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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Dec 18. 2024

31화. 산과 구슬

<흑마법서> 소설 연재

 석정궁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2호점의 공사장 역시 쑥대밭이 되었다. 공사장은 그 상태 그대로 방치된 지 오래였다. 혜성과 직원들은 차에 석판을 싣고 2호점의 공사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차를 탄 채 공사장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지훈은 그 석판이 무엇에 쓰는 건지 알았을까요?”

 차 안에서 이태민이 물었다.

 “아마 몰랐을 것 같아요. 매자에서 노예들에게 석판을 찾아내라고만 말했을 뿐 그 석판의 정체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을 테니까요. 김지훈은 아마 석판을 찾아낸 후에도 그게 어디에 쓰는 건지는 몰랐을 테지만, 그것이 매자에게는 중요한 물건이라는 걸 짐작했을 테니 석판과 노예들을 바꾸려 했겠죠.”

 혜성이 말하는 동안 차는 공사장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김지훈의 입장에서는 무엇에 쓰는 건지도 알 수 없는 석판을 되찾기 위해 매자의 발굴장에 잠입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을 거예요. 그건 그저 회사와 거래를 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고, 그것이 꼭 있어야 노예 반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김지훈이 석판을 되찾아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석판은 아직 이곳에 있을 거라는 말이군요.”

 김구름의 말에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혜성과 김구름은 석판과 함께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조수석에 탄 박준식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아직도 전혀 빛나지 않네. 혹시 이거 너무 오래 돼서 마력이 다 떨어진 거 아닐까?”

 “이건 마법의 물건이야. 건전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고.”

 이태민이 말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마법도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잖아.”

 박준식의 말에 혜성이 대답했다.

 “물론 그렇긴 하죠. 하지만 애초에 이 물건 자체가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둔 물건이니까 초고대인들이 이 석판에 아주 강력한 마법을 걸어뒀을 거예요. 아직 수명이 다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들은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황량한 공사장 이곳저곳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석판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직도 아무 반응이 없어요?”

 운전대를 잡은 이태민의 물음에 혜성은 기운 없이 대답했다.

 “네.”

 “공사장에는 없는 것 아닐까요?”

 김구름의 말에 혜성은 창밖을 보다가 물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이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적어도 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곳들은 꽤 있죠.”

 이태민의 말에 박준식이 대꾸했다.

 “근데 그러면 차에서 내려서 이 무거운 석판을 들고 다녀야 하는 거잖아. 나머지 반쪽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혜성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앞을 가리켰다.

 “건물 쪽으로 바짝 붙어보면 어떨까요?”

 “석정궁 건물 말인가요?”

 “네.”

 이태민은 석정궁 2호점 건물 근처에 차를 가까이 붙인 뒤 건물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그 때였다.

 “어, 잠깐만요!”

 김구름이 외쳤다.

 “방금 석판이 약하게 빛이 났어요!”

 혜성도 소리쳤다.

 “저도 봤어요! 석판 전체가 푸르스름하게 빛난 것 같았어요.”

 이태민이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지금은 그대로인데요?”

 “방금 전에 순간적으로 빛났어요.”

 김구름의 말에 박준식이 재촉했다.

 “후진을 해 봐!”

 이태민은 천천히 차를 후진시켰다. 차가 몇 미터 뒤로 가자 석판 전체가 푸르스름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다시 빛나고 있어요!”

 혜성이 외쳤다.

 “부장님, 여기서 차를 멈추세요! 석판을 들고 나갑시다.”

 혜성과 김구름은 석판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자 석판의 빛이 좀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석판을 들고 그 장소 주변을 천천히 움직였다. 박준식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잠깐만, 건물 쪽으로 좀 더 가보면 어때? 건물 쪽으로 갈수록 석판이 빛나고 있어!”

 그들은 박준식의 말대로 석정궁 건물 외벽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석판의 빛이 한층 강해졌다.

 석판을 들고 건물 벽을 따라서 몇 걸음 움직이자 빛이 살짝 약해졌다. 그래서 다시 반대쪽으로 움직이자 석판이 다시 푸른 빛을 발했다.

 “이 지점 땅 속에 묻혀 있나 봐요.”

