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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륜재 Jul 15. 2022

5. 20세기 전반 우울한
반도의 카나리아들

근대 한국인 문학가들의 책들: 모던보이, 카프, 동반자, 러시아

지난번 4. 소설을 거의 읽지는 않습니다만... (brunch.co.kr)에서 소개한 신소설들을 실제 읽으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게되자, 그 전까지 갖고 있던 '음울한 19 세기말'에 대한 인상이 많이 바뀌어서 개항기 혹은 개화기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19 세기말이 우울하다고 느껴온 것은 사실 근대 유럽의 이야기였지, 정작 1880-1910년 사이 우리가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는 막장의 국운과는 별개로, 조선이라는 사회 속의 사람들은 사실 파천황의 변화들을 때로는 두려움에 휩싸여 또 때로는 흥분에 들떠서 굉장히 다이나믹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이후의 조선은 아다시피 너무도 역력히 급속도로 침울해지는게 보인다. 이 시기의 글들을 나는 '우울한 반도의 카나리아들'이라고 내맘대로 명명하고 있다. 뭐 그런거 있지 않은가, 갱도의 카나리아는 산소부족을 먼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기에, 그런 의미로 붙인 이름이랄까. 문학 자체를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시대에 관심이 있어서 20-40 년대의 소설이나 수필같은 작품들은 조금씩 읽고 있다. 아마 지금 소개하는 책꽂이의 책들은 대부분 국어 수업에서 외운 작가들의 대표작들과는 조금 다를 것도 같다. 먼저 식민지기 모더니즘의 셀럽 '이상'부터 시작하자.


*李箱 - 한국현대시문학대계 9, 이상, 정다비 편, 지식산업사, 1982 초판

원래 이 시기 '모뽀'1 하이칼라 작가들에 대한 첫 관심은 대학무렵 이 책을 사고서는 촉발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 이야기는 이상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오감도, 조감도(정말이다, 이상의 연작시중에는 조감도도 있다), 삼차각설계도, 유고집, 그리고 일본어 원문으로 조감도, 이상한 가역반응, 삼차각설계도, 건축무한육면각체가 편자 정다비의 해설과 연보, 연구자료 목록과 함께 실려있다.

*이상선집 李箱選集 - 초판 복간본, 42 미디어콘텐츠, 2016, 초판 복간본, 1쇄

원본은 1949년 백양당 간행 초판 1쇄의 복간본이다. 구성은 김기림의 서, 창작(소설), 시, 수상(수필)로 되어있다. 시는 오감도와 그 외 몇가지가 수록되었다. 시인으로서의 이상을 제대로 읽으려면 이 책보다는 일본어 원문까지 제공되는 '한국현대시문학대계편'이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하다. 게다가 한때 마케팅으로 유행했던 초판 복간본치고는 장정이 소장용이라기에 좀 미흡하다만, 영인본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산촌여정 - 이상 산문선, 태학산문선 305, 이상, 권영민 엮음, 태학사, 2006, 초판1쇄  

이상의 산문선은 위의 이상선집에 실린 6편의 수필 중 3개가 겹치기는 하지만 총 24편의 짧은 글들이 실려있다. 이 3권 정도면 이상에 대해 회자되는 글들은 모두 갖고 있는 것이라 해도 될 정도이다.

워낙 유명한 이상, 박태원, 김소운의  1936년 사진

그 다음 내가 관심을 가진 이는 사진 속 가운데 인물 구보氏 박태원이었다.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조이담|박태원, 바람구두, 2006, 초판1쇄

2000년대 들어 월북작가들의 글이 다시 실명으로 세상에 등장하고 식민지 경성의 모던에 대한 관심이 불러일어켜지면서 이름을 부를 수 없던 '박O원'도 모던보이 박태원으로 다시 살아났다. 심지어 이 책이 나오고 이태 뒤에 개봉한 '라듸오데이즈'(2008)라는 모던 경성 배경의 영화에는 배우 김뢰하가 박태원의 환생같은 라디오 작가 모습을 재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조이담 작가가 박태원 주위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 1부와 유명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해설, 사진, 지도들을 총동원하여 장식한 2부로 구성되어있으며, 나중에 따로 다시 소개할 '모던뽀이, 京城을 거닐다' (신명직, 현실문화연구, 2003, 초판2쇄)로 시작된 나의 모던경성 탐구에서 도시와 건축, 고현학에 대해 방향을 정해준 책이다.  

*천변풍경 - 박태원 작품선, 한국현대문학전집 13, 박태원, 현대문학, 2011, 초판1쇄

박태원의 소품글은 조금씩 읽다가 천변풍경을 제대로 읽은 것은 오히려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였다. 이 책에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도 실려있지만, 그보다 말미에 이광수의 '천변풍경에 서序하여', 박태원 본인의 '내 예술에 대한 항변', '궁항매문기 窮巷賣文記'가 작가연보와 같이 실려있다.

