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 던져진 칼
내 서재의 구조를 정리하던 글이 잠시 오프라인의 삶으로 미뤄지고 있었다. 문득 쌓여있는 책더미를 보니 의식의 흐름대로 꼭 순서를 지킬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전체적으로 이어질테니 정리할 수 있는 목록부터라도 정리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먼저 눈에 띄는 책 더미부터 그냥 순차적으로 정리를 계속해보려한다.
나는 기독교 신자로서 날 때부터 지내왔다. 물론 신심의 강도는 성장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따라서 오르기도 떨어지기도 했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금은 신심의 궤도에서 어쩌면 벗어나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는 17-19세기의 근세 동아시아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내 개인적인 신앙 혹은 신심과는 무관하게 핵심 요소 중의 하나이다.
동아시아에 처음 기독교가 전래되고 소멸된 과정은 몇가지 책을 통해 배웠다.
1.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김호동, 까치, 2002, 초판 2쇄
'호동칸'이라 불리는 김호동의 네스토리우스파 경교 교회의 동방전래에 대한 책이다. 실제로 스스로 '앗시리안' 후예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을 인생에 두번, 한번은 모스크바, 다른 한번은 뉴욕에서 만난 적 있다. 어안이 벙벙해져 그러니까 역사책의 그 앗시리안이냐고 되물었었다. 이들이 바로 시리악 교회라고 하는 동방교회의 정통 후예들이다. 이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이 책에서 배웠다.
2. Voyager From Zanadu - Rabban Sauma and the First Journey from China to the West, Morris Rossabi, Univ. of Californaia press, 2010 paperback version. (original print in 1992)
이 책은 13세기 몽골 조정에서 파견한 위구르계 네스토리우스파 수도승인 라반 사우마가 몽골의 칸발릭 (지금의 베이징)에서 로마 교황청까지 다녀간 기록을 연구 정리한 책이다. 역시 동방교회에 대한 좋은 책이다.
3. Jews in Old China, Sidney Shapiro, Hippocrene Books, 1984, hard cover version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송대 중국으로 이주하여 주로 후난성 카이펑부에 자리를 잡고 내려온 유대인 커뮤니티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서이다. 이들의 '발견'은 이제부터 이어지는 17세기 카톨릭, 그중 특히 예수회의 중국 선교와 맞물려있다.
여기까지는 근세 이전의 기독교의 동아시아 전래에 대한 책들이고, 이제부터 대항해시대에 동승한 카톨릭의 동아시아 선교에 대한 책들이다.
4. The Memory Palace of Matteo Ricchi, Jonathan D. Spence, Penguin books, 1985, paperback version, Original print in 1984
16세기 후반 처음으로 중국에 발을 들이고 명나라 조정에까지 진출한 마테오 리치에 대한 설명이 필요없는 기념비적인 책이다. 한국어로는 1999년 '이산의 책'에서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이라는 제목을 출간하였다고 한다.
5. A Jesuit in the Forbidden City, R.Po-Chia Hsia, Oxford univ. Press, 2012, paperback ver. (original print in 2010)
마테오 리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로는 메모리 팰리스 이후 이 책이 아직 탑이라고 알고 있다. 마테오 리치가 명나라 수도 베이징에 자리를 잡은 지 4년이 지난 1605년 후난성 카이펑부에서 온 어느 유생이 그를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생은 자신을 이스라엘족이라고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위에 소개한 책에 보다 더 자세하게 전개되고, 이 조우는 실은 유럽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마는, 그건 다른 기회로 미루려한다.
한편 마테오 리치를 중국에 파견한 예수회의 선임자 프란시스코 자비에르는 일본에 도달하고 그리하여 일본에도 예수회가 기독교 선교를 활발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일본에서의 기독교는 포르투갈어 'Christao'을 음사한 '기리시탄'으로 불리며 한때 신학교를 세워 사제를 배출하는 기세를 떨쳤으나 도쿠가와 바쿠후 이후에 모두 절멸의 상태로 탄압을 받고, 소멸된다.
6. Deus Destroyed - The image of Christianity in Early Modern Japan, George Elison, Harvard Univ. Press, 1973, hard cover ver.
영미권의 이 예수회의 일본 선교에 대한 초창기 대표적 연구서이다. 이 책에는 특히 중요한 것이 원래 일본인으로서 예수회 수도사로 활약하다 배교하고 탄압에 협력한 파비안 푸칸 Fabian Fucan, 혹은 후칸사이 不干斎 가 쓴 '破提宇子' 파'데우스 提宇子'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 실려있다. 데우스는 Deus를 음사한 표기이다. 마테오 리치의 지휘 아래 중국의 예수회에서는 '天帝'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중국의 유교 전통과 절충을 시도하였으나, 일본에서는 Deus를 그대로 음사하여 전교를 하는 방침을 세워 중국과 일본의 예수회 간에도 갈등이 있었다 한다.