 혜성이 외쳤다.

 네 사람은 차 트렁크에서 삽을 꺼내 건물 외벽 바로 앞부분의 땅을 열심히 팠다. 한동안 삽질을 하던 이태민이 외쳤다.

 “잠깐만요, 방금 제 삽에 뭔가가 닿았습니다.”

 손으로 그 부분의 흙을 털어내자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모서리가 나왔다. 네 직원은 서로를 쳐다봤다.

 혜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찾은 것 같군요.”

 그들은 석판의 모서리 주변을 열심히 파헤쳤다. 삽질을 할수록 석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땅 속에 박힌 석판 역시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었다.

 빛나는 석판은 땅 속에 수직으로 묻혀 있었다. 어느 정도 흙을 파낸 뒤 그들은 무를 뽑듯이 석판을 잡고 땅에서 뽑아냈다. 이태민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이렇게 건물 가까이에 묻어 놓으면 확실히 사람들이 유물을 찾기 어려울 테죠. 발굴 현장은 건물에서 떨어진 곳에 있으니까. 김지훈이 머리를 썼군요.”

 그들은 땅에서 꺼낸 석판의 흙을 털어낸 뒤 옆에 놓인 첫 번째 석판의 잘린 부분에 조심스럽게 맞춰봤다. 두 석판의 잘린 부분은 서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두 개의 석판은 이제 아주 강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석판 위의 마법 문자들이 석판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문자들이 물속으로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두 개의 석판은 완전히 하나로 합쳐지면서 표면이 액체처럼 출렁이더니 하나의 지형을 만들었다.

 커다란 산맥이 표시된 지도였다. 가운데가 넓게 파인 산 정상에 물이 고여 있었고, 그곳 한가운데가 빨간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붕새의 여의주가 있는 곳을 나타낸 지도로군요. 여러분, 지금 이 산이 어디로 보이세요?”

 혜성이 물었다.

 “제 생각에는.......”

 이태민이 대답했다.

 “백두산 같군요.”

 “제 생각에도요.”

 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찾았네요.”


 속전속결이었다. 혜성이 바로 출발하자고 재촉해서 다음날 그들은 경호원들과 함께 김포공항으로 가서 함경북도의 삼지연 공항으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그들은 점심 무렵 삼지연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판에 표시된 빨간 지점은 백두산 천지 한가운데를 가리키고 있군요.”

 이태민이 석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백두산 천지 안으로 들어가야 할까요? 그럼 이거 큰일인데. 잠수 장비를 가지고 이 높은 산을 올라야 할까요?”

 혜성의 말에 김구름이 대답했다.

 “일단 오늘은 그냥 한 번 올라가보고, 그 말이 맞다면 내일 다시 내려와서 잠수 장비를 챙겨서 올라가 보도록 하죠. 잠수 장비를 갖고 올라가려면 엄청 힘들 테니까.”

 “그럴까? 하긴 오늘 안에 반드시 모든 일을 끝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박준식이 말했다.

 그들은 잠시 의논을 한 뒤 김구름의 말대로 일단은 그냥 바로 산을 오르기로 했다. 그들은 같이 온 경호원들에게 산 아래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했지만 경호원들은 한사코 자신들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모두 함께 출발했다.

 백두산 천지까지는 아주 긴 케이블카가 연결되어 있었다. 혜성 일행은 다른 등산객들과 함께 섞여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가 움직이는 동안 그들은 산 아래에서 산 간식을 먹으며 잡담을 주고받거나 밖을 구경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혜성에게 김구름이 물었다.

 “사장님은 백두산에게 와보신 적이 있나요?”

 “오늘이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사실 제가 등산을 좋아하지 않아서 산에 올 일이 거의 없거든요.”

 “처음으로 백두산에 오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멋져요.”

 혜성은 김구름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사님은 전에 오신 적이 있나요?”

 “네, 예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습니다.”

 “혼자 오셨었나요?”

 그 말에 김구름은 대답 없이 밖을 쳐다보기만 했다.

