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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Dec 18. 2024

44화. 작전

<흑마법서> 소설 연재

 매려의 모든 시민들을 불사신 서점 안으로 이동시키자는 혜성의 제안에 대신들은 술렁였다. 하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현무 44가 매려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여왕은 혜성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여왕은 매려 시민 전체에게 불사신 서점으로 도피하라는 비상 명령을 내렸다. 물론 원하는 사람은 도시에 남아도 됐지만 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려 시민들 모두가 여왕과 함께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궁전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도시 한가운데에 열린 커다란 차원문 안으로 줄지어 이동했다.

 원래 불사신 서점 지구 지점은 용산에서 사람들을 탈출시킬 때 차원문을 생성하는데 필요한 마력을 다 써버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붕새의 여의주가 있었다. 여의주에서 추출한 마력이 흑마법서를 만드는 데 쓴 뒤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걸로 차원문을 생성한 것이다.

 혜성과 직원들은 서점의 차원문을 최대한 크게 열어놓고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노약자를 우선으로 해서 시민들은 침착하게 차원문 안으로 들어갔다. 시민들이 모두 대피하자 마지막으로 대신들과 여왕, 그리고 혜성과 직원들이 차원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차원문을 닫았을 때는 궁전의 방어막이 뚫린 직후였다.

 궁전 직원과 대신들은 혜성과 여왕의 지시대로 시민들을 성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쉬게 했다. 하지만 서점 안의 성은 매려 시민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성 안의 모든 방은 도깨비로 가득 찼고, 성 안에 들어가지 않고 들판을 서성거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몇몇 꼬마들은 아무 걱정 없이 해변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한편 그 사이 서점 직원들과 여왕, 그리고 영의정을 포함한 몇 명의 대신들은 혜성을 따라서 서점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갔다.

 “이제 불사신 서점도 방어력을 최대한 높여야겠어.”

 혜성이 말했다. 그는 서점의 유리문으로 걸어가서 문을 닫고 유리문 위에 있는 고리를 잠갔다. 그 일을 한 뒤 혜성은 다시 여왕에게 돌아왔다.

 “이제 됐어. 서점은 안전해.”

 여왕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끝이야?”

 “응.”

 여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혜성을 쳐다봤다.

 “음,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안전해 보이지 않는데.”

 “아니야. 서점은 이제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어.”


 그 동안 연방군은 양천구 신정동으로 향했다. 그들이 서점 앞에 나타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군인들이 탄 트럭과 탱크가 속속들이 서점 앞에 도착했다. 군인 중 하나가 차에서 내려 서점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유리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김혜성 사장!”

 그가 외치자 혜성은 유리문 쪽으로 다가갔다.

 “난 연방 육군 사령관이오! 당장 이 문을 여시오!”

 혜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어요. 당신들이 무기를 사용하고 있잖아요.”

 그러자 사령관은 권총을 꺼내 혜성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알은 유리에 맞고 튕겨나갔다.

 “방탄유리군.”

 사령관이 중얼거렸다.

 그는 뒤로 돌아가 군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군인들이 일렬로 서서 유리문을 향해 총을 겨눴다.

 “발사!”

 사령관의 명령에 군인들은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무수한 총알들은 유리문을 맞고 튕겨나갔다.

 혜성은 자신의 코앞에서 튕겨나가는 총알들을 보며 씩 웃었다.

 “재미있군.”

 여왕도 조심스럽게 혜성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 유리가 생각보다 단단한가 보네.”

 “그럼. 적어도 놈들이 들어오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군인들이 한참 기관총을 쐈는데도 문에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사령관이 뭐라고 외치자 군인들이 뒤로 빠졌다. 그리고는 탱크가 서점을 향해서 움직였다.

 “어어, 저들이 탱크로 쏘려나 봅니다.”

 대신들 중 한 명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혜성이 자신 있게 말했다.

 탱크의 포신이 서점의 유리문을 겨냥하더니 포탄을 발사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문 바깥은 화염에 휩싸였다.

