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닥후 모놀로그
나는 오닥후다. 게임과 영화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라는 의미 라기보다는 파생된 2차 창작물까지 소비한다는 의미에서의 오닥후다. 프로페셔널해 보일 필요가 없는 자리에선 스스로가 오닥후임을 밝히며 동질감을 표현하거나 자학의 소재로 삼는다. 오닥후와의 교류가 없으니, 다른 오닥후들이 어떤 마음으로 2차 창작물을 향유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있어 오닥후로 산다는 것과 팬메이드 픽션을 보는 것은 매 순간 양극화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명작을 볼 수 있다니!'와 '언젠가 이 짓을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다. 예전보다 서브컬처를 즐기는 성인에 대한 시선이 관대해지긴 했지만, 팬픽션까지 읽는 오닥후? 나이에 맞지 않는 일에 열을 올리는 철없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당장 오닥후 당사자인 나조차 팬픽션의 본질은 인형놀이이며 언젠가는 졸업해야 할 무언가로 여기고 있었다.
몇 달 전 좋아하는 게임의 배포전 행사가 있었다. 입장 티켓은 판매 링크가 열린 즉시 완판됐다.
여자가 질투하는 여자 앙딱정 해드립니다 - XX 배포전 티켓팅 성공한 여자
배포전 티켓 양도 구합니다 ㅠㅠ
SNS에는 행사 티켓을 구하지 못한 게임 팬들의 곡 소리로 가득했다. 누군가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으니, 티켓팅 성공을 순수하게 즐기면 얼마나 좋았겠냐 만은. 배포전에서 살 회지를 고르고 가장 효율적으로 행사장을 구경할 동선을 짜는 내내 '난 언제까지 이걸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심지어는 고작 한 달에 한 번 보는 합평회 회원을 붙잡고 고충을 토로한 적도 있다.
"3x살에 동인 행사 가는 건 좀 그렇죠?"
원조 오닥후의 나라에선 여든 살도 오닥후 행사 부스를 차린다던가, "저도 여름휴가 때 포켓몬 페어 가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로써 비슷한 성인 오닥후의 존재를 확인했을 뿐, 팬메이드 작품 읽기가 일종의 퇴행이라는 내 인식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배포전 전날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신분증을 제대로 넣었는지 가방을 뒤적거렸다. 선입금한 회지 목록을 제대로 작성했는지, 더 볼 만한 작품은 없는지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눈여겨보던 회지와 굿즈를 손에 넣을 생각에 설렜다. 동시에, '이걸 사려고 서울까지 가는구나.' 하는 자괴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행사장은 입주해 있던 기업들이 모두 퇴거해 버려 주로 기업 연수원이나 자격증 시험장으로 쓰이는 오래된 빌딩이었다. 게임 캐릭터의 복장을 갖춰 입은 자원봉사들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앞에서 두 줄로 대기해 있다가 신분증 대조를 거쳐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과거 사무실로 쓰였을 넓은 공간에는 좁은 간격을 두고 긴 책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기업 박람회 부스처럼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부스 참가자들은 온갖 솜씨를 부려 부스와 자신의 작품을 홍보했다. 일러스트와 부스 이름이 들어간 현수막을 달고, 테이블 위를 직접 디자인해서 주문 제작한 아크릴 스탠드와 솜인형으로 꾸몄다. 게임 속 인물이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을 표현한 손 마네킹을 전시해 두기도 했다. 미리 작성해 둔 선입금 리스트를 보면서 부스에 들렀다. 신간을 사러 왔다고 하면, 작가들은 수줍은 태도로 조심스럽게 포장된 책을 내밀었다. "재밌게 봐주세요."라는 기원을 덧붙이면서. 한 작가는 "읽고 감상문을 꼭 DM으로 남기셔야 한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독자를 어떤 태도로 맞이하건 간에, 부스에 앉아 있는 작가 모두 작품을 완성하고 다른 사람에게 선 보일 수 있어서 뿌듯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배포전에서 사 온 회지들을 읽었다. 모두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책이었다. 오랜 헤맴 끝에 연인과 재회했지만, 연인의 소원은 서로에 대한 기억을 잊는 것이라면? 연인의 진정한 평안을 위해서 내 손으로 직접 연인을 죽여야만 하는 신의 안배를 깨닫게 된다면? 과거로 돌아가 다시 연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알고 보니 껍데기만 같은 악당이라면? 중고로 구매한 데스크톱에 설치된 게임 속 캐릭터가 인격을 가지고 말을 걸어온다면? 서로 다른 작가들이 동일 인물을 다채로운 가정 속으로 밀어 넣은 후, 결국엔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거나 달콤 씁쓸한 끝을 향해 가도록 길을 닦았다. 읽는 내내 한 인물로 이렇게 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섬세하게 깔아놓은 복선을 깔끔히 정리하는 솜씨에 감탄했다. 이토록 정교하게 설계된 픽션을 두고, '팬픽션 - 좋아하는 캐릭터에게 내가 원하는 옷을 갈아입히고, 원하는 대사를 뱉도록 하는 인형놀이'로 치부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절하가 아닐까.
어떤 회지의 뒷장엔 ‘마감을 위해 쓴 5일의 연차야, 안녕.’이라는 작가의 말이 적혀 있었다. 그 문장을 보고서, 팬픽션을 읽는 내내 따라붙었던 ‘언젠가 이 짓을 그만둬야 한다.’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재미있는 팬픽션을 읽을 때마다, 이야기 뒤편에서 인물을 자유롭게 조종하는 작가를 의식해 왔다. 바쁜 일상 핑계로 이야기 쓰기를 게을리하는 나에 대한 실망감을 피하기 위해서 팬픽션은 퇴행적인 인형놀이라고 스스로를 속여왔던 것이다. 잘 쓰인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감탄만 하는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이 짓’을 그만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잘 쓴 이야기에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동안에, 이 짓을 그만두기 전, 모든 읽기에 지쳐버리기 전에 이야기 하나쯤 남기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