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대화

적정 수면시간 확보의 중요성

by 김몽콕

잠이 안 와서 SNS를 뒤적거리다가 안대를 쓴 상태에서 필기감 만으로 볼펜 이름과 제조사를 맞추는 문구회사 연구원이 나오는 짧은 동영상을 봤다. 그 문구회사 연구소에 대학원 후배의 남편이자 학과 동기가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안대로 가려진 얼굴을 유심히 봤다. 후배 남편의 얼굴이 보이는 듯도 싶었다. 확신을 못 하고 있는데, 카메라가 피켓을 들고 응원하는 임직원 무리를 잡았다. 피켓에는 연구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이름은 후배 남편의 이름이 맞았다. 아는 사람이 TV에 나와서 인터넷에 크롭 된 영상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신기해 대학원 후배들이 있는 단톡방에 동영상 링크와 ‘아니, 이 분은.’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7시 반쯤에 휴대폰이 진동하는 소리에 놀라 깼다. 이런 건 어떻게 찾았어요? 눈 가리고 어떻게 맞췄지 진짜 천재인가? 짜고친게 아니라 정말로 눈감고 다른 감각만으로 맞춘 거래요. 남편이 언제 방송에 출연한 거냐고 물어보니, 후배는 ‘작년에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뒷북쳐서 미안해.’ 잠이 덜 깬 머리로 ‘남편이 방송에 나왔으면 먼저 나서서 동네방네 자랑 할 법도 한데 겸손하네.’ 생각하며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김밥 재료가 뷔페로 나오는 행사장에서 대학 동창회를 하는 꿈을 꿨다. 후배는 “선배, 김밥 직접 말아서 먹어야 한대요.” 하며 접시에 재료를 담아줬다. 직접만 김밥이 다 터져 분개해하며 잠에서 깼다.


9시쯤에 정신 차리고 강변으로 산책 나갔다.

‘같은 과 동기가 작년에 문구천재 연구원으로 이름을 날리는 동안 본인은 뭘 하고 계셨죠?’

‘앞으론 뭘 어쩔 셈이죠?’

걷는 내내 머릿속에서 가상의 인터뷰어가 마이크를 들이밀며 대답을 요구했다. 사람이 없는 다리 위에서 중얼중얼 질문에 답했다. 동기가 나온 동영상을 다시 보려고 단톡방을 열었다. 스크롤을 올려 링크를 찾는데, 어디에서도 동기가 작년에 TV에 출연했다는 대화를 찾을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한 대화가 현실에 스며들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후배에게 남편이 언제 방송에 나왔었냐고 물어보거나 검색을 따로 해보지도 않았다. 꿈과 현실의 연관성을 조금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그 둘을 완전히 혼동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해. 꿈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현실에 닻을 내리려면. 누군가가 차를 사 줄 테니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는 연락이 와서 약속을 잡았다. 먼 곳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오라는 부탁도 수락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신부와 겹 친구인 오드리와 만나기로 했다.


달 만에 동호회 회원 주자와 만났다. 요즘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주자는 “책상을 잃어버려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평소 수첩이나 작은 이북리더기도 잘 잃어버리시더니, 혀를 끌끌 찼다. 앉은자리 유리창에서 철거직전의 삼층짜리 빌딩이 보였다. 주자는 건물을 가리키며 그곳이 자신의 집이라고 말했다. 폐건물 꼭대기층 창문은 활짝 열려 있어,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집안에 온갖 물건이 천장까지 쌓여 있어서 어수선해 보였다.


무심결에 “정리가 안되니까 책상이 짐에 묻히죠.”라고 핀잔을 줬다. 기분이 상한 주자는 화를 내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버렸고, 나는 ‘말실수를 했구나.’ 자책하며 최근에 결혼식을 올린 옥토끼를 만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옥토끼가 결혼을 불과 며칠 앞두고 기습적으로 결혼발표를 한 것처럼, 나도 놀랄만한 소식을 가져왔다고 했다. 회사를 관뒀어요! 짠. 옥토끼는 전혀 놀란 눈치가 아니었다. 민망함을 털어내려고, 옥토끼의 신혼생활을 물었다. 옥토끼는 남편 몸이 비실비실해 걱정이라고 했다. 옥토끼 남편의 젓가락같이 마른 다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옥토끼는 애피타이저로 나온 샐러드를 포크로 뒤적이다가, 접시에 담긴 푸성귀 보다 푸릇한 빛깔의 내 외투를 보더니 “진짜 풀이다!” 하고 달려들었다. 옥토끼가 패딩을 이로 물어뜯는 동안, 옷에 잇자국이 생기면 안 된다고 호소하며 버둥거렸다.


‘개 꿈이구나.’

전기장판에 지진 몸에서 땀이 났다. 1시간 뒤에 약속이 있다는 알림이 울리고 있었다.


만나기로 예정되어있던 카페가 만석이어서, 음료를 포장 주문해 백화점 라운지에 마주 보고 앉았다. 상대방은 종이 파일에서 오늘의 어젠다를 꺼냈다. 전광판 속의 요괴가 승천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오늘 밤 10시에 세상이 멸망해 버린다는 걸 알게 된다면요? 꿈같은 질문을 들으며 일회용 컵 바닥에 붙은 커피 진액을 마셨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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