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 위 느린 포스트 박스

은밀한 바보이고 싶다

by 김몽콕

느린 우체통이 있는 관광지에 몇 군데 가 보긴 했지만, 이용해 본 적은 없다. 편지를 잘 쓰는 편이 아니고, 쓴 줄 까맣게 잊고 있던 엉성한 편지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읽히는 건 낭만적이기보다는 부끄럽거나 당혹스러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세이는 무슨 똥배짱으로 온라인에 올리냐고? 누가 읽는지 모르기 때문에 안면몰수 할 수 있다고 해두자. 어쨌거나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부쳐본 적은 없지만, 내가 나에게 쓴 느린 편지를 받는 것 비슷꾸무리한 일이 간혹 어깨 위에서 일어난다.

보통의 느린 우체통은 6개월이나 1년 뒤에 편지를 발송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깨 위 포스트 박스엔 기한이 없다. 그건 전적으로 어떤 기억을 담은 뉴런이나 어떤 정보가 든 뉴런이 언제 랑데부하나에 달려있다. 느린 편지는 적어도 집배원의 업무 시간에 전달되지만, 어깨 위 포스트 박스의 편지는 아주 뜬금없는 순간에 올 수 있다. 머리카락에서 샴푸 거품을 헹구거나 자기 직전,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다가
<'북은 오히려 컨닥타요’에서 컨닥타가 무슨 뜻인지 지금쯤이면 알아냈겠지.>
중학교 아침 자습시간에 방송실에서 틀어준 시에 대한 의문을 풀었냐는 편지를 받게 된다. 이 메시지를 수신한 건 25살의 어느 날, 화장실에서였다. 컨닥타 컨닥타 중얼거리다가 ‘헉, 컨닥타가 지휘자였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편지를 받기 전 까진 컨닥타를 북이 덜거덕 거리는 소리쯤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 10년 가까이 컨닥타가 지휘자란 걸 몰랐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다. 어깨 위 포스트 박스에서 보내오는 편지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수신하기까지는 오래 걸리는데, 내용은 스팸 문자만큼이나 시답잖다. 어떤 스팸 메시지는 주식 계좌 예수금을 세 배로 만들 종목 알려주겠다고 까지 하던데, 십몇 년 전에 알고도 남았을 시시한 일을 엄청난 진실인양 전한다. 컨닥타의 의미가 컨닥타라는 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어느 날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XYZ번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다. 도중에 길이 막혀서 버스가 YS 스포츠 프라자 빌딩 앞에 오래 서 있었다. YS 스포츠 프라자는 몇 년 전부터 폐업 상태다. 코로나 유행 시기에 이용객이 줄어 사업주가 건물을 철거해 주상복합 아파트를 세우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해서 영업을 중단했다. 버스를 타고 여러 번 스포츠 프라자 앞을 지나다녔지만, 폐업할 때까지 스포츠센터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부촌 한복판에 있는 스포츠 센터는 어쩐지 좀 사는 집 애들만 다니는 고오급 체육 시설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8층이나 되는 붉은색 벽돌 건물은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 음산한 느낌이었다. 건물 지붕 위 옥외 광고판은 횡 하니 비어있었고, 빗물과 직사광선을 맞아 누렇게 변했다. 골프 연습장 녹색 그물망은 프레임에서 떨어져 나가 젖은 빨래처럼 힘 없이 축 처져있었다. 방범셔터의 녹슨 자국과 셔틀버스가 서 있었을 텅빈 주차장을 보다가 포스트 박스의 편지를 받았다.
<11살 여름, 수영장 가는 버스 알려준 대학생은 버스 번호 제대로 알려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부모님이 보호자로 따라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반 친구 몇 명과 수영장에 가려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한 대학생을 잡고 수영장에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냐고 물었다.
‘-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건물이 보여.’
‘저기 버스 온다!’
버스 타기 전, 대학생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는데, 스치듯 본 학생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대학생이 알려준 버스를 타고 내내 차창 밖을 내다봤지만, 종점에 이르도록 수영장 비슷해 보이는 건물이나 간판을 보지 못했다.
‘아까 그 사람이 -번 버스 타라고 했었는데.’
‘잘못 들었나?’
‘그 사람이 잘못 알려준 거 아니야?’
나와 친구들은 종점까지 오는 내내 창밖을 확인한다고 진을 빼, 다시 수영장에 갈 방안을 알아볼 의욕을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종점에서 집에서 챙겨 온 용돈으로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고 귀가했다. 집에 돌아가서는 바싹 마른 수영복을 내밀며 수영장에 갔다 왔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반에서 수영장에 갔다고 자랑하는 다른 무리들이 어떻게 수영장에 갈 수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수영장에 가려다 허탕 친 것이 부끄러워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한참 늦게 도착한 편지를 받고서야 어째서 버스 번호를 알려준 대학생이 왜 고개를 갸웃했는지, 왜 알려준 대로 버스를 타고도 수영장에 갈 수 없었는지 깨달았다. 그때 대학생은 YS 스포츠 프라자로 가는 XYZ 번 버스를 알려줬었고, 우리는 버스 번호만 보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던 것이다. 어릴 적 그렇게 가고 싶었던 수영장 앞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XYZ번 버스를 타고 지나다니고 있었고, 그 사실을 스무 해 넘게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20년 동안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무의식 중에 연결을 시도한 뉴런들의 끈기에 감탄해야 할지, 그토록 간단한 단서들을 이제야 조합해 낸 아둔함에 경악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예전에 이렇게나 모지리였다니.’ 어깨 위 느린 포스트 박스의 유일한 발신자이자 수신자가 나라서 다행이었다. 이렇듯 가끔 머릿속에 날아드는 과거로부터의 편지만으로도 충분히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연유로, 앞으로도 관광지의 느린 우체통은 건너뛰겠다고 마음먹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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