 하지만 유리문은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혜성은 뒤돌아서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아시겠죠? 왜 우리 서점의 이름이 ‘불사신 서점’인지 말이에요.”

 여왕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래서 불사신 서점이구나.”

 영의정이 물었다.

 “현무 44도 막아낼 수 있을까요?”

 “문제없습니다.”

 혜성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용이 와도 끄떡없어요.”


 공중 함선들은 거대한 레이저포를 다시 밧줄로 묶은 뒤 이번에는 신정동으로 향했다.

 연방군은 매려 성문 앞에서 했던 것처럼 레이저포를 땅에 설치하고 발사 준비를 했다. 공군 대위는 다시 레이저포의 조종석에 앉아 포를 가동시켰다.

 레이저가 발사되어 유리문에 부딪혔다. 하지만 레이저는 유리문을 녹이지 못했다. 녹이기는커녕 문에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화가 난 사령관이 고함을 질렀다.

 “출력을 최대로 높여!”

 대위는 그 말에 따라 현무 44의 출력을 끝까지 높였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레이저는 서점의 얇은 유리문에 전혀 손상을 주지 못했다.

 사령관에게 그 사실을 전해들은 대통령 역시 화를 냈다.

 “그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문을 뚫어! 유리창 하나 깨지 못하고 뭘 하는 거야!”


 현무 44가 서점의 유리문에 계속 공격을 가하는 동안 여왕과 대신들, 그리고 혜성은 서점 안의 성에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튼튼한 불사신 서점을 레이저포가 파괴하지는 못하겠지만 수만 명의 시민들을 데리고 서점 안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그들이 한창 의논을 하고 있는데 이태민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사장님? 이사님이 깨어났습니다.”

 그 말에 혜성은 벌떡 일어났다.

 “진짜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구름이 박준식의 부축을 받으면서 걸어 들어왔다. 혜성은 달려가서 김구름을 껴안았다.

 “이사님!”

 김구름도 혜성을 안고 등을 토닥였다.

 “사장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닙니다.”

 김구름이 힘없이 웃었다.

 “이 부장과 박 차장에게 전부 들었어요. 듣고 나서 너무 놀랐습니다. 제국과 연방, 그리고 노예제...... 너무 놀랐어요.”

 혜성은 김구름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혔다. 김구름이 물었다.

 “매려의 국왕 폐하와 대신들께서 모두 여기 계셨군요?”

 “맞아요.”

 혜성이 대답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김구름의 물음에 여왕이 대답했다.

 “지금 그걸 계속 의논하는 중입니다. 우린 일단 이곳에서 버티면서 연방과 협상을 하는 방향으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김구름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말했다.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될까요?”

 “그러시죠.”

 여왕이 대답했다.

 “잘하면 이 상황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어떻게요?”

 혜성이 물었다.

 “흑마법서를 이용하는 겁니다.”

 “흑마법서?”

 혜성의 말에 옆에 있던 박준식이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 흑마법서가 완성되었습니다.”

 “네? 진짜요?”

 혜성은 깜짝 놀랐다.

 “네. 저희도 방금 서점에 들어온 후에야 알게 됐습니다. 서점의 마법 시스템이 주문에 마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오늘 아침에 끝냈다고 합니다. 이제 완성된 거예요.”

 “와우, 드디어 흑마법서를 만들었구나! 축하해.”

 여왕이 혜성의 등을 두드렸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쉽다.”

 혜성이 물었다.

 “그럼 지금 그건 어디 있어요?”

 이태민이 대답했다.

 “성 지하에 있습니다.”

 “자, 여러분, 중요한 건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구름이 손뼉을 쳐서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저는 아까 깨어나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듣고 흑마법서가 완성되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어요. 바로 흑마법서를 사용해서 연방의 인드라망을 공격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혜성이 물었다.

 “사장님이 여왕 폐하를 어떻게 만나신 건지 기억하시죠?”

 “네. 이무기를 죽여서......”

 “그럼 그 이무기가 왜 탈출했는지도 기억하십니까?”

 그 말에 혜성은 눈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예전에 어떤 테러범이 소화의 인드라망을 공격하는 바람에 제국의 군사연구시설에 갇혀 있던 이무기가 깨어나서 탈출한 거잖아요.”

