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서> 소설 연재
당황한 혜성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때 김구름이 다급하게 외쳤다.
“사장님, 저 자의 말을 듣지 마세요! 들을 가치도 없는 헛소리입니다!”
“닥쳐! 닥치라고!”
송태석이 외쳤다.
“생각해보라고, 시민견 자체가 소수 종족인데 하얀 포메라니안 시민견이라는 우연의 일치가 얼마나 되겠나? 저 새끼는 김지훈의 양아버지야! 저 놈이 너한테 그랬겠지, 흑마법서를 이용해서 인드라망을 장악해도 흑마법서는 파괴되지 않는다고, 내 말이 틀렸나?”
혜성의 눈이 커졌다.
“그건 거짓말이야! 흑마법서로 인드라망을 장악하는 순간 흑마법서는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고!”
“거, 거짓말......”
“사실이야, 내가 자원부 국장이니까 잘 알지! 당장 저 주문을 확인해 봐, 내 말이 틀렸나.”
혜성은 송태석과 김구름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옆으로 다가온 김구름이 두려운 눈으로 혜성을 올려다보았다.
“사장님......”
“이사님, 이게 다 무슨 소리에요?”
“거짓말, 거짓말입니다. 저 놈의 말을 듣지 마세요.”
그 때 김구름의 목에 걸린 작은 로켓 목걸이가 혜성의 눈에 들어왔다. 김구름이 늘 목에 걸고 다니던 목걸이였다. 그 순간 혜성은 자신이 처음 김구름을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김구름의 목걸이를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김구름은 애처롭게 신음하며 저항했지만 그는 미친 듯이 김구름의 목걸이를 잡아당겼다.
“안돼요!”
김구름이 그에게 매달렸지만 그는 김구름을 뿌리치고 로켓을 열었다.
그것은 가족사진이었다.
김구름과 그의 아내로 보이는 또 다른 하얀 시민견, 그리고 한 도깨비 소년이 함께 앉아서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오승희가 보여준 사진 속의 김지훈과 같은 얼굴이었다. 틀림없었다.
“왜..... 왜 이사님이 이 사람과.......”
혜성은 말을 더듬거렸다.
“이 사진 도대체 뭐에요?”
옆에서 국장이 말했다.
“내 말이 맞지? 김지훈은 포메라니안 시민견 부부에게 입양된 아이였어.”
김구름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사장님, 나중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우선.....”
송태석이 말을 끊었다.
“아마 저 자가 그랬겠지, 흑마법서를 사용해서 인드라망을 조종하자고, 적마법서와 달리 흑마법서는 파괴되지 않는다고 말이야. 하지만 틀렸어! 그렇게 하면 흑마법서도 파괴된다고! 저 놈이 너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야. 파괴된 마법서의 주문으로는 다시 책을 만들 수 없다는 걸 너도 알 거 아니야!”
김구름이 다급하게 말했다.
“사실이 아닙니다. 흑마법서를 실행시켜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송태석이 소리쳤다.
“아니라니까! 내가 인드라망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매려의 마법사들을 포함해서 김혜성 네 주변의 마법사들 중에는 인드라망의 핵심 구조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몰랐겠지. 시스템과 흑마법서를 연결하는 것도 방금 전에 네가 안 하고 저 놈이 한다고 했겠지? 네가 지금 인드라망의 시스템 주문을 확인해봐!”
그 말에 혜성은 김구름이 만든 주문을 향해 달려갔다. 김구름이 달라붙었지만 그는 김구름을 거칠게 밀쳐냈다. 그는 김구름이 생성시킨 연결 시스템의 주문, 즉 허공에 떠 있는 붉은색 주문으로 달려가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주문을 읽고 난 혜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송 국장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인드라망에 침투해서 조종을 하려면 흑마법서도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혜성아, 사실이야?”
여왕이 물었다.
“정말 흑마법서가 파괴되는 거야?”
태초함에 있던 여왕과 마법사들은 혜성과 송태석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그들 역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사실이야......”
혜성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여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혜성아, 내 말 잘 들어.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해. 지금 연방군이 태초함을 공격하고 있어. 함선의 마력이 얼마 없어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하지만 혜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충격에 떨다가 몸을 돌려 김구름에게 말했다.
