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대하는 자세

운칠기삼에 대하여

by 장성수

세상에 나선 이라면 누구나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알게 된다.

세상 일이라는 게 노력만으로 이룰 순 없다는 걸 대면하는 순간마다

'그래 운칠기삼이지 뭐'라 한탄하며 읊조리게 된다.


세상 일라는 게 태어난 환경, 가족, 사회적 자산, 경제적 자산 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위 사항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니므로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는 제한다.

위에 대한 논의를 제하더라도 결정적으로 '운빨(?)'이란 게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의 사전적 정의는

'운이 칠 할이고 재주나 노력이 삼 할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일은 재주나 노력보다

운에 달려 있음을 으르는 말'이다.


그래서 일까.

'운칠기삼'은 노력하였으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거나

아무리 얘를 써도 결국 이뤄지지 못할 것을 예견하며 자조 섞여 사용하는 단어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도 '운칠기삼'을 그런 용도(?)로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는 다소 달리 해석하고 있다.


누구나 '운' 때는 온다.

다만 그 '운'이 언제 올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무속이나 사주팔자에 의존하기도 하지 않은가.

이 점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평하다.


다만 그 '운'이 자신에게 다가 왔을때

자신이 '3할'의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면

그 '운'은 스치듯 지나갈 뿐이다.


여기서 '노오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신세가 처량함을, 운이 없음을 한탄하기 전에

자신은 과연 '3할'의 노력을 했는지 돌아봐아 한다는 것이다.


물론 '3할'의 노력이 어느 정도 노력을 해야하는지에는 정답이 없다.

이건 누구도 답을 해 줄수가 없다.

스스로 알아가야 하는 인생의 난제(?)다.


자신이 박복한, 운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이 점은 명심하기 바란다.

'운'은 불현듯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운'을 잡기 위해 '3할'은 준비하자.

그래야 세상 한탄에도 명분이 생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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