 케이블카는 중간에서 몇 번 갈아타야 하는 구조였다. 마지막 케이블카에서 내린 곳에서 천지까지 오르려면 300미터 정도를 걸어 올라가야 했다. 평소에 등산을 전혀 하지 않는 혜성에게 산을 오르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고작 300미터였지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는 숨이 찼다. 이태민은 힘든 기색이 없었지만 몸집이 작은 김구름과 박준식도 힘들어 보였다. 특히 박준식은 힘들다고 엄살을 부렸다. 혜성은 같이 따라온 경호원들에게 갑자기 산을 오르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지만 경호원들은 힘든 기색 없이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 말들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그들은 정상에 도착했다.

 혜성은 백두산 천지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압도되었다. 천지가 크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그는 중얼거렸다.

 그들은 잠시 천지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가져온 석판을 보며 목적지를 확인했다. 그들이 천지에 도착하자 석판 위의 지도는 천지를 확대한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빨간색 점은 여전히 천지 한가운데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들이 현재 있는 위치와 천지로 들어가는 길이 검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천지를 중심으로 그들이 있는 곳에서 약간 빙 돌아가서 물가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이곳에 가면 천지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나 봐요. 한 번 그 앞으로 가보죠.”

 혜성의 말에 모두가 찬성했다.

 그들은 석판에 표시된 길을 따라 물가로 내려갔다. 이제 석판 위의 경로는 그곳에서 천지의 중앙까지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박준식이 물었다.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혜성은 석판을 들고 물가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그의 운동화 밑창이 물에 약간 잠겼다.

 “흠.”

 혜성은 그곳에 잠시 서 있다가 뒤를 돌아봤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 순간 혜성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입을 벌렸다.

 “어, 사장님!”

 박준식이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혜성의 앞에 있던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용솟음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물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생겼다.

 혜성도 놀라움에 눈이 커졌다. 그들은 잠시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이태민이었다.

 “천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군요. 한 번 가볼까요?”

 그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새로 생긴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은 계속해서 갈라지면서 천지의 중앙까지 닿았다. 이 신기한 모습에 주변에 있던 등산객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혜성 일행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물로 벽이 세워진 길을 따라서 계속 내려갔다. 혜성이 석판을 든 채 가장 앞에서 걸었다. 혜성은 걸어가면서도 그의 양 옆에 있는 물 벽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걸어가는 도중에 이 물 벽이 무너지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를 뒤따라오는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모두들 말없이 혜성을 따라왔다.

 그들은 어느 새 천지의 중앙에 도달했다. 천지의 한가운데에는 지름이 5미터 정도 되는 검은 구멍이 있었다. 원래부터 있던 구멍인지, 아니면 물이 갈라지면서 열린 구멍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혜성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구멍 안쪽은 계단이었다. 벽에 횃불이 붙어있는 어두침침한 계단길이 끝을 알 수 없는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혜성은 다시 두려움을 느꼈지만 침착하게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계단은 원형으로 둥글게 이어지며 끝없이 아래로 뻗어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내려갔을까? 마침내 계단이 끝나고 평평한 바닥이 나왔다. 지하에 도착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거대한 문이었다.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문이었다. 문 앞에 선 그들에게는 문의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차가운 초록빛이 도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문 위에는 거대한 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새 그림 역시 어찌나 큰지 새의 머리와 날개의 끝부분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붕새로군요.”

 김구름이 말했다.

 혜성은 벽 앞으로 다가갔다. 붕새가 그려진 그림의 아래쪽, 혜성의 가슴 높이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커다란 액자나 벽걸이 TV를 집어넣으면 맞을 듯한 크기였다. 혜성은 들고 있던 석판을 구멍에 맞춰 밀어 넣었다. 구멍은 석판과 모양이 꼭 들어맞았다.

 석판은 이제 지도의 모양이 사라지고 밋밋한 평면이 되어 있었다. 혜성이 석판을 구멍에 밀어 넣자 석판의 표면이 다시 움직이더니 액체처럼 출렁였다. 그리더니 바위가 구르는 듯한 커다란 소리가 나면서 거대한 문의 가운데가 열리기 시작했다. 혜성은 뒷걸음질쳤다.

