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지 않기

서로의 선을 지키기

by 장성수

직장 생활이건 사회생활이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인간관계이다.

좋은 사람이고 싶으나, 늘 좋은 사람은 종종 언젠가 호구(?)가 된다.


친밀함에 기반한 행위와 선 넘는 행동은 그 경계선이 불확실하곤 하다.

그 경계선에는 정답이 없고 결국 그 선은 스스로 만들고 지켜야 한다.

그래서 선을 긋는 작업(?)은 늘 고단하다.


20대에는 많은 사람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빨리 친해지고 속 터놓는(?) 사이가 되는 게 지상 과제였다.

그 강박(?)에 기반한 인간관계 설정, 유지는 많은 경우 실패로 돌아갔다.

상대방의 과도한 요구들을 쉽게 받아들여 스스로에 부담감을 남겼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남겼다.


다소 늦은 30대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소위 눈치와 알아서 기는(?) 요령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직장 동료와 상사와의 회식에 늘 빠지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서 진정한 직장 우애(?)가 샘솟는다 생각했다.

상사와 선배들의 과도한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과도할지라도 이를 해결하는 것이 직장 에이스(?)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새 임계점에 다달아 번아웃이 오곤 했다.


40대가 되었다.

아직까진 일을 빼는 스타일이 아니고

다른 동료보다 적극적으로 직무에 임한다고 생각한다.(반박 시 너님이 맞음)

하지만 나름의 선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누군가 고의 또는 과실로 침범하면 바로 말한다.

"지금 선을 조금 넘는 요청으로 보입니다"


한편, 직장 생활 초기에 후배들이 들어오면 많은 걸 알려 주고 싶었다.

감사함을 표하면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후배들이 어느새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말했다. 꼰대와 멘토의 결정적 차이는 '상대방이 요청할 때 도움을 주는 게 멘토'라고.

그렇게 난 꼰대가 되어갔다.


현재의 나는 신입이건, 후배들이건 굳이 말을 건네지 않는다.

어차피 각자 월급쟁이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이에서 고군분투하지 않나.

하루 먼저 들어왔다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뭔가 선 넘는 행위란 생각이 굳어져 갔다.

어차피 월급쟁이 삶을 유지하려면 뭔가 잘못된 행동은 결국 스스로 수정해 나갈 것이니.

남들이 사교성 없는 사람이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그저 상대의 선을 지켜주고 싶다.


지금의 내 가치관이 세상의 기준에서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켜가고 싶다. 내 선을.

지켜주고 싶다. 당신의 선을.

작가의 이전글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