7. A Vision Betrayed - The Jesuits in Japan and China, 1542-1742, Andrew C. Ross, Orbis books, 1994, hard cover ver.
이 책은 예수회의 중국과 일본의 선교에 대한 과정을 그 중심 인물을 통해 어떻게 다르게 진행이 되었던가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담고있다. 자비에르와 마테오 리치 사이에 실제 두 지역에 대해 상당한 영향을 미친 알레산드로 발리냐노 Alessandro Valignano에 조명을 비추고 있다.
8. The Beginning of Heaven and Earth - The sacred book of Japan's hidden Christians, translated by Christal Whelan, Univ. og Hawai'i press, 1996, paperback ver.
결국 일본에서 기독교인들은 추방, 사형, 배교 등의 과정을 거치며 소멸되었지만 규슈를 중심으로 신앙을 속이고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온 '가쿠레 키리시탄' 隠れキリシタン이 있었다. 이들이 경전처럼 전해내려온 "텐치노 하지마리 고토(天地始之事)" 즉 '천지의 시작에 대한 일'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뭐랄까 원래의 교회와 끊어진 상태로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면서 여러가지 변형이 생기기는 했지만 신앙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책이다.
조선은 중국과 일본의 기독교 전래 과정으로부터 17-18세기에 약간 벗어나있었다. 그러다 19세기에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폭발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9. 조선의 西學史, 대우학술총서-인문사회과학 47, 강재언, 민음사, 1995, 1판2쇄
강재언의 '조선의 서학사'는 이 서학 연구의 마일스톤이다. 북학 北學이 어떻게 西學으로 진행되었는가 하는 기본 흐름을 보면, 근대화의 매개체로서의 서학이라는 입장을 짐작할 수 있다.
10. 교요서론 - 18세기 조선에서 유행한 천주교 교리서, 페르비스트, 노용필 역, 한국사학, 2013, 초판1쇄
베이징 천주교당의 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 Ferdinand Verbiest 신부가 쓴 천주교의 교리서를 번역한 것으로 한문본과 한글언문본의 영인본이 번역의 뒤에 실려있다.
11. 파란 1, 2 - 정민의 다산 독본, 정민, 천녕의 상상, 2019, 전자책
이 책은 원래 다산 정약용에 대한 연구서인데, 흐름이 19세기 전반기 한양의 지성인들 사이의 천주교의 영향으로 이어지게 된다.
12.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정민, 김영사, 2022, 1판1쇄
결국 파란에서 마주친 주제는 19세기 전반 조선의 천주교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고 '파란'이 한양의 지식인들 사이의 영향을 다뤘다면 이 책은 그뿐 아니라 평민, 혹은 더 하층의 신앙이 그야말로 '불길처럼' 일어난 현상들에 대해 900페이지에 해당하는 벽돌책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몇가지 관련된 책들:
13. 16세기 서구인이 본 꼬라이, 박철,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1, 수정판
이 책은 임진왜란에 종군하였던 일본에 주재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록, 서한에 나온 조선에 관련된 내용을 종합 정리한 것이다.
14. 대항해 시대의 일본인 노예, 루시오 데 소우사·오카 미호코, 신주현 역, 산지니, 2021, 초판1쇄
이 책은 16세기 기록에서 일본인 노예들에 대한 책이지만 상당수의 기록이 예수회의 기록이다.
15. 江戶のキリシタン屋敷、谷 真介、女子パウロ会、2015, 전자책
18세기에 에도에 만들어져서 적발된 기독교 선교사나 신자를 구금하던 기구인 기리시탄 야시키에 대한 책이다.
16. ロマへいった少年使節、谷 真介、女子パウロ会、2016, 전자책
1582년 일본의 알레산드로 발리냐노가 로마로 파유한 '텐쇼 소년 사절단' 天正の使節의 이야기들이다. 나가사키에 세워진 신학교에서 선발한 4명은 로마에서 교황을 접견하고 귀국한 후 사제가 되었고, 먼저 사망한 한명 이후에 탄압이 시작되자 한명은 순교, 한명은 추방, 다른 한명은 배교를 한다.
그외 관련된 내용들은 다른 주제로 묶어서 다시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