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이다

드라마 '우리 영화'

by Vita

어머니는 병원에 가시고 아버지는 출근하시고 동생은 달콤한 늦잠에 빠진 오전 시간.

아침밥도 이르게 먹었고 항암 부작용으로 목 뒤 신경통을 다스리고자 온찜질을 하며 심심해서 TV를 켜 채널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소제목에 적은 드라마를 보게 됐다.

드라마 기본 설명대로라면 "다음이 없는 영화감독 '제하'와 오늘이 마지막인 배우 '다음'의 내일로 미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란다.

재방송이었기에 난 1화 끝부분부터 2화를 봤는데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볼 정도로 너무 와닿았다.

고작 8개월 전엔 나도 여주인공과 같은 시한부 같은 삶을 판정받아서 그런가 보다.

배우들의 연기력, OST, 연출 등등 이목을 끈 설정들이 많았지만 그중 대사가 참 공감이 많이 되어 이목이 끌렸다.

오래간만에 참 괜찮은 드라마를 만났다.


극 중 여주인공 '다음'이 말한다.

"사람은 아프고 나면 아프기 전과 후가 많이 바뀌어요."

당연히 나도 그렇다.

아프기 전의 삶은 무미건조에 그저 쳇바퀴 같은 일들에 염증을 느꼈고 한 번 확 신나는 일들도 일어났으면 좋겠고 잘 이뤄지지 않는 목표에 실패감과 자괴감만 가득했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일들도 결국 내가 아프지 않았기에 겪을 수 있었던 것이고 그 속에서도 난 웃고 행복을 느꼈던 순간도 있었다는 걸 아프고 나서 알게 됐다.

아프고 나서 지난 내 삶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알고 나니 마치 비 온 뒤의 풀향처럼 아주 짙게 내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이 되어 세상은 내 몸과 하나가 된다.


항암도 성공적이고 확정은 아니지만 한 달 후의 PET-CT 결과로 치료 종결 여부도 정해지는 지금 시점은 분명 좋아야 한다.

하지만 귀신처럼 전체 항암 사이클이 끝나니 부작용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목 뒤 신경통이 가장 심한데 '덱사하이'라는 스테로이드 약을 먹질 않으면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작열통과 찌릿함이 극심하다.

이틀 전에는 고통이 너무 심해 잠도 못 자고 새벽 내내 뒤척이다 어머니와 함께 차에 거의 실려가다시피 타고 응급실에 갔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하고 상황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트라우마가 됐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스테로이드를 먹으면서 다스리면 되는 거 아니냐 할 수 있는데 스테로이드는 장기 복용하면 부작용이 심각한 약이기에 오래 먹으면 안 되는 약이다.

근데 항암 부작용 중에서도 신경통은 가장 오래가고 이렇다 할 약도 없기에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걱정이 많다. 스테로이드를 언제까지고 먹을 순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약을 끊어 그 고통을 느끼기가 너무나도 두렵고 싫다..

이 신경통이 언제 가라앉을지 혹은 평생을 달고 살아야 하는지 걱정이 참 많다..


항암이 끝나서 좋았는데 부작용이라는 큰 산이 다시 덮쳐 오는 상황에 몸과 마음이 많이 치쳐가는 거 같다.

이토록 나는 나약한가 싶다.

항암이 끝나서 좋다가도 부작용으로 힘이 드니 다시 우울해지고 걱정이 많아진다.

분명 일희일비하지 말자 했는데 그저 나약한 나의 가냘픈 외침이었나 싶다.


누군가가 그랬다 항암 후의 부작용이 진정한 시작이라고. 맞는 말 같다.

솔직히 지금 보니 나는 항암이 다른 분들에 비해 순조로운 편이었다.

나는 그래도 힘들었다 생각했는데 지금 느끼는 부작용의 아픔을 느껴보니 내가 항암 중에 느꼈던 부작용은 '진짜 큰 편은 아니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고, 이 아픔을 항암 중에 느낀 다른 분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점에 저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보니 아픈 인생은 참 이겨내야 할 고통과 문제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일상조차도 살아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하고 싶은 일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나와 저 여주인공이 참 가엾고 불쌍해서 너무나 서러워진다.

처음이다. 항암 중에도 느끼지 않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밀려온다.

이런 고통에 무너지는 내가 참 보기도 싫고 실망감도 적잖다.


그래도 극 중 여주인공은 굴하지 않고 언제 꺼질지 모르는 목숨을 부여잡으며 오디션을 기어코 본다.

그래. 그렇게 다시 해내고 이겨내면 된다고 울으며 나도 다시 다짐을 한다.

극심하고 끔찍한 고통이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며 시간을 타며 버텨내면 된다.

중요한 건 난 살아있다. 코로 공기를 마시며 두 눈으로 세상을 직시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으면 존재조차도 가리지 못한다. 그냥 없음이다.

하지만 난 있다. 이 자리에 나는 있다.

나도 창 밖 사람들처럼 움직인다. 난 살아 있다. 그거면 된 거다.

그렇게 다시 거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며 나아가면 된다.

나는 분명 부작용도 이겨내고 살아낼 것이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나는 반드시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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