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3차 현대사 포럼 <보이지 않은 역사> 리뷰
최근 혜성같이 등장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인데요. 드라마의 유행으로 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건 최근의 일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부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활약한 정은혜 작가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가 흥행을 하게 되면서 여기에 대한 고민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지요. 이번 기사에서는 그 중에서도 시각장애인의 역사를 주제로 한 현대사 포럼에 대해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함께 현장 속으로 가볼까요?
지난 7월 20일 오후 3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강의실에서는 제3차 현대사포럼 <보이지 않은 역사-한국 시각장애인들의 저항과 연대>를 주제로 강연이 열렸습니다. 이날 발표를 맡으신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님은 1990년대 말부터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활동가이자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하셨습니다. 교수님은 역사 속에서 시각장애인이 배제되고 차별에 저항한 기록을 담아 책을 쓰셨는데, 이 책이 바로 『보이지 않은 역사』입니다. 책의 제목을 『보이지 않‘은’ 역사』라고 지은 이유는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는데 사회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를 보지 못했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다른 몸을 갖고,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교류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졌습니다. 『논어』 위령공 편에는 공자가 시각장애인 악사 ‘면’을 만나서 자리를 안내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공자는 “여기에는 섬돌이 있고, 아무개는 여기 있고 아무개는 여기 있고”라고 자세히 말해주어 면이 자연스럽게 자리에 어울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외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시각장애인 악사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승려가 되는 시각장애인이 많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19세기 말 조선을 여행한 Bishop이 쓴 초기 한국학 저서에서는 점복업에 종사하는 시각장애인 아들을 둔 부모를 두고 ‘시각장애인 아들은 돈을 잘 벌고 부모를 봉양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모는 운이 좋다(the Pan-su are blind sorcerers, and those parents are fortunate who have a blind son, for he is certain to be able to make a good living and support them in their old age)’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았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cf. 점복: 점치는 일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은 언제부터 사회에서 소외되기 시작했을까요? 바로 ‘근대’가 시작되면서부터였습니다. 장애인들과 더불어 사는 사회에는 다른 속도의 시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입니다. 하지만 근대에는 시계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동일한 속도의 시간에 살아가게 되었고, 다른 속도의 시간을 살아가는 시각장애인들은 사회에서 배제되게 되었습니다. 특히 식민지 시기에 일본식 민법이 도입되면서 시각장애인은 준금치산자로 취급받게 됩니다. 여기서 금치산자란 소송행위, 상속승인, 부동산 혹은 중요한 동산에 관한 권리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를 할 때 보좌인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필요한 사람을 일컫습니다. 즉, 장애인이 스스로 계약행위를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로 인식된 것입니다. 또한 인쇄매체의 확산으로 문자를 해독할 수 없는 사람이 무능한 이로 인식되면서 근대 이전까지 구술로 지식을 전승해오던 시각장애인들은 문맹으로 취급받게 됩니다.
cf. 구술: 입으로 말함
하지만 이와 같은 차별과 배제에도 시각장애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저항과 연대를 이어나갑니다. 전통적으로 점복업에 종사해 온 시각장애인들은 직업조합을 통해 서로 도와가며 경제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이들은 조선시대 이래로 ‘맹청’이라는 조직을 두고 경제 활동을 조직했으며, ‘5훈과 5계’라 불리는 조합의 규약을 만들어 조합의 운영원리로 삼았습니다. 자신들이 번 돈의 일부를 조합에 기금으로 납부하고, 이 기금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저리로 대출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공식적인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웠던 시각장애인들은 조합의 대출을 활용해 자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점복업은 1920년대 식민권력에 의해 미신으로 인식되면서 탄압받기 시작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생존수단을 지키기 위해 총독부에 저항하며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는 동시에 일부는 일본에서 들어온 안마업에 종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방이후 일본인을 주요 고객으로 하던 안마업 역시 쇠락하게 되면서 이들 역시 1960년대에 시위를 통해서 안마사로서의 직업권을 인정받습니다.
이날 토론을 맡으신 한봉석 부경대 사학과 교수님은 주윤정 교수님의 이 책이 세 가지 측면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첫째, 책에서는 조선의 법에 부재했던 시각장애인에 대한 항목이 일본 민법에서 옮겨왔음을 제시하여 식민지적 근대가 장애인 정책에서도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책은 장애인 내에서도 시각장애인에 초점을 두고, 그들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역사적 배제 속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지켜냈는지 복원해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셋째, 오늘날 한국의 인권 담론이 유엔의 제안이나 국제법에 기초한 것과 달리 시각장애인의 운동은 한국의 개별 맥락 내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운동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이어서 한봉석 교수님이 시각장애인의 고용율 저하 현상, 해방 후 사회복지사업의 부재, 박두성의 ‘훈맹정음’ 등에 대해 논의점을 공유해주시고, 여기에 대해 주윤정 교수님이 답을 하신 뒤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며 포럼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주윤정 교수님은 연구를 하며 가장 놀라웠던 부분이 시각장애인들의 사고가 굉장히 유연하다는 점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시각장애인은 사회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제도나 정책을 빠르게 흡수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불교, 유교, 조합활동, 사단법인을 거쳐 현재는 복지관으로 단체의 형식을 바꿔나가고 있으며, 지속적인 투표권의 요구로 1992년에는 점자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공동체를 통해 서로를 도우며 스스로 생활을 영위하고, 집단의 연대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교수님은 우리가 이들의 서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언급하셨는데요.
약자에게 가혹하고 폭력적일 수 있는 물줄기 속에서 정체성과 생명력을 이어온 집단을 기억하는 것은 사회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요?
이번 기사가 시각장애인들과 더불어 사는 사회에 한 걸음 가까워지기 위해 어떤 인식이 공유되어야 할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글·기획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기자단 9기 이예진
참고문헌 |
-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sub03/board02_list.html?bid=b33&ptype=view&idx=7668, 2022.07.31
- 주윤정, 「‘맹인‘ 점복업 조합을 통해 본 소수자의 경제활동」, 한국사연구, 한국사연구회, 2014.03
사진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