“그러면 설마......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날 데려온 거야? 처음부터.......”
김구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처음부터 파괴하기 위해 흑마법서를 만들게 하려고 자네를 데려온 거야. 이봐 포메라니안, 내 말이 맞지?”
송태석이 말했다.
“김 사장, 자네는 여태 속았던 거야. 그러니까 그만둬. 자네가 오랫동안 열심히 만든 흑마법서잖아. 그걸 이렇게 없애버릴 거야?”
송태석은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김 사장, 자네가 지금 여기서 그만두면 연방은 자네의 죄를 용서해줄 거야. 그리고 매려도 더 이상 건들지 않을게. 자네는 여왕의 남편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면서, 무한히 위대한 작품을 쓴 사람이라는 커다란 명예까지 누리는 거야. 그러니까 그만해. 자네의 행동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거야. 조국을 망하게 할 셈인가? 그건 아니겠지?”
그러자 가만히 있던 김구름이 갑자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조국 같은 소리하지 마! 이건 너희의 죄의 대가야! 너희가 내 아들을 죽였잖아!”
혜성은 김구름의 그 모습에 놀라 흠칫했다.
김구름은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던 명랑하고 귀여운 모습이 아니었다. 붉게 충혈된 눈에 악마같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송태석도 김구름의 모습에 놀란 듯했지만 이내 지지 않고 소리쳤다.
“김지훈은 네 자식도 아니잖아, 근데 왜 이래!”
그러자 김구름은, 혜성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지옥 같은 고함을 질렀다.
“걔는 내 아들이야! 나와 내 아내의 자식이라고!”
송태석이 이죽거렸다.
“걔는 도깨비고 넌 개잖아.”
김구름이 악을 썼다.
“우리 애야! 우리가 낳은 아이란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라. 어떻게 개가 도깨비를 낳냐.”
김구름은 땅에 털썩 주저앉아 오열했다.
“우리 아들이라고......”
잠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함선의 여왕과 도깨비들, 위층의 이태민과 박준식도 모두 듣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구름이 주저앉아서 소리 내어 우는 동안 송 국장은 충격에 빠진 혜성을 설득했다.
“이봐, 강아지가 하는 말은 무시해. 저 자는 정신 나간 친소파야. 자네는 똑똑하니까 합리적인 선택을 내려.”
“난 친소파가 아니야! 너희가 내 아들을 죽였잖아!”
김구름이 울부짖었다.
“우리 애를 살려내!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김구름은 엎드려 통곡했다. 그 모습에 국장은 화를 냈다.
“멍청한 강아지 같으니! 고작 애 하나 죽었다고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심지어 걔는 네 친아들도 아니었잖아. 길에서 주운 어린애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을 벌여?”
“그 아이는 내 아들이야......”
“웃기고 있네. 입양아잖아? 제발 생각 좀 해봐. 넌 지금 입양아 하나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고 있어. 왜 그렇게 공감 능력이 없어?”
국장은 몹쓸 것을 보듯 얼굴을 찌푸렸다.
“이래서 친소파하고는 대화가 안 통한다니까. 제발 부탁인데 공부 좀 해! 연방의 제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지 몰라? 왜 그렇게 공감 능력이 없어? 겨우 애 한 명 죽은 거 가지고 세상을 무너뜨리려 하다니!”
송태석은 고개를 돌려 혜성에게 말했다.
“김 사장, 어서 그만 두게. 자네는 여태 저런 못난 놈에게 조종당하고 있었어. 어서 그만 둬.”
혜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비틀거리다가 옆에 쓰러져 있는 김구름에게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이사님......”
김구름은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이사님?”
혜성은 김구름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말 좀 해봐요.”
어느새 혜성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말 좀 해보라고, 이 개새끼야!”
갑자기 혜성은 고함을 질렀다.
“이 더러운 새끼, 말 좀 해보라고! 네가 감히 날 속여? 내가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데!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데!”
그는 김구름을 흔들면서 울부짖었다.
