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까지 해야 했나
그는 항상 날 부르지. 왜냐면, 난 결코 드라마를 쓰지 않거든.
언홀리의 가사를 이상적인 판매자와 소비자를 표현한 문장이라고 하면 심각한 어폐가 있겠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깔끔하게 용역과 금전을 교환했으면 싶을 때가 있다. 요즘 들어 서비스를 받기 위해 과장되고 거짓된 이야기를 꾸며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몇 년 전, 컴퓨터보다 휴대폰으로 인터넷 사용하는 시간이 많아 인터넷 서비스를 해지하려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상담사는 처음엔 우수고객에 대한 할인, 사은정보를 늘어놓았다. 내가 “아니, 제가 더 안 쓰고 싶다니까요.”라고 하자, 요즘 인터넷 안 쓰는 사람이 어디 있냐, 잘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하라며 일방적으로 상담을 끊었다. 해지 방어 할인 혜택도 없이 몇 년을 더 서비스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자취생활을 청산하며 회선을 끊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찾아왔다. 해외 출장이 임박했고 명의 이전 할 만한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서야 겨우 인터넷을 해지할 수 있었다. 서비스 해지는 상담원의 고과에 마이너스인 사안이니, 회선 정리에 드라마를 요구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은, 두 번의 안경처방 거절이었다. 처음 간 종합 병원 안과에서는 "그런 건 로컬(동네 병원)에나 가라."라고 인공눈물 열여덟 박스를 처방하며 돌려보냈다. 두 번째로 간 동네 병원에서는 "심각한 짝눈이라 생각을 좀 해보자." 라며 진료비도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안경을 쓸 정도로 눈이 나쁜 건 아니라는 의미겠지.'
'아니 근데, 당사자가 불편하다는데 안경이 무슨 향정신성광학기기도 아니고. 처방하는 데 생각이 뭘 더 필요해?'
다시 안과에 갈 엄두가 나질 않아 기합으로 흐릿한 뉴스 자막을 주시했다.
"야! 자꾸 인상 쓰지 마. 주름 생긴다."
가뜩이나 TV 화면이 잘 안 보여서 불편한데, 이대로는 인상까지 더러운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론, "찡그리면서 뉴스 보다가 주름 생길 것 같아요." 같은 시시한 이유로 안경 처방을 내려 줄 것 같지 않았다. 통신사에 전화했을 때처럼 먼 글씨를 봐야만 하는 간절한 이유, 안경이 없으면 안 될 절박한 사연이 필요했다.
다시 동네 안과에 갔다. 의사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마우스를 잘각, 잘각 움직이며 "오늘은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죠?" 물었다. 조기 귀가와 안경처방을 가르는 중대한 질문이었다.
"지난번 선생님이 부동시가 너무 심하다고 안경은 다시 생각해 보자고 그냥 돌려보내셨거든요. 근데 전 안경이 꼭 필요해요."
의사는 얼마나 절절한 이유인지 들어보겠다는 듯 안경을 추켜올리고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내년부터 학교에 가야 하는데요. 이 상태로는 칠판을 볼 수가 없어요. 요즘도 칠판을 쓰나? 아무튼. 공부를 해야 하는데 칠판이 안 보이면 좀 곤란해요."
"그러세요..."
의사는 진료 기록에 적힌 나이와 액면가, 사연을 조합해 보려는 듯 모니터를 힐긋거렸다.
"그러니까. 마, 최선을 다해주세요."
의사는 절박한(?) 사정에서 느낀 부담 내지는 구구절절한 사담을 들어야만 하는 동네의원의 자조가 묻어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기 턱이랑 이마를 딱 붙여보세요."
세극등 앞 의자에 앉아 시력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프롭터 자각 검사, 자동 굴절검사, 동공 간격 측정이 이어졌고, 모든 과정은 체감상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검사인데 대체 그때는 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는 보조 렌즈를 끼운 검안테를 씌웠다. 진료실 여기서 저기까지 걸어보라고 지시한 후에, 책상에 앉아 처방전을 끼적였다.
“근데… 허…” 하고 운을 띄우더니,
“그 나이에 학교를 다시 가는 건가요?” 하고 물었다. 의사가 사연의 심층을 파고들 것이란 예상은 하지 못해서 뜨끔했다.
“그것이, 어쩌다 보니……” 로 얼버무리려 했다. 의사는 처방전을 인질로 삼아 도대체 무엇을 공부하려는 것이냐, 이제까지는 뭘 했고? 앞으로는 뭘 먹고 살 작정이냐? 질문을 던졌고. 나는 학생 때 끝났어야 할 진로방황을 이제서야 시작한 만학도역에 심취해 대답했다.
“흠, 보통의 사고방식은 아니네요.”
의사가 다 쓴 처방전을 내밀었다. 나도 평범하게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면 이렇게 까지 말이 길어지진 않았을텐데요, 라는 말은 꾹 삼켰다.
처방전을 펄럭이며 귀가했다. 마침내 안경을 쟁취(참고: 안경점 가기 전이었음) 했다는 기쁨에 벅찬 상태로, 누구든 붙잡고 ‘썰’을 풀어야만 직성이 풀릴 듯싶었다. 엄마는 식탁에 앉아 채칼에 양배추를 서걱서걱 미는 중이었다. 식탁 맞은편에 앉아 안경 처방받기가 이렇게나 어렵다고 떠벌렸다.
“니 진짜 말 많다.”
엄마는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별스러운 과정을 거친 탓인지, 코에 얹힌 안경을 자주 의식한다. 그럴 땐 극세사 천으로 렌즈를 닦는다. 어째서 안경을 위한 드라마가 필요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건 제2의 눈을 애지중지하도록 만들려는 안과전문의의 큰 그림이었다? 확신할 수 있는 점은, 시나리오가 고갈되었으니, 당분간은 눈을 아끼며 안과엔 얼씬도 안 하는 것이 답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