 있었다. 곧 정차한다는 방송에,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할 수 있는 말이란, “아무래도 승무원을 찾아서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가 전부였다.



출입문이 열리고, 서둘러 승강장에 내려섰다. 휴대폰 액정에 승차권을 띄운 채로 발을 동동거리던 사람도 따라서 내렸다. 열차 안에서 승무원을 찾을 수 없으니, 밖에서 찾으려는 것 같았다. 열차를 오르내리는 인파 속에서 그 사람은 용케도 승무원을 찾았다. 나는 전광판에 적힌 차 시간을 확인하면서 그쪽으로 힐긋힐긋했다. 그 사람은 승무원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자신이 내렸던 열차에 다시 올라탔다. 그 사람은 애초에 기차를 잘못 타지 않았던 것이다. 얼굴이 따끔거렸다. 열차가 떠날 때까지 그쪽으로 눈을 둘 수가 없었다. 내가 발목 잡는 물귀신이나 기름진 빵으로 설계도를 얼룩지게 만든 주책바가지처럼 보였겠지.



전 선량한 의도를 가진 영혼일 뿐이니. 오, 주여! 절 오해받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호소하기엔, 의도가 좋았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가 어느 역이냐는 질문을 받은 순간부터 ‘그쪽도 잘못된 기차를 탔나 보군.’ 지레짐작하며 상대를 수렁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내가 잠겨있는 곤경에 심취해서 눈에 보이는 모두가 나와 똑같은 문제 상황에 다르지 않은 기분을 느끼고, 동일한 해결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기차는 역을 떠나 버렸고 실수를 돌이키거나 민폐를 끼쳤던 사람을 쫓아가 사과할 방법도 없다.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뿐이다. 만약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당신도 기차를 잘못 탔나요?” 는 불행의 동반자를 만났다는 확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한 질문 일 것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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