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통재라
엄마는 두 집 살림 중이다. 정순이 전정신경염으로 어지럼증을 호소한 후로, 엄마는 정순이 혼자 외출하는 것을 엄금하고 병원 내원은 물론 장보기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흔히 하는 착각은 ‘장보기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장보기는 물건을 구매하는 것 까지가 아니라 중량물을 목적지까지 실어 날라야 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노동집약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신체 기능이 점차 약화되어 가는 60대 여성에게 쇼핑은 즐거운 소비활동이 아니라 벅찬 노동이다.
처음엔 엄마도 직접 시장, 마트를 돌며 물건을 골라 우리 집과 정순의 집으로 생필품을 날랐다. 인터넷으로 장을 보는 경우는 생수나 대용량 액체 세제가 필요할 때였다. 그마저도 두세 달에 한 번 꼴로 나를 통해 주문하는 편이었다. 엄마가 어깨 수술을 받은 후로는 신선식품을 제외한 공산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좀 더 늘었고 어느 날, 엄마는 “나도 x팡에 가입했다.”며 자랑스럽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멤버십에 가입하면 배송비가 무료랜다.” 며 스스로 물건을 주문하더니,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신선한 제품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후로는 구매 품목을 우유, 두부, 생선, 정육, 채소로까지 넓혔다.
“니한테 부탁 안 해도 엄마가 할 수 있다.”라고 자신만만해하거나 “엄마, 오늘 문 앞에 쌀이 올 거라 예.” 하고 정순에게 전화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가 내 새끼는 아니지만 우등생을 자식으로 둔 학부모가 된 듯한 뿌듯함 마저 들었다. 엄마와 x팡의 관계는 이커머스를 똑똑하게 활용할 줄 아는 뉴-노멀 노인과 물리적, 시간적 제약을 뛰어넘는 노노케어를 가능케 하는 신기술의 모범적 사례처럼 보였다.
엄마와 x팡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요 몇 달간 x팡 내부의 악덕이 밖으로 터져 나오기 전 까지는. 본격적으로 사건사고가 보도되기 전부터 x팡의 문제를 알고는 있었다. 저렴한 소비자 가격은 공급업체 쥐어짜기로 가능한 것이고, 로켓처럼 빠른 배송은 누군가의 고강도 노동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계속된 x팡 사용이 결국 지역 상권을 황폐화시킬 것이라는 전망까지. 하지만 당장 저렴한 가격에 생필품을 문 앞에서 받아볼 수 있다는 편리함 앞에서 눈 감을 수 있었다. 그 모든 우려는 “엄마가 x팡 쓸 정도면 이제 시장에 갈 사람이 없겠다.” 같은 농담 아닌 농담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노동자 과로사 진실규명을 방해하기 위해 물류센터 CCTV 자료를 조작, 은폐를 지시하고 고객 개인 정보유출 사태 앞에 “글로벌 비즈니스 일정으로 바쁘다.” 며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가의 파렴치한 행태가 보도되자, 엄마는 “이거 계속 써서 되겠나. 탈퇴 좀 시켜줘라.” 며 탈팡을 결심했다. 가입은 쉬웠지만 탈퇴 절차는 엄마 스스로 하기에 복잡해 내 도움이 필요했다.
탈팡 후, 엄마는 동네 마트에서 장보기를 시도했다. 집에 돌아와 “X팡에서는 4천 원에 파는데 마트에서는 4천5백 원이나 하네.” 한탄했다. 온라인 X마트와 네X버로 갈아타기 하려다가 “무료 배송은 X만원 이상이라고 하네!” 외쳤다. 정순과 통화하다가 우유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우유 사서 정순네 들여놓을 엄두가 안 난다.” 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탈팡한지 정확히 3일 만에 두 손두발 들었다. 엄마는 X팡 재가입이 안된다고 도와달라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회원 탈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90일간 회원정보를 보관한다는 규정 때문인지 중복된 계정이라며 더 이상의 가입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 여전히 정보유출문제에 대한 해결도, 보상도, 사과도 없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새 메일 주소를 생성해 재가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쿠팡이 자체 조사를 통해 정보유출자가 버린 노트북을 해외 하천에서 건져 올렸다는 뉴스를 봤다. “삼일탈팡한 소감이 어떤데?” 엄마에게 묻자, “분하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건 탈팡의 대오에 끼지 못한 김 빠지는 이야기다. X팡 관계자는 “개돼지들은 우리의 생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고 비웃을 결말이다. 그런데, 분함이 남아있다. 분한 마음 하나로 갑자기 기업이 망할리야 없겠지만, 분함만 남은 관계가 끈끈할 리가 없다. X팡이 규제의 철퇴를 맞고 멈춰 섰을 때, 막강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주춤하게 될 때, 일말의 미련도 애통함도 없이 손 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