 날개를 펼친 붕새가 반으로 갈라지더니 그 틈이 넓어지면서 거대한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그들은 열린 문 사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크기를 알 수 없는 아주 넓은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횃불이 없었지만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거대한 구체 때문에 공간 전체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축구장만한 크기의 거대한 구슬이었다. 구슬은 바다와 같은 은은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혜성이 입을 열었다.

 “이게 그것이군요.”

 옆에서 김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붕새의 여의주.”

 그들은 여의주의 크기에 압도되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의주는 수천만년 동안 산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으면서도 그 빛이 전혀 바래지 않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박준식이 말했다.

 “드디어 찾았군요. 그럼 이제 이걸 어떻게 들고 나가지?”

 혜성은 여의주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앞에는 허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하얀 바위가 있었는데 바위 위에는 작은 단추가 하나 있었다.

 “이게 뭘까요?”

 옆에서 이태민이 물었다.

 “잘 모르겠지만 한 번 눌러볼게요.”

 혜성이 단추를 누르자 하얀 바위가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들이 있는 공간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박준식이 당황해서 외쳤다.

 “설마 여기 무너지는 건가? 사장님, 뭔지도 모르고 함부로 누르시면 어떡해요!”

 “잠시만요, 그게 아니에요.”

 혜성이 앞을 가리켰다.

 “여의주가 움직이고 있어요.”

 작은 산만한 크기의 푸른 구슬이 천천히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여의주가 공중으로 뜨는 것과 동시에 높은 천장에서 거대하고 투명한 물체가 내려왔다. 마치 비눗방울처럼 생긴 그것은 아래로 내려와서 공중에 뜬 여의주를 삼켰다. 여의주는 비눗방울 안에 들어간 채로 공중에 뜬 모양이 되었다.

 그런 다음 비눗방울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비눗방울 안에 든 여의주도 함께 작아졌다. 비눗방울은 점점 작아지더니 아주 작은 크기가 되어 혜성에게 날아왔다. 혜성이 손을 뻗어 그것을 만지자 그 물건은 부드럽게 혜성의 품에 안겼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있던 공간의 진동도 멈췄다.

 “끝이에요?”

 박준식이 물었다.

 “그런 것 같군요.”

 혜성은 그 물건을 안은 채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것 좀 보세요.”

 그것은 축구공만한 크기의 유리로 된 투명한 구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유리와 같았고 감촉도 유리와 똑같았다. 유리 공 안에는 방금 전까지 거대한 크기였던 붕새의 여의주가 유리 공 안에 쏙 들어간 크기가 되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일행 모두가 혜성에게 다가와 그 물건을 들여다보았다. 김구름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건 공간의 크기를 줄이는 마법이에요. 불사신 서점에 적용된 바로 그 기술이죠.”

 혜성은 유리 공을 안은 채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붕새의 여의주를 말 그대로 손에 넣었군요.”

 “와우, 드디어!”

 박준식이 탄성을 지르며 혜성에게 달려들었다.

 “저도 만져볼래요.”

 공을 넘겨받은 박준식은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탄했다.

 “정말 신기하다.”

 옆에 있던 이태민이 말했다.

 “나도 만져볼래.”

 이태민도 유리 공을 만지며 즐거워했다. 세 명의 경호원들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옆에서 지켜봤다.

 “자, 이제 붕새의 여의주도 얻었으니 어서 서점으로 돌아가시죠.”

 혜성이 말했다.

 “이제 사장님이 주문을 완성하시기만 하면 되겠군요.”

 김구름의 말에 혜성은 유쾌하게 대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거의 다 끝나가니까요. 남은 계약 기간 안에는 반드시 다 쓸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돌아갈 때는 아까 그 계단을 다시 올라가야 하나?”

 박준식이 물었다.

 “그러면 또 상당히 오래 걸릴 텐데.”

 박준식의 말이 끝나자마자 땅이 흔들리면서 땅에서 뭔가가 솟아올랐다. 아까 혜성이 단추를 누른 하얀 바위가 있던 위치였다.

 그것은 커다랗고 투명한 직육면체였다. 여의주를 담은 공처럼 유리처럼 보이는 물질로 된 물체였다. 직육면체는 그들에게 향한 면이 옆으로 열리더니 안쪽의 공간이 드러났다.

 “이건 뭐죠?”