“이건 내가 위대한 작품을 만들려고 쓴 책이란 말이야! 이 책을 쓰는데 내 인생을 다 바쳤어! 근데 어떻게 날 속일 수가 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 씨발 새끼, 이 더러운......”
그는 마구 울면서 화를 냈다. 그렇게 화를 내다가 갑자기 그는 김구름에게 빌기 시작했다.
“이사님, 제발 한번만 봐주세요. 저는 평생 이 책을 쫓아다니다가 이제야 간신히 손에 넣었어요. 전 가족도 없고 가진 거라고는 오직 이 책 한 권밖에 없단 말이에요. 제발 봐주세요, 제발.”
그는 김구름에게 매달려 울면서 애원했다.
“제발요, 전 이 책을 파괴할 수 없어요. 제가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사님도 알잖아요. 그러니까 제발요. 제발 봐주세요. 제발.....”
김구름도 하염없이 울었다. 김구름은 울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사장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러자 혜성은 더욱 서럽게 울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제발 제 책을 없애지 마세요.”
김구름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혜성은 김구름에게 매달려 손을 싹싹 빌었다.
“제발요, 제발, 시키는 건 뭐든 할 테니까 제발 제 책을 파괴하지 마세요.”
그러자 송 국장이 외쳤다.
“김 사장, 왜 자네가 그 자에게 애원하나? 선택권을 쥔 건 자네야!”
혜성은 듣지 않고 울면서 빌었다.
“이사님, 제발 제 책을 파괴하지 마세요......”
김구름이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사장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혜성은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울먹이며 물었다.
“윤아, 나 어떻게 해야 돼?”
함선에 있던 여왕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러자 송태석이 외쳤다.
“맞아, 김 사장,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어.”
그는 흑마법서에 다가가 손짓을 했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흑마법서가 저절로 말리더니 다시 막대 형태가 되었다. 그는 책을 든 채 몸을 돌렸다.
“이 책은 절대 없앨 수 없어. 내 목숨보다 소중하니까.......”
그는 중얼거렸다.
“좋았어, 김 사장!”
송 국장이 외쳤다. 혜성은 계속 중얼거렸다.
“절대 없앨 수 없어, 절대로......”
발전소 밖의 공중에서는 태초함이 연방 공군의 공격을 힘겹게 막고 있었다.
“폐하, 저렇게 그냥 두실 겁니까?”
영의정이 여왕에게 물었다. 하지만 여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흑마법서를 들고 걸어가는 혜성의 뒷모습을 보면서 김구름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바깥으로 걸어가던 혜성은 갑자기 주저앉았다. 그리고 통곡했다. 그는 책을 가슴에 끌어안고 온몸을 떨며 울었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데...... 이게 어떤 건데......”
그는 지금까지 불의를 거부하겠다는 자신의 신념과 위대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소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다. 그는 그 두 가지를 계속해서 힘겹게 충족시켰지만 끝에 도달한 지금, 마침내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그는 드디어 깨달았다. 처음부터 정해진 일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혜성은 고통스럽게 울었다.
한참을 울던 혜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훌쩍이면서 다시 김구름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혜성은 흑마법서를 공중에 놓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책이 다시 펼쳐졌다.
혜성은 다시 흑마법서를 작동시켰다. 흑마법서의 글자들이 하얗게 빛나더니 푸르스름한 색깔로 변했다.
“김 사장? 지금 뭐하는 건가?”
송 국장이 물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혜성은 자신의 작품을 내려다보았다.
책 위로 그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는 마지막 손짓을 해서 흑마법서를 인드라망과 완전히 연결시켰다.
“폐하! 흑마법서가 작동을 완료했습니다!”
함선에 있던 마법사가 외쳤다.
잠시 멍하니 있던 여왕이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당장 인드라망에 침투해서 시스템을 연결하세요!”
발전소 내부가 흔들렸다. 인드라망이 전환되면서 그 영향으로 발전소 건물이 흔들리고 있었다.
“김혜성! 무슨 짓이야!”
송태석이 고함을 질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
그 순간 그의 말을 자르듯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송태석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하지만 혜성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김구름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사장님!”
하지만 혜성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