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한_502년_순장제 폐지

실직주 방어전_(3) 아라의 경고

by 박달


해가 지고, 노을이 멀리 능선 끝으로 물러난 뒤에도 실직 북부의 숲은 쉽게 어두워지지 않았다. 산기슭을 따라 펼쳐진 얕은 계곡엔 아직도 나뭇잎 틈으로 금빛이 스며들고 있었고, 아라는 마을 바깥의 숲길을 따라 홀로 걸었다. 그녀는 이곳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풀과 바람, 동물의 눈빛을 말 없이 읽으며 자라온 그녀는, 사람보다 자연과 먼저 말을 섞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다르게 불고 있었다.
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야 했지만, 오늘은 북북동에서 불어왔다. 그것도 낮게 깔린 바람이었다.
코끝으로 들어온 건, 오래된 짐승 땀내와 말려 터진 가죽끈의 냄새.
그것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말갈의 것이었다.


아라는 멈춰 섰다. 도토리나무 아래에서 기러기 한 무리가 갑자기 날아오르더니, 낮은 고도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눈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러기는 보통 수평선을 따라 이동하지만, 지금처럼 낮게 회전하며 움직이는 건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이었다. 그 순간, 뒤쪽 숲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튀어나와 아라의 발치 근처에서 부딪히듯 도망쳤다. 두더지 굴 근처의 풀밭이 바스락거렸고, 나무 사이를 지나는 까마귀가, 마치 검은 소리처럼 경고를 퍼뜨리며 울었다.


“어라. 어제와 다르다!”


아라는 속삭였다.


이건 기척이 아니라, 감각이었다. 오래도록 숲을 걷고,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겪은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흐름. 말갈은 이미 이 숲의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왔다. 아직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짐승의 감각은 먼저 눈을 떴다.


그녀는 곧장 마을로 향했다. 달빛 아래 들판을 가로질러 병영 쪽으로 걸음을 재촉하면서,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랜 불안이 선명한 문장처럼 떠올랐다.


‘사람들은 아직도, 병사가 아니면 적을 볼 수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본 적은—
가죽보다 먼저 오는 냄새였고,
말보다 먼저 깨어나는 땅의 떨림이었다.’


야전 본부에 도착했을 땐, 벌써 이사부와 아간이 지도 앞에서 뭔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입을 열었다.


“말갈입니다. 가까이 있습니다. 어제 전달 드린 것과 달랐습니다. 기러기 떼가 마로메 남동쪽으로 돌고 있어요. 짐승들이 그 방향의 숲 아래로 몰립니다. 제 직감이 아닙니다. 이건, 이 땅이 먼저 느낀 겁니다.”


아간이 잠시 미간을 찡그렸고, 이사부는 천천히 아라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빛은 판단하려는 자의 것이 아닌, 믿으려는 자의 것이었다.


“어디에서?”


“북쪽 완만한 능선에서 남동쪽으로 크게 돌아서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수풀 아래엔 말발굽의 흔적이 남지 않은 흙이 있지만, 그 위엔 어제보다 따뜻한 공기가 감돌아요. 말발굽은 소리를 내기 전에, 땅의 온도를 바꾸거든요.”


그녀의 말에 장막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이사부는 그 침묵을 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감각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입니다.”


아간도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라의 말대로 능선을 다시 살펴보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작전도를 수정했다. 침입은 더 빠를 것이다. 그리고 더 조용할 것이다.아간은 병사들에게 명하여 그날 밤 초소의 횃불을 다시 확인했고, 경계선에는 더 많은 정찰병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움직임의 시작점은—

한 사람의 직감,
한 여인의 감각,
한 생명의 떨림이었다.


이사부는 그날 밤, 아라를 다시 보았다. 일개 여성도 일개 병사도 아닌, 이 시대가 필요로하는 또 하나의 ‘지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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