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할 일이라면

살짝 정성 더하기

by 장성수

2001년 12월 어느 날 해병대에 입대했다.

끌려가기 보단, 자원 입대하자는 치기(?)에 자행하였으나

나에게는 상당히 도전적인 시도였고 두려웠다.

주변에 입대한 친구들이 거의 없었던 상황이라

군대에 대해, 해병대에 대해 물어 볼 사람도 없었다.


우리 고모가 하신 "그 곳도 사람사는 곳이다"는 말씀처럼

해병대 병영이 다소 엄하고 똥군기(?)를 잡기는 하지만

중대 전입 후 몇 개월이 지나자 다소간의 안정감을 찾았다.

안정감을 찾으니 그 전에 보이지 않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군생활을 대하는 선임들의 태도가 그 것이다.


적지 않은 수가 의무복무인 군생활에 신세한탄하며 '시간아 흘려라'하는 분위기를 점하고 있었다.

많은 않지만 일부 선배들은 그래도 하루하루 군생활에 충실하며 자신의 소임을 다하려 하였다.

난 후자의 선배들이 좋았다.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하는 군생활이라도, 결국 내 인생이니까 뭔가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생각보다 군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생각 이상으로 주위에서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이후, 직업 선택에 있어 이런저런 흔들림과 고난이 있었지만 지금의 직장에 뒤늦게 안착했다.

첫 근무지에서 마주한 선배님 중 한 분이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시다가 학력을 물어봤다.

내 학력은 들은 그 선배는 대뜸 "그 좋은 학력에 여기에 왜 들어왔냐"고 하였다.

일단 내 학력이 그렇게 좋지도 않다.

그 말을 들은 내 감정은 오모했다.

뭔가 우쭐대는 감정이나, 과스펙(?)에 대한 아쉬움 따윈 전혀 없었다.

다만, 뭔가 자기 비하 또는 자격지심에 젖은 듯한 그 선배(많은 선배들 역시 비슷했다)의 말이 많이 불편했다.


첫 근무지에서 정신없이 사건 현장을 뛰어 다니다 보니,

때로는 1인분도 못하는 스스로에 좌절하며 때로는 하루를 잘 버텼다는 생각들을 뒤로 하고

쏟살같이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고 보고 이전에는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근무 초기에는 척척박사 같았던 선배들도

때로는 실수하고 당황, 염려하는 인간미를 갖춘 이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 업무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자격지심 또는 자기 비하적 의식에 젖은 선배가 많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일에 정성을 쏟는 이들이 많지 않는 점이다.


다른 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 진 모르겠다.(사실 어떤 평가를 한다해도 스스로 개의치 않는다)

스스로는 업무에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한다.

온전한 정성은 아니겠지만, 정성을 쏟으려 노력한다.

내가 만난 민원인, 시민들을 업무로만 대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우리 대한민국을 조금은 안전하게 만드는 일이라 자부하고 있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조직에서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다.


자신의 업무나 삶에 정성을 다하라는 꼰대같은 소리는 하지 않겠다.

다만, 어차피 할 일이면 그냥 해라.

하기 싫다 하기 싫다 하면서 꼼지락 거리지 말고 그냥 해라.

그리고 이직 할 게 아니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의 많은 시간을 점하는 직장 생활에서 의미를 찾아라.

주변의 성취를 시기하기 전에, 최소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직장과 삶에 정성을 쏟고 있는 지 돌아보라.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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