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에 대한 지레짐작
요즘은 집 근처 강변을 산책하는 것을 아침 일과로 삼고 있다. 잠을 제외하고 나면,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산책 중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의외성이 매력이다. 그럼, 회사에서도 늘상 예측불가, 기상천외한 사건과 조우할 수 있으니,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법하다. 그런데 의외성에서 오는 즐거움엔 단서가 달린다. 벌어진 일에 참여를 강요하지 않는 비강제성, 관찰자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는 거리 그리고 그 거리감에서 비롯된 무해함이다. 산책 경로는 강을 따라 닦여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강 건너 파크 골프장으로 가는 다리 위에서 물구경, 새 구경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산책로에서도 강이 보이긴 하지만, 군데군데 심어진 나무와 거기에 얽혀있는 덤불에 가려져 물 위에 떠 있는 새가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사방이 트인 다리 위에서 밧줄로 된 엉성한 난간에 매달려 물새를 구경하는 것이 이 일정의 대미라고 볼 수 있다.
산책 중 가장 많이 보는 새는 청머리 오리와 쇠오리다. 한 때, 청머리 오리 수컷보다 작은 쇠오리 수컷을 보고 ‘청소년이라 번식깃이 덜 자란 것 같다.’는 엉터리 관찰기록을 일기에 적은 적도 있지만, 이제는 둘을 (적어도 수컷에 한해선) 구분할 수 있다. 아무튼, 청머리건 쇠오리건 간에 오리들은 머리는 강물에 처박고 꽁지는 하늘로 치켜 든 자세로 물장구를 치며 먹이활동을 한다. 잠수 후 머리를 든 오리 부리에 아무것도 물려있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한입거리 저서성 생물을 사냥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추측일 텐데, 물살이 잔잔 한 날 강바닥에 붙어 있는 물고기 떼를 보고 생각이 좀 바뀌었다. 거짓말 좀 보태서,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 크기가 오리 몸통만 했다. 첨벙첨벙 소리가 오래도록 이어진 끝에 물에서 튀어나온 오리를 보면, ‘쇠오리는 거대한 괴어와의 격투 끝에 물고 있던 먹이를 잃어버렸다.’ 같은 상상을 하게 됐다. 치열한 먹이 활동 후에 오리들은 강기슭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서 목을 몸통에 파묻고 눈을 감은 채로 휴식을 취한다. 쉬고 있는 오리를 보고 있으면, 괜히 이불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리 깃털을 빼앗아 만든 파카를 입고 있으면서도 더한 온기와 안락함을 찾으려는 욕구에 흠칫한 적도 있다.
평소보다 바람이 차고 물살이 거센 날이었다. 다리까지 가는 동안 시커먼 민물가마우지 떼가 널따란 바위를 접수한 모습, 왜가리 한 마리가 유목 위에 걸터앉아 잿빛 강물을 주시하는 장면을 지나쳤다. 이상하게도 그날엔 오리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꽥꽥 소리가 그친 강엔 적막감이 돌았다. 평소 오리들이 깃털을 말리는 바위 근처 얕은 물에 작은 동심원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휴대폰 카메라를 줌 인해서 보니, 아주 작은 새 두 마리가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오리 떼가 떠난 자리에 남아 수영하는 칙칙한 색의 작은 물새 두 마리를 보고서, ‘무리로부터 떨어진 유조’를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보다 크기가 더 작은 참새나 딱새 할미새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드넓은 강가에 떠 있는 작은 새끼오리는 부모로부터 생존요령을 터득하지 못한 채 냉혹한 세상으로 던져진 각별히 가엾은 존재로 여겨졌다. 강 근처 습지에 수리부엉이가 살고 있다는 일간지 기사를 접한 터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귀가했다.
오리가 떠난 다음 날, 다시 강변으로 산책 갔다. 빗물펌프시설과 보도교 사이 풀밭에서 후투티 대여섯 마리가 길고 가느다란 부리로 바닥을 쪼고 있었다. ‘오리가 떠나더니, 새로운 손님이 이주해 왔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다.’ 감탄하며 다리 위로 갔다. 적막한 정취를 기대한 것이 무색하게, 청머리 오리 세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이주가 늦어진 무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고작 오리 세 마리가 낼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울음과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뒤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반대쪽 난간으로 갔다. 오리가 떼를 지어 떠다니고 있었다. 오리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을 보니, 안심이 됐다. 전날 오리들이 단체로 사라진 건, ‘새들의 휴일’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간에 매달려 몸을 숙이니, 오리들이 수면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놀라 흩어졌다. 달아나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강줄기가 저 멀리 고가 다리 아래까지, 그 보다 더 먼 곳으로 뻗어 있었다. 강폭이 넓어지는 곳엔, 많은 오리들이 새알심처럼 둥둥 떠다녔다.
문득 오리가 제자리로 돌아왔다던가, 새들의 휴일이었다고 표현하는 건, 안경을 쓰고도 근시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의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개 달린 새들의 드넓은 활동 영역은 집에서 공원을 오갈 뿐인 내 생활 반경에 댈 게 아니다. 오리들은 그날그날의 조황에 따라 조업 구역을 쉼 없이 옮겨 다니는 분주한 존재다. 같은 자리에서 한 방향만을 보던 사람에게나 휴식으로 보였을 뿐. 비단, 오리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작은 단편으로 진실을 꿰뚫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다리 위에서 모든 것을 굽어살피고 있다는 오만 때문인데, 진실은 물을 내려다보는 머리통을 훌쩍 날아서 눈이 보고 있지 않은 모든 곳에서 헤엄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