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새로운 암 "누구냐 넌..!"
#26 림프암 투병기에 썼던 팔뚝에 혹이 나는 당연히 기존 암 버킷림프종인 줄 알았지만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니 DLBCL이라고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이랜다.
버킷림프종과 같이 B세포에 기인한 유전자 변형 혈액암이긴 해서 뭐 친척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희한하게 나는 암 판정을 받을 땐 무섭거나 놀라진 않는다. 뭔가 나는 죽을 거 같진 않다. 골골대면서 살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갑자기 꽥! 하며 죽진 않을 거 같다.
근데 솔직히 조금은 짜증은 난다. 다른 림프종 환우 분들은 관해를 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소식을 자주 듣는데 나는 자꾸 재발에 심지어 새로운 암으로 변형이 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연하곤란과 얼굴 편마비는 이제 거의 뭐 많이 익숙해졌고 이것도 언젠간 돌아올 거란 희망으로 잘 버틸 수 있다 생각한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새롭게 나타난 암이라도 이젠 그냥 같이 공존하며 잘 관리하며 지낼 생각이다. 혈액암은 관해가 없단다. 혈관을 계속 타고 다니다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 그런 놈이라면 차라리 잘 달래 가며 내 몸과 같이 지내보도록 해야겠다. 내가 숙주니 전적으로 지분은 내가 많다. 넌 단지 내가 힘들거나 피곤할 때를 알려주어 내가 쉴 수 있게 감지기 역할을 해다오.
다행히 삼성서울병원으로 전원 후 새롭게 쓰신 D-HAP이라는 요법이 잘 들어서 혹은 좀 가라앉았다. 암센터는 2차 병원이라 피검사 수치가 낮으면 퇴원이 안 됐는데 여기 삼성병원은 3차 급성기 병원이라 대기자가 많아서인지 피검사가 낮아도 협력 병원으로 가라고 퇴원을 시켜줬다. 그래서 내일 토요일 집으로 갔다가 월요일에 일산 소재 협력 병원으로 재입원할 거 같다. 진짜 몇 달 만에 집 가는 거라 설레기도 하고 이 상태로 집에 가도 되는지 걱정도 된다. 하지만 부모님이 나를 위해 계속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매트리스도 새로 사셨다고 하여 모처럼 잠은 푹 잘 거 같다.
새로운 싸움은 또 일어났지만 예전처럼 두렵고 언제 회복할까 조바심은 안 난다. 그저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마음으로 여유롭게 지낼 수 있을지가 중요한 거 같다. 공부도 공부고 취업도 취업이지만 지금은 내가 내 몸을 얼마나 아끼며 관리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지 고민할 때라 생각한다. 암과의 공존이 중요한 거 같다. 뒤처져 있다 생각 말고 긴 내 인생의 끝에 나는 어떤 표정과 모습으로 서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 욕심을 내려놓고 내 몸과 삶이 허락하는 행운 속에서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