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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륜재 Jul 21. 2022

6. 코리언 아메리칸의 목소리

코리안 디아스포라

앞의 5. 20세기 전반 우울한 반도의 카나리아들 (brunch.co.kr)에서 20세기 전반 한반도의 작가들 중에 내가 조금 관심갖고 읽고 모은 책들을 소개한데 이어서 이번에는 비슷한 시기 그리고 그 이후 오늘까지 한반도의 경계 바깥에서 '한국계'의 사람들이 쓰거나 그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책들을 책장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미국에 온 지 아직 얼마 되지않은 20세기의 끝자락에 우연히 정말 처음 들어보는 '코리언 롸이터'의 이름을 접하게 되었다. 'Younghill Kang'? 영힐 강? 누구?

*East goes West - the making of an oriental yankee, Younghill Kang, Kaya production, 1997

그때 살던 아파트에서 한 블럭 떨어진 곳에 '보더스'라는 당시 반즈앤노블스에 버금가는 대형 체인 서점이 있었다. 저녁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 어린이책 코너에서 시간을 주로 보냈는데 한쪽 코너에 아시안 스터디 섹션에서 이 책을 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원래 이 소설은 1937년 Charles Scribners & sons 에서 출판되었다. 소설의 내용은 시기적으로 1910년대에서 1920년대의 뉴욕, 뉴잉글랜드가 배경으로 조선 소년 한청파Chungpa Han가 미국에 와서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연애담을 포함하여) 미국인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흥미롭게도 여기에는 동시대 반도의 우울함이 전혀 없다. 그리고,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야 'Younghill Kang'이 '강용흘'1이라는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Kaya에서 나온 판본은 절판이 되었지만 2019년 Penguin classic에서 다시 재출간되었다. 한국어 번역본은 2021년 범우출판사에서 '동양선비 서양에 가시다'라는 제목으로 2000년에 출판하였던 구판의 개정판을 냈다고 한다. 이 책 속에 주인공 나레이터 한청파의 친구로 대한제국 주미대사관에 근무하다 나라를 잃으면서 오리알이 된 George Jum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야말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발랄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씬스틸러다.   

*강용흘- 그의 삶과 문학, 김욱동,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초판 2쇄

그리고 강용흘에 대해 좀더 찾아보고 있던 중 2004년에 나온 그에 대한 (거의 유일한) 평전을 구해서 읽게되었다.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늘 '재미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한국 문학의 서자취급을 당했으며, 그보다는 더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었다. 그렇긴 한데 김사량이 일본어로 글을 쓴 것처럼 강용흘/영힐 강은 영어로 작품을 썼으니 국문학사에 위치를 넣기는 좀 애매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실제 그의 글을 읽어보면 20세기 전반기 한반도의 작가들의 특징적인 스타일이 아니라 동시대 영미 작가들의 문체에 속한다.  

*The American 1930s - A Literary History, Peter Con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2nd print

이 책은 제목 그대로 1930년대 미국 문학사인데, 여기 두 페이지 반에 걸쳐 '영힐 강'의 소설 'Grass root'(한국 번역 제목 '초당')과 'East goes West'에 대한 설명이 할애되어있으며, 미국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outsider report'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영힐 강'의 작품은 영문학사에 이미 통합되어있다고 할까.

영힐 강과 같이 미국에서 영어로 자서전적 글을 쓴 코리언 작가들은 이미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East goes West에 추천사를 쓴 Chang-rae Lee(창래 리)가 아마 현대에 들어와서 전국적 규모로 명성을 얻은 첫번째 코리언 작가가 아닌가 싶다. 2004-5년 무렵 어느해 프린스턴 대학에 재직 중이던 창래 리씨를 프린스턴 정션 역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서명이라도 받았어야 했었나 하고 생각하는 것은 좀 바보스럽다.  

*A Gesture Life, Chang-rae Lee, Riverhead, 2000, paperback edition

첫번째 장편소설 Native speaker(Berkley Books, 1995)로 전국적 명성을 얻은 후 후속작이었다. '척하는 삶'(알에이치코리아, 2014)로 한국어 번역이 나왔다고 들었다. 한국어 제목을 듣고 재미있는 번역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영힐 강의 스피디하고 화려한 문체에 비하면 70년이 지난 코리언 아메리칸의 스타일은 훨씬 무거워졌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Native speaker 보다 좀더 미국문학스러워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세기 전반의 코리언들 작품이 영힐 강 혼자의 기록만 남고 70년의 세월을 건너뛰는 동안 아무도 글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물론 그 책들은 소설이라기에는 우선은 자서전에 가까운 글이 대부분이기는 하고 출판은 20세기가 거의 끝나고서야 이루어진 경우도 많기는 하다만.