 이태민이 말했다.

 “혹시 초고대의 엘리베이터가 아닐까요? 우리가 붕새의 여의주를 얻었으니 이제 다시 돌아가게 해주는 기계가 아닌가 싶은데.”

 혜성의 말에 김구름이 혜성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러면 안으로 들어가요. 모두들 탑시다.”

 김구름이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혜성과 다른 두 직원, 그리고 세 경호원 모두 투명한 상자 안에 들어갔다. 그들이 모두 타자 상자는 열려 있던 한쪽 면이 닫히면서 부드럽게 위로 떠올랐다.

 투명한 상자는 어떤 장치에도 연결되지 않고 위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잠시 후 어둠이 찾아왔고, 그들은 상자가 공중을 날아가는 소리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상자 주변에 물결이 치기 시작했다. 마치 바다 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들의 주변에서 물보라가 이는가 싶더니 상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물을 박차고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유리 상자는 물 위에 뜬 채 천지 가장자리의 물가에 도달해서 부드럽게 땅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다시 한쪽 면이 옆으로 열렸다. 안에 있던 혜성 일행이 밖으로 나오자 상자는 다시 소리 없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주변에 있던 등산객들이 물속에서 나온 그들을 보고 놀라서 웅성거렸다.

 “만세!”

 박준식이 주변의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외쳤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박준식은 신이 나서 깡충거리며 뛰어다녔다. 김구름도 함께 뛰어다녔다.

 “드디어 붕새의 여의주를 찾았다!”

 김구름도 즐거워하며 외쳤다.

 “이야호!”

 이태민도 김구름 옆에서 외쳤다. 세 직원은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했다.

 “사장님, 같이 해요!”

 김구름이 돌면서 외치자 혜성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아요. 여러분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네요.”

 세 직원은 경호원들 주변을 뛰어다니며 춤을 추었다. 경호원들도 즐거워하는 그들을 보며 박수를 쳤다. 혜성은 세 사람을 진정시켰다.

 “여러분, 일단 이곳을 떠납시다. 산 아래로 내려가서 파티를 하도록 해요.”

 혜성은 직원들과 경호원들을 이끌고 천지 밖으로 올라갔다. 그는 산 위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백두산 천지를 눈에 담은 뒤 산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발걸음은 아주 가벼웠다. 혜성과 직원들은 즐겁게 재잘거리며 케이블카가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정말 생각도 못 했는데.”

 산을 내려가며 박준식이 떠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전 사장님이 붕새의 여의주를 찾자고 한 그 순간부터 회의적이었어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혜성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진짜로 이걸 찾을 줄이야! 사장님, 의심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 못난 박준식이 사과드립니다!”

 “하하, 괜찮아요.”

 “앞으로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게 뭐든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듣고 있던 이태민이 끼어들었다.

 “멍청한 녀석, 이제 와서 그런다고 사장님이 널 좋아할 것 같냐? 나처럼 처음부터 사장님을 믿고 따랐어야지.”

 그 말에 박준식은 흥분해서 가르랑거렸다.

 “아니, 어이없네! 너도 지금까지 계속 사장님한테 제국과 계약하라고 초를 쳤잖아!”

 “자, 여러분, 그런 얘기는 그만 하도록 해요. 어찌 됐든 붕새의 여의주를 얻었으니 됐죠. 우리 오늘은 영업을 하루 쉬면서 노는 게 어때요?”

 혜성의 말에 김구름이 손뼉을 쳤다.

 “정말 좋아요! 우리 산 아래로 내려가서 오랜만에 점심 회식하는 거 어때요?”

 “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그들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갈 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마치 수학여행을 온 어린 학생들처럼 신이 나서 케이블카 안에서 웃고 떠들면서 붕새의 여의주를 번갈아가며 만져봤다.

 “정말 신기하게 생겼다.”

 김구름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게 바로 우주에서 가장 큰 마력이 담긴 보석이구나.”

 혜성은 직원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안도감으로 마음이 가벼웠다. 이제 더는 제국과의 계약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칭찬했다. 붕새의 여의주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결과물이었다.

 ‘그래, 신념을 지키길 잘했어.’

 그는 생각했다.