 “그렇죠. 우리도 같은 방법을 쓰는 겁니다.”

 여왕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김구름은 몇 번 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 때 그 테러범은 제국의 인드라망 관리 시설 중 한 곳에 잠입해서 적마법서를 이용해 제국의 인드라망을 손상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테러범이 몰랐던 사실은, 인드라망 전체를 파괴하거나 초기화하기 위해서는 적마법서로는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드라망의 일부를 손상시켰을 뿐이었죠.

 우리도 그 테러범이 했던 것과 똑같이 하는 겁니다. 사장님이 만드신 흑마법서를 가지고 연방의 인드라망 관리시설에 들어간 뒤, 흑마법서를 이용해서 인드라망 전체를 우리가 조종할 수 있게 변환시키는 겁니다.

 아시겠지만 현대 국가에서 군대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인드라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연방의 인드라망을 조종하게 된다면 연방 전체의 군대를 조종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물론 수도, 전기 등의 생활시설은 계속 돌아가게 하면서 서점을 공격하는 군대를 정지시키는 거죠. 그리고 태백산맥 지하도시의 문을 열고 노예들을 풀어주는 것이고요.”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리던 김구름이 물었다.

 “어떤가요?”

 여왕이 입을 열었다.

 “제가 마법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 혜성이가 쓴 마법서를 이용해서 인드라망을 조종하는 게 가능한가요? 혜성이가 쓴 흑마법서는 문학작품을 창조하는데 사용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흑마법서와 적마법서는 제작 목적에 상관없이 인드라망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있습니다. ”

 김구름이 자신 있게 말했다.

 “잠깐만요, 그렇게 하면 흑마법서가 파괴되는 거 아니에요?”

 혜성이 물었다.

 “제국의 인드라망을 공격했던 테러범이 사용한 적마법서는 완전히 파괴됐잖아요.”

 그 말에 김구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적마법서라서 그런 겁니다. 흑마법서는 절대 파괴되지 않습니다.”

 “정말요?”

 “물론이죠. 흑마법서는 기본적인 속성상 인드라망에 연결한다고 해서 파괴되지 않아요.”

 하지만 혜성은 여전히 불안했다. 어떤 마법서가 파괴된 후에는 그 마법서에 쓰인 주문에는 다시 마력을 부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파괴된 마법서의 주문은 다시는 책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주문을 쓰는 법만 알았지 인드라망의 속성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에 김구름의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또 있는 것 같습니다.”

 영의정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서점 안에 갇혀 있는 상황인데, 연방의 인드라망 관리시설까지 어떻게 접근하죠?”

 영의정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혜성이 벌떡 일어났다.

 “방법이 있어요!”

 모두가 혜성을 쳐다봤다.

 “태초함을 소환하면 돼요!”

 “태초함이라면......”

 영의정이 물었다.

 “초고대의 매려인들이 만든 최종병기 함선 말인가요?”

 “맞아요. 그걸 소환해서 타고 가는 겁니다.”

 “공자님, 태초함을 소환하려면 매려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문신의 주문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그 문신을 기억해요.”

 혜성이 말했다.

 “제가 하선을 만난 적이 있잖아요. 그 때 전 그 사람의 등에 있던 문신을 봤어요. 그리고 저는 그 문신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 말에 여왕이 눈을 치켜떴다.

 “그게 정말이야? 그걸 기억하고 있다고?”

 “물론이지.”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한 번 본 걸 어떻게 기억하는 거야?”

 “굉장히 특이한 주문이었거든. 그리고 난 마법사잖아. 그 정도는 기억할 수 있지.”

 여왕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 기억력이 정말 좋구나.”

 “오, 그렇다면 일이 한층 수월해졌군요.”

 김구름이 말했다.

 “사장님, 정말 그 주문을 완전히 기억하고 계십니까?”

 “네, 확실해요.”

 “그럼 그 주문만 있으면 함선을 소환할 수 있는 건가요?”

 김구름의 물음에 여왕이 대답했다.