*The Golden Mountain - the autobiography of a Korean Immigrant 1895-1960, Easurk Emsen Charr, edited by Wayne Patterson,  University of Illiois Press, 1996, 2nd editon

원래 '이석 엠슨 차'의 자서전은 1961년에 소규모 사설 출판사에서 수백부 단위로 출판된 것이다. 1990년대 들어서 아시안 스터디의 일환으로 이런 자서전류가 일부 다시 재출판이 되었다. 차는 전형적인 초기 미국 이민자의 길을 걷는데2, 흥미롭게도 그의 글 문체는 1920년대 피츠제럴드같은 작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는 것이 보였다.

*Quiet Odyssey - a pioneer Korean woman in America, Mary Paik Lee, edited by Sucheng Chan,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02, 7th print

'조용한 오딧세이' 역시 이런 이민자 자서전 문학에 속할 것 같은데, 이 주인공 '메리 파익 리'는 1905년 한국에서 태어나서 5세의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하와이 이민을 온 사람이다. 골든마운틴과는 달리 직접 쓴 글이라기보다는 편집자가 같이 쓴 글이라고 해야한다. 20세기 전반 하와이와 웨스트코스트의 한인 사회에 대한 흥미로운 여성의 시각이 담겨있다.

*Still Lige with Rice, Helie Lee, Touchstone Book, 1996, 1st editon

이 책은 한인 3세 '헬리 리'가 할머니의 생애를 소설로 기록한 책이다. 조선에서 바로 미국으로 건너온 위의 다른 두 책과 달리 만주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다.

*Willow tree shade: The Susan Ahn Cuddy story, John Cha, Korean American Heritage Foundation, 2002, 1st editon

한국에서 '버드나무 그늘아래'(존차, 문학세계사, 2012)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서 나온 이 책은 초기 이민사에 대단히 중요한 자서전이다. 주인공 수산 안 커디는 도산 안창호의 딸로 어린 시절 한인사회와 흥사단의 독립운동을 가정사로 체험하였고 2차 대전에는 소수민족 여성으로 드물게 해군 정보장교로 복무한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셀링포인트가 도산의 딸이었지만 실제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수산 안 커디'라는 거인의 일생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영웅 김영옥, 한우성, 북스토리, 2006, 1판2쇄

수산 안 커디와 함께 같이 읽어야할 코리언 아메리칸 전기라면 단연 김영옥의 전기인 것 같다. 이 책은 한국어본이 먼저 나왔고 영어본 'Unsung Hero: The Story of Colonel Young Oak Kim', Woosung Han, The Young Oak Kim Center for Korean American Studies at UC Riverside, 2011)은 이후에 나왔는데 나는 어쩌다 한국어본만 가지고 있다.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 안형주, 지식산업사, 2007, 초판1쇄

김영옥은 캘리포니아의 한인 커뮤니티의 반일 자강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고 컸다. 그 분위기는 초창기 이민 커뮤니티의 상무적 경향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대한제국군 출신의 박용만은 미국에서 한인들 유학생과 이민자들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려 시도를 했었고 초기 한인 커뮤니티에 도산 안창호, 이승만만큼이나 중요한 구심점이었는데, 이 책은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다.

*The Koreans in Hawai'i - A Pictorial History 1903-2003, Robert Chang, Wayne Patterson, Univeristy of Hawai'i Press, 2003

2003년 한인 미국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사진자료집이다. 1903년 하와이 계약이민자들의 사진과 사진 신부들의 모습, 가족들, 가족들. 그리고 이 커뮤니티가 미국에 자리를 잡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사진으로 보여진다.

*Pachinko, Minjin Lee, Grand Central Publishing, 2017, Paperback edition

영힐 강에서 거의 100년이 지나니 이제 코리언 아메리칸 작가들 중에서 초대형 성공을 거둔 파친코가 나왔다. 파친코는 이제 TV 드라마로도 큰 히트를 쳤고 최근의 타오르는 K-붐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뉴욕 출신의 민진 리 작가의 연설이나 얘기는 여러번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뉴욕필름 페스티벌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상영을 마치고 감독과의 대화에 인터뷰어로 등장하여 흥미로운 얘기를 나누는 것을 직접 들은 적도 있다.

