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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비지 Nov 12. 2024

내 오랜 친구의 부탁

내겐 쿼카라는 동물을 닮은 오랜 친구가 있다.

그 첫 인연은 초등학교 때부터였고,

연이 맺어진 이후로는 중학생 때 많이 친해졌다.


우리에겐 축구가 참 진심이었다.

학교에서 하는 체육 대회에서 우승하려 한 달 전부터 새벽에 일찍 등교해 합을 맞추고, 시에서 주최했던

주말 리그라는 대회까지 준비하며 출전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땐 서로 다른 학교로 가게 되는

바람에 각자 학교 생활로 연락이 뜸했었다.


그렇게 점차 잊혀가나 싶다가 막 성인이 된

스무 살 적 다른 친구가 있었는데 반가운

내 오랜 친구의 이름을 말하며 같이 술 한 잔 하자

연락이 왔었다.


그 연락을 신호탄으로 이후에 죽어라 부어라 마시고

놀며 급속도로 다시 확 친해졌다.


동창이기도 하고 옛 친구라 다시 친해진다는 그런 게 아닌 정말 성격도 가치관도 유머 코드도 너무 잘 맞아

친해졌다. 학창 시절 땐 몰랐는데 얘가 이렇게 나랑 잘 맞았나 싶을 정도로 다시 보였고 영혼의 단짝이 되었다. 힘들면 힘들어서 보고 기쁘면 기뻐서 봤다.


이쯤 되니 주변으로부터 사귀냐는 소리까지 심심찮게 들을 정도였다. (아 물론 난 여자를 좋아한다 물론 이 친구도 여자를 좋아한다)


그런 내 오랜 친구는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나의 20대

전부를 수놓았다.

그러다 최근에 난 암에 걸리고 치료를 받고 회복 주에 접어들면서 집에 오게 됐고, 우린 아주 오랜만에

술 집에서 만났다. 물론 난 소주잔에 물을 따르고

그 친구의 잔엔 우리의 또 다른 신선한 단짝이었던

'참이슬'이라는 친구를 따랐다.


승무원인 그 친구는 비행을 끝낸 직후였지만 곧장

내가 사는 동네로 와주었다. 그전에 병문안으로

얼굴은 계속 봤었지만 이렇게 밖에서 그것도 술 집에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일 얘기, 근황 얘기, 고민 얘기 등등 영락없이 여느 때의 우리의 술자리 모습이었다.


서로의 술잔이 연신 기울어지면서 기분이 좋아지는지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여기까지

와 준 친구가 너무 고마우면서 또 어느새 서른 가까이

나이가 든 게 신기하기도 하며 참 변한 게 없이 철없어 보이기도 했다.


친구의 다양한 모습이 보이고 서로의 시간이

오랜만의 옛 일상 속에 있던 술자리의 느낌으로

익어갈 때쯤 친구가 나지막하게 부탁을 했다.


"OO아 너가 무너지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부정적인 마음은 갖지 마. 힘들어서 흔들릴 수는 있는데 부정적인 마음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입을 꼬물거리다 신중히 말한 걸 안다.

내 눈엔 보이니깐.

무슨 마음으로 말했는지도 안다.

같이 보낸 세월이 알려주니깐.


그렇기에 난 그저 답했다.


"알았어.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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