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울 지경

죽을 지경이 아니고

by 김몽콕

‘죽울 지경이다’이라는 말을 영복의 일기장에서 본 건, 영복의 발인이 끝난 날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외삼촌은 영복의 봉안함을 가지고 삼척으로 돌아가고, 나와 엄마는 정순의 집에 남았다.


“교회에 나이 많은 남자 집사님 두 분이 버스타고 뒤늦게 오셨더라고. 그래서 차비하시라고 만원씩 드렸어예.”


엄마는 거실 돌소파에 앉아서 장례식에 누가 왔었는지 정순에게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참이라, 낮잠이라도 잘 생각으로 침대가 있는 방에 들어갔다. 침대에 눕긴 했는데, 매트리스가 없고 플라스틱 받침 위에 요만 깔려 있어서 온몸이 배겼다. 편한 자세를 찾아 이리저리 몸을 틀다가 책장을 봤다. 좁은 방이어서, 침대에 엎드려 누운 채로 팔을 뻗으면 책장에 손이 닿을 정도는 된다. 책장 맨 아래칸에는 영복이 경비원을 하면서 회사에서 받은 다이어리들이 줄지어 꽂혀있었다. 오래전에 정순과 영복은 이런 증정용 공책에 가계부나 일기를 썼다.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노트는 모조리 폐지로 처분해 버린 줄 알았는데, 여태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놀라웠다.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건 사생활 침해라지만 옛날옛적에 영복의 일기를 읽어 본 바로는, ‘점심은 라면 끓여 먹었다.’ 수준으로 은밀한 사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일기장을 버리지 않은 건 누군가 읽으라는 친절이 아닐까? 일기장 주인조차 없으니, 조금의 가책은 무시하고 일기를 꺼내 읽었다.



예상대로, 일기에는 별난 내용이 없었다. 마당에 있는 향나무를 전지 했다거나 오전, 오후에 공원 산책했다. 교회 갔다. 동네 외과에서 졸피뎀과 암로디핀 받아왔다는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어지러워서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거나 병원에 갔다 왔다는 내용이 자주 보였다. 일기 쓰기를 중단하기 몇 년 전부터 영복의 몸이 쇠약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매일 쓴 문장에서 보이는 것 같아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문제의 ‘죽울 지경’과 마주했다. 이 문장의 앞과 뒤를 따져 보자면, 동네 재개발로 인한 거주지 이전과 보상금 문제로 심란해 ‘죽울 지경’이다. 나는 재개발이 마음에 안 든다. -라는 내용으로, 건강상의 이상을 암시하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몇 년 전 ‘죽울 지경’이라고 일기를 쓴 사람이 정말로 죽어버렸다는 것, 불과 몇 시간 전에 수증기와 한 줌 무기질로 흩어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급작스러운 깨달음은 콧잔등과 눈시울을 찔렀다. 옷소매로 젖은 얼굴을 벅벅 문대고 거실에 나갔다. 내 얼굴을 본 정순은 “야는 와 우노.”라고 말했다. 영복과 무촌인 배우자도, 일촌인 딸도 안 우는데 그 보다 한참 떨어진 이촌이 느닷없이 눈물과 콧물을 빼는 희한한 상황이었다. 괜히 장례식의 쓸쓸한 분위기에 심취해 즙을 짜내고 있었던 것일까? 흘린 눈물이 민망해졌다.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영복의 일기장에서 읽은 내용을 말해줬다.

“할배가 이사 때문에 죽울 지경이었다던데?”

엄마는 코웃음 치며 “아버지가 어딜 이사를 했나. 이사하고 할매 병원 쫓아다닌다고 내가 죽을 지경이었지.”

“죽을 지경이 아니고, 죽울 지경이라고 했다니까?”

한동안 ‘죽울 지경’은 엄마와 나 사이에서 통하는 밈 내지는 관용구였다.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힘들어 죽울 지경이다. 누워야겠다.” 같은 식으로.



정순네 집에 심부름 갈 일이 많았지만, 한동안은 책장이 있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25년 2월에 멈춰있는 달력을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 책장에 꽂혀있는 다른 일기장을 읽었다. 영복이 재개발로 ‘죽울 지경’이었던 것보다 한참 이전에 쓰인 일기였다. 매일 같이 이웃에 사는 이태X이라는 사람과 닭집, 횟집에서 소주를 몇 병 마시고 다음날 어지러워서 누워있었다는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사람이 떠나고 나면 기억이 미화된다더니, 영복이 한 때 고약한 술꾼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맨날 술을 마시니까 숙취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지! 인상을 쓰며 다음 장으로,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영복이 ‘죽울 지경’이었던 또 다른 날에 멈췄다. 년도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에 쓰인 일기가 분명했다. ‘김몽콕 XX대학교 입학시험 결과 불합격이라고 함. 죽울 지경이다.’ 반평생 살았던 집을 떠나는 것과 입시실패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이 비슷한 정도의 괴로움이었을까? 영복에게 ‘죽울 지경’이란 어떤 감정이었을지, 이제는 알 길이 없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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