*The Interpreter, Suki Kim, Picador, 2004

창래 리의 작품들이 눈길을 끌면서 코리언 아메리칸 작가들이 주류 출판 시장에 등장을 하기 시작했다. 수키 킴의 인터프리터는 '통역사'(이은선역, 황금가지, 2005)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이 이뤄졌다.

*My Korean Deli: Risking it All for a Convenience Store, Ben Howe, Henry Holt and Co., 2011

이 책은 코리언 아메리칸 작가의 글은 아니다. 하지만 코리언 아메리칸과 결혼한 후 그 커뮤니티에 끼이게 되면서 일어난 일들을 소설화한 글이라서 1930년대 영힐 강이 아웃사이더 출신으로 미국 사회를 들여다보았다면, 100년이 지나 자리잡은 코리언 커뮤니티를 백인 미국인이 들여다보고 써낸 리포트라고 할까. '마이 코리안 델리 -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 (정은문고, 2011)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이 되었다고 한다. 상당수 미국 문단에 눈길을 끈 코리언 아메리칸 작가들의 작품들은 1-2년 이내에 한국시장에 번역본이 나온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한국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지는 잘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런 책들은 특히 코리언 커뮤니티를 소재로 잡는다고 해도 결국 현대 한국인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땅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은 물론 아니지만 20세기 전반의 작품들은 동시대 한반도의 우울함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희망과 활발함이 느껴지고 있다. 그런데, 반대로 80년대 이후의 미국 삶을 다루는 경우에는 뭔가 모를 깊은 상처가 느껴진다. 이들 책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처음 언급했듯이 국문학의 서자가 아니라 영문학의 독자적인 한 장르라고 해야하지 않은가. 이 작가들과 주인공들이 엄밀히 코리언이지만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 역시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 이 장르는 게다가 대부분 '가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경향이 상당히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수산 안 커디의 책은 조금 더 다른 시각을 제시해준다. 한편 제국 일본 치하 식민지의 경험을 소재로 삼는 것 역시 하나의 경향인데, 오히려 가장 초기의 영힐 강이 쓴 글은 보다 동시대 미국 사회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 하다. 최근에는 이 외에도 현대 한국사회를 반영한 코리언 아메리칸 작가들의 작품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영문학의 한부분이라면, 마이너리티 문학으로 영힐 강이나 창래 리, 민진 리 정도의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가는 이 장르의 또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꽤 어려운 문제들이다, 정말로.  

처음에 이번 글에 미국 외 다른 곳의 책들도 소개하려고 했은데, 너무 길어져버려 여기서 일단 마치겠다.


- 커버 사진은 The Koreans In Hawai'i에 실려있는 1915년 무렵의 민찬호 목사와 홍치범 목사 집안의 가족 사진이다.

- 이름은 모두 미국식으로 이름과 성의 순서로 표기하였다.

1. 강용흘, Younghill Kang (1903 - 1972)은 함경남도 홍원 출신으로 한학과 기독교 미션 스쿨에서 교육을 받고 1921년 항일운동으로 조선을 떠나 미국으로 거너왔다. 1925년 보스턴 유니버시티에서 학부를 마치고 1927년 하바드대학에서 영어 교육 전공으로 교육학 석사를 취득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아시아 부분 편집을 맡기도 하고 뉴욕대학교에서 영문학 강사를 하기도 했으며, 동료 토마스 울프의 추천으로 1931년 Grass roof, 1937년 East goes West를 출판하면서 명문을 얻었다.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아 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이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큐레이터, 미국 정부의 아시아 관련 부서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해방 후 미 군정청의 출판부장으로 한국에 체류하면서 군정청의 정보관계 임무를 맡기도 하면서 당시의 대학교, 문화, 정치계에 관여를 하다 1948년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the father of Korean American literature"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9년 재출간된 Penguin classic 버전

2. 이석 엠슨 차의 경우 1차 대전에 도우보이(dough boy)라고 불린 미국 육군 보병으로 입대하여 위생병으로 근무했다. 유럽 전선에 차출되기를 기다리던 그가 배속된 곳은 워싱턴 인근의 급하게 신축한 대형 군병원이었고 독일군대신 1918-19년 미국과 전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과 매일 매일 사투를 벌이게 된다. 처음 글을 읽을 당시에는 유럽 전선에 참전한 것도 아니고 딱히 주목할만한 일 없이 마친 1차대전 군 경력이라 좀 아무렇지 않은 에피소드로 넘겼는데, 코로나의 팬더믹을 지나는 동안 문득 생각이 나서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총탄이 퍼붓는 유럽 전선만큼이나 중요한 인류의 최전선 속에 임무를 맡아 분투했구나 하는 새삼스런 존경심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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