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볼 마음이 있거든

징징징

by 김몽콕

모임 마치고 버스 정류장 가려고 하는데 젊은 남대생 두 명이서 근처에 서점이 어딨 냐고 물었다. 바로 옆에 교보 문고 건물을 두고 서점을 찾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바로 이 건물이 교보문고고 지하도로 내려가면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런데, 남대생들은 ‘그런’ 서점이 아니라 독립 서점을 찾고 있다고 했다.

“다른 지역에서 오셨어요?”

“부산요.”

“이 근처에 몇 군데가 있기는 한데.”

시계를 보니 저녁 8시쯤, 알고 있는 독립 서점 몇 곳은 영업이 끝났을 시간이었다.

“여기 며칠 계시는데요? 지금 쯤이면 다 문 닫았을 텐데?”

“당일치기예요.”

영업시간이 좀 더 긴 독립서점과 북카페 위치를 설명하는데, 남대생들은 휴대폰을 꺼내서 상호명을 검색해 볼 생각은 안 하고 둘이서 “책 진짜 좋아하나 보네.” 소리나 해대고 귀담아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잘 놀다 가세요.”

내가 아는 독립 서점과 북카페 정보를 알려주고 헤어지려고 했다. 그런데, 남대생 둘 중 한 명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결혼 꼭 늦게 해야 돼.”

기껏 길 알려 주고 듣는 소리가 감사도 아니고, 작별 인사도 아닌 만혼 타령이라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인상을 쓰고 다시 말해보라고 했더니, 뚫어지게 얼굴을 쳐다보며 “결혼 늦게 하시라고.”라고 반복했다. 도믿남들한테 당했다는 생각에 분했다.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한테나 먹힐 법한 포교 대사를 이 나이를 먹고 새파랗게 어린놈들한테 듣게 될 줄 몰랐다.

“아씨,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들이.”

2 대 1이라 더 심한 욕(예: 너희 부모님은 너희들 이러고 돌아다니는 거 아시니)은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욕했다고 쫓아올까 봐 가슴이 덤벙거렸다. 컬트를 포교하는 사람들은 어째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혀가 반토막 난 것 마냥 조상에게 제사를 드려라 결혼 늦게 해라 무례하게 툭툭 던지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 따위로 접근하면 종교의 위상에 타격이 간다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 걸까? 뭔가 하지 않으면 재앙이 닥친다는 호통에 벌벌 떠는 심약한 사람만이 상제님께 순명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해 보니 잠재적 신도나, 초신자, 평신도에게 무례하게 구는 건 사이비 나 컬트 포교자에 국한된 일만은 아니다.

작년 추석,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모교회에 갔다. 예배 끝나고 교회 현관에 서 있던 담임목사와 마주쳤다. 담임 목사는 내 얼굴을 보더니 반색하며, “몽콕아, 아직 니 찬양대 자리가 남아있는데 와야지.”라고 했다. 모교회에 남아있는 대학부 동기나 한 두 살 적은 후배들이 ‘집사’로 불리는 동안, 나는 여전히 ‘몽콕아’다. 평신도니, 집사로 불릴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김몽 콕 씨라고 부를 수는 없는 걸까. 찬양대원이 부족하니, 도움이 필요하단 부탁을 마치 봉사할 기회를 주겠다는 듯 생색내며 할 건 뭐란 말인가. 담임목사의 언행에 모멸감을 느껴 다른 교회로 옮긴 것이 그런 경험 중의 하나고, 또 다른 일이 새해 첫 주일 옮겨간 교회에서 일어났다.

옮긴 교회는 등록을 안 한 채로 다녔다. 교인이 많아 눈에 띄지 않을 줄 알았는데, 교역자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전도사 한 명이 찬양 시간에 내 옆 빈자리에 슬금슬금 다가와 앉더니 “안녕”이라고 말했다. 거의 어깨가 닿을 거리라 반대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전도사는 그걸 초신자의 수줍음으로 여기고 궁둥이를 바싹 붙여 앉았다.

“왜 다들 내가 오면 무서워하지?”

“혹시 언제 등록할래?” 전도사는 고교 동창에게 하듯 어깨를 맞부딪혔다. 전도사의 격 없는 태도에 친근감이 느껴지기는커녕 화만 났다. 당혹감을 표현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통성명도 하기 전에 반말지거리인 전도사에게 똑같이 반말로 대꾸하고 싶었지만, 애써 입꼬리를 올려 “제가 이 동네 안 살아서 등록은 좀.” 하고 전도사를 물렸다.

무례한 컬트 포교원 둘에, 혀가 반토막난 교역자 둘의 경험이 보태지니 나의 의문은 ‘컬트 신도들은 도대체 뭐가 문젠가?’가 아니라 ‘종교 포교자들은 어째서 사람들을 무례하게 대하나?’로 바뀌었다. 고작 몇 번의 불쾌한 경험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거다. 포교자들은 로고스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 본인들이 입을 열기만 하면 성스러운 영이 개입해 개떡 같은 소릴해도 무지몽매하고 강퍅한 마음을 가진 불신자들을 개심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근거 없는 종교적 낙관 또는 지극한 신앙심 때문에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격식조차 차리지 않는다는 것이 내 추측이다.

이렇게까지 욕하면서 교회에 정기적으로 얼굴을 비치는 나도 나다. 무의식 중 상대방이 매달리는 것을 즐기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어서일까? 가끔 모교회 전도사에게 언제 다시 교회에 올 거냐는 연락이 온다. 그때마다 주일마다 일이 바빠서요 거짓말을 하곤 하는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다시 볼 마음이 있다면 나를 좀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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