 ‘저 여의주는 지금까지 고생한 나에게 백두산이 주는 선물일 거야.’

 그는 눈을 돌려 창밖을 보다가 생각이 마법서로 옮겨 갔다. 이제 마력원을 얻었으니 주문만 제대로 쓰면 된다. 그는 어제 쓰다 만 주문을 떠올렸다. 빨리 산을 내려가서 주문을 마저 쓰고 싶었다.

 마침내 산을 완전히 내려왔을 때는 오후가 한참 지난 뒤였다. 혜성과 직원들은 산 아래의 주차장에 세워둔 렌트카를 향해 걸어갔다.

 “우리 여기 아래 마을로 내려가서 뭐 좀 먹는 게 어때요? 이 아래에 식당이 몇 개 보이던데.”

 박준식의 말에 김구름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난 있잖아......”

 그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혜성에게 달려들었다. 혜성이 놀라서 움츠러드는데 경호원들이 그 사람을 막아 세웠다.

 각목을 든 젊은 도깨비 남자였다. 경호원들은 재빨리 남자를 제압했다.

 “뭐야?”

 혜성이 당황해서 내뱉었다.

 “무슨 일이죠?”

 그 순간 또 다른 사람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한 명이 아니었다.

 열 명 남짓한 도깨비들이 그들에게 떼로 몰려들었다. 세 경호원은 그들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외쳤다.

 “공자님, 빨리 차에 타세요!”

 혜성과 직원들이 차로 달려가는데 또 다른 도깨비들이 달려들었다. 경호원들이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경호원을 뚫고 들어온 남자 몇 명이 김구름에게서 여의주를 빼앗으려고 했다.

 “안 돼!”

 김구름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혜성과 이태민, 박준식도 김구름을 잡은 남자들에게 매달렸다.

 “이거 놔! 무슨 짓이야!”

 혜성이 외쳤다.

 “뭐하는 거예요!”

 김구름은 어느새 남자들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남자들 중 한 명이 여의주를 잡아당기다가 놓쳐서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김구름이 재빨리 그걸 집어서 혜성에게 던졌다.

 “사장님!”

 혜성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여의주를 낚아챘다. 그런데 그 순간 도깨비 한 명이 각목으로 김구름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혜성은 숨이 막혔다.

 각목에 맞은 김구름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혜성은 순간 그의 눈 속에서 어떤 빛 하나가 꺼진 것 같다고 느꼈다.

 “이사......”

 혜성이 중얼거리는 순간 김구름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안 돼!”

 혜성이 여의주를 팽개치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이사님!”

 그 때 경호원 한 명이 혜성을 안고 잡아당겼다.

 “공자님, 위험합니다!”

 “이거 놔요!”

 경호원은 혜성을 한 팔로 막은 채 땅에 떨어진 여의주를 집어 들고 차로 이동했다. 혜성은 끌려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사님! 제발!”

 김구름을 때린 남자들이 쓰러진 혜성에게 달려왔다. 나머지 경호원 둘이 그들을 막으려고 몸싸움을 벌였다.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이사님!”

 혜성을 안은 경호원은 차 문을 열고 혜성과 여의주를 뒷좌석에 쑤셔 넣은 다음 재빨리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잠깐만요, 아직 다른 사람들이 안 탔어요!”

 혜성이 외쳤지만 경호원은 이미 차를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은 공자님 먼저 피하셔야 합니다.”

 “안 돼요, 우리만 갈 순 없어요. 빨리 멈추세요!”

 혜성은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운전석에서 문을 잠가서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열어요!”

 “죄송합니다.”

 차가 몇 미터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도깨비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경호원은 이를 악물고 액셀을 밟았다.

 그 때였다.

 차 앞에 갑자기 이태민과 박준식이 나타났다. 경호원은 깜짝 놀라 차를 세웠다. 그 바람에 혜성은 운전석 의자에 부딪히고 말았다.

 도깨비들이 이태민과 박준식을 붙잡고 두 직원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잠시 몇 초 동안 정적이 흘렀다.

 “차에서 내려!”

 누군가가 외쳤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김혜성!”

 차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차에서 내려.”

 혜성은 얼어붙었다.

 그녀는 석정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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