 “주문만으로는 안 되고, 매려 왕가의 마법사들이 주문을 가지고 소환 의식을 치러야 해요.”

 “그 마법사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우리와 함께 서점 안으로 들어왔죠.”

 “그럼 서점 안에서 함선을 소환할 수 있는 건가요?”

 “아마 가능할 겁니다.”

 혜성이 물었다.

 “근데 태초함은 초고대에 만들어진 함선인데 매려의 마법사들이 조종할 수 있을까?”

 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거야. 그래야만 해.”

 그들은 계속 의논을 하며 작전의 세부 사항을 만들어나갔다. 김구름이 말했다.

 “연방 인드라망의 중앙 관리시설로 갑시다. 그곳에 접속해야 연방 전체의 인드라망을 완전히 조종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뒤 그곳에 있는 인드라망의 핵심부에 들어가서 김구름이 흑마법서를 이용해 인드라망의 암호를 뚫고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인드라망의 조종권을 획득하면, 그 즉시 태초함에 타고 있던 매려의 마법사들이 인드라망과 태초함의 시스템을 연결해서 연방의 군대를 멈추는 것이다. 이상이 그들의 작전이었다.

 “그게 될까?”

 박준식이 의심쩍다는 듯 물었다.

 “지금으로서는 그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잖아.”

 이태민이 대답했다.

 “잠깐만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물어볼게요. 정말 흑마법서가 파괴되지 않는 게 확실해요?”

 혜성이 물었다.

 “확실합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김구름이 자신 있게 말했다.

 “정말이죠?”

 “정말이에요.”

 “좋아요, 이사님이 그렇게 말하시니 믿어봐야죠.”

 혜성은 불안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 문제는 알겠습니다. 그리고 있잖아요, 또 하나 생각해봐야 할 게 있어요. 우리가 만약 작전에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의 체제가 바뀌고 거의 모든 국민이 태백산맥에서 붕새의 뼈를 캐는 노동을 하게 될 텐데, 이런 일을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우리끼리 결정해도 되는 걸까요?”

 “원칙적으로는 잘못된 일이지.”

 여왕이 말했다.

 “민중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평등을 위한 혁명을 하는 게 옳은 일인가, 지금 넌 이걸 묻는 거지?”

 “그렇지.”

 “나도 그게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해. 아마 대부분의 인간과 일부 도깨비들은 반대하겠지. 하지만 내 생각을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 일을 해야 해. 지금은 사회적 합의를 거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우리는 절벽 끝에 내몰려 있어. 무엇보다도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야. 우린 먼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이 일을 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국민을 노예로 부리고 죄 없는 국민을 살해하려는 정부를 혁파해야 해.

 그리고 사회적 합의는 작전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아. 우리가 인드라망을 장악한 다음에 국민들과 민주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면 되니까. 예를 들면 국민 투표를 하는 식으로 말이야. 물론 나는 태백산맥 노예제를 끝내고 그 노동을 국민 전체의 의무로 전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일단 우리의 생존이 먼저야.”

 “폐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영의정이 말했다.

 “지금은 우리와 매려 시민들의 생존이 더 중요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공자님께서 태초함의 주문을 제대로 기억하느냐에 달렸지요.”

 “전 제대로 기억해요.”

 혜성은 그렇게 대답한 뒤 여왕에게 물었다.

 “하나만 물어볼게. 만약 우리가 연방의 노예제를 끝내고 전 국민이 평등하게 노동을 분담하게 된다면, 그 노동에는 너도 포함되는 거야?”

 “물론이지.”

 여왕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전 국민이 그 노동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분담할지, 구체적인 방식은 다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겠지.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 어떤 사람도 예외가 될 수는 없어. 내가 노동이 불가능한 장애인이 아니니까 당연히 나와 대신들, 그리고 너도 의무의 대상에 포함될 거야. 평등이란 건 그런 거니까. 일부에게만 좀 더 평등한 건 평등이 아니야.”

 “좋아, 네가 그렇게 대답하니까 안심이 되네.”

 혜성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한시가 급하니 지금 바로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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