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리
같은 치료법이지만 기존 1차 때보다 양과 질적인 면에서 훨씬 강력하게 맞은 3차를 힘겹게 끝내고 회복을
어느 정도 거친 후 집에 드디어 돌아왔다.
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오래 입원하다 보니 어느샌가 내 방은 가족들의 옷과 잡동사니로 채워지며 창고로
둔갑했다.
그래서 늘 안방에서 자고 구석엔 자그마한 책상에서
공부와 글쓰기 등등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지내기엔 너무 불편해 결국 엄마에게 다시
내 방을 되찾아야겠다 말하고 치우려 들어가니 엄마는 아픈 내가 뭐만 하면 기겁을 하시며 말리는 분이라
결국 같이 치우게 됐다.
치우면서 서랍이나 구석에 박혀 있는 물건들도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뒤적이며 꺼내는데 군대에 입대하면서 훈련단에서 받았던 인편을 보게 됐다.
여기서 인편이란 인터넷 편지의 준말로 훈련단에 들어가면 사회와 단절이 되어 가족들과 친구들이 인터넷으로 편지를 쓰면 그걸 인쇄해서 교관들이 나눠줬다.
그 인편을 보며 옛날 나의 20대 전반을 생각하며 건강했던 나의 모습을 회상했다.
정말 운동을 좋아하고 자신이 있었고 활발했는데..
지금은 어느새 오른쪽 팔이 병변으로 인해 잘 움직이질 않아 장애인 판정을 받아 꿈을 포기해야 할까 봐 걱정을 하고 있고 암이 다 없어지지 않아 오랫동안 항암을 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걱정까지 하며 지내고 있다.
아프면 정말 모든 순간이 멈춘다.
일상, 운동, 나의 꿈, 사람들과의 관계, 내 삶 등등 생을 살면서 겪을 모든 순간들이 멈추게 된다.
기억 저편. 흑백으로 날아간 기억들을 방정리를 하며 하나씩 들춰봄으로써 추억이란 색을 입혀 회고를 하니 암에 걸리기 전의 그 시절이 기회가 얼마나 많고 소중하고 시간이 많았던 건지 새삼 알게 됐다.
솔직히 후회가 너무 된다. 하지만 후회가 되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암에 걸림으로써 내가 살면서 닿을 모든 순간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라고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내 나이 스물아홉.
내년엔 곧 서른이다.
이룬 건 없고 가진 건 암밖에 없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거다. 내 삶은 이제 시작이고
값지게 채워나가면 된다.
남들의 걸음걸이 속도를 보지 말고 나의 발길을 보며 느리지만 당당하게 뻗어 나가면 된다.
응급실에서 죽음을 마주하고 얻은 것은 종국에 다다랐을 때 후회가 많았던 삶을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후회가 많지 않은 삶이란,
내게 있을 모든 순간에 진심이 담긴 삶이라 생각한다.
암으로 삶의 모든 걸 잃었지만 잃었기에 다시 새로이
깨닫게 된 진심이 담긴 삶을 얻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