*경성탐정 이상 2- 공중여왕의 면류관, 김재희, 시공사, 2016

이 책은 당연히 당시 책이 아니라 2016년의 소설이다. 그런데 주인공 탐정이 이상이고 그의 사이드킥은 구보 박태원으로 설정이 되어있다. 2016년 즈음에는 모던 경성에 대한 연구들이 상당히 쌓이고 당시 기록물들의 데이터베이스들이 이래저래 공개가 되어 30년대 경성의 여러 사건과 인물들을 ‘영 인디아나 존스 연대기’2 시리즈풍으로 잘 직조해놓은 소설책이다.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비교할 수 있을만큼 추리소설을 읽지않아 뭐라 말할 수 없다.

김소운 지못미 ㅠㅠ

구인회九人會의 멤버였던 박태원은 그런데 정작 이념적, 문예사조적으로 대립하던 입장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그러니까, 카프 KAPF와는 반대의 노선에 있었는데 해방 후에 북으로 가버렸다. 어디선가 듣기로 그는 이태준을 따라 간 거라고도 하던데.

*남행열차 - 이태준 산문선, 태학산문선 302, 이태준, 2006, 초판2쇄

*사상의 월야(외), 범우비평판한국문학9-1, 이태준, 범우사, 2022

이태준의 에세이로 '무서록'無序錄(박문각, 1941)이 알려져있는데 정작 그렇게 열심히 찾아읽지는 않았다. 무서록에 수록된 수필 57편 중 상당수가 '남행열차'와 '사상의 월야(외)'에 실려있다. 그런데 전자책으로 가지고 있는 '사상의 월야(외)'에는 정작 책 제목으로 뽑은 장편소설 '사상의 월야' 思想의 月夜가 1, 2장만 있고 뒷부분이 통편집되어 있다. 젠장, 그럴거면 이건 전자책이라도 사지말걸 했지만, 차일피일 사상의 월야 전체는 후일로 미루고 있다.

박태원, 이태준은 둘 다 웬일로 해방 후에 북으로 가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식민지기에는 정작 카프맹원도 아니었었다. 그런 반면에 정작 카프 멤버들의 글들은 지금 읽으면 조금 묘한 기분이 든다. 좀 엉성하다.

*해조음성화, 한국현대소설총서 24, 김기진, 태영사, 1985

이 책은 박문서관에서 1936년에 나온 해조음 海潮音의 영인본이다. 장정은 만문만화 안석주였다. 같이 장정된 성화聖畵는 1938년 삼문사 간행의 이효석의 책 영인본이다. 묶어낸 태영사의 서지사항은 거의 없다. 김기진의 이 실험적(?) 소설은 당시 카프 내에서 격렬한 비난을 받고 거의 사장되다시피 했다고 한다.3 사실은 상당히 재미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문학성이 좀 떨어지는 다른 카프 소설들 보다 완성도도 높고 공장노동자와 농민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아니라 어민이라는 다른 세계로 확장된 소설이다. 이태준의 '사상의 월야(외)'에 실린 소설 '오몽녀'와 상당히 무대나 상황이 겹쳐서 흥미롭다. 함경도의 정어리잡이 투자붐이 문학에 남긴 영향인가 싶기는 하다. 김기진은 나중에 한국 문단의 원로가 되어서 그런지 카프 시절의 이 소설 또한 다시 재발간된 적이 없는 것 같다.

*김강사와 T교수, 한국현대문학전집 15, 김남천, 유진오 단편집, 현대문학, 2011, 초판1쇄

이 책은 카프의 멤버였던 김남천의 맥麥을 비롯한 단편 9편, 동반자라 불렸던 유진오의 김강사와 T교수를 포함한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김남천의 작품 중 '맥'은 흥미롭게도 '경성의 아파트'가 무대이다. 글을 읽다보면 도쿄에 일부 보존되어 있다던 도준카이 아파트 同潤会アパート4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궁금했는데, 이후 일련의 식민지기 아파트 연구들, 특히 최근의 '경성의 아빠트'(박철수, 권이철, 오오세 루미코, 황세원, 집, 2021)이 나와 이 궁금증은 거진 해소되었다. 이 아파트 얘기는 별도로 다른 책들과 함께 소개하겠다.

유진오는 이 책에 포함된 단편 중에 '상해의 기억'과 '신경'新京5이 하나의 묶음으로 읽어진다. 유진오의 단편 중에 '봄', '여름', '가을'이 있는데, 실은 전혀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별개의 글들이다. 이 책에는 '여름'과 '가을'이 실려있어서 구입하였다. 아, 창랑정기는 그냥 내 개인적인 好이기는 하다.

*나도향유진오 단편선, 베스트셀러한국문학선3, 소담출판사, 2002, 초판1쇄

이 책은 대단히 무성의한 책 표지 디자인와 너무 전형적인 시리즈 제목으로 인해 평가절하되기 딱 쉬운 책이지만,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었던 유진오의 '동반자6'적 성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단편인 '여직공'이 실려있다. '여직공'은 프롤레타리아 여성문학으로 제자리 매김을 해도 좋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 때문에 이 책을 샀지만, '봄'도 여기에 실려있다. 그래도 표지는 너무했다는 생각은 물릴 수가 없다.

내 말이 그렇지 아니합니까!

 유진오의 '나비'는 두 책에 중복되어 실려있는데, 이게 사실 꽤 묘한 소설이다. 실은 늘 의아한 것이 유진오는 제대로 된 작품연보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 연보는 의외로 자세하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상하게 유진오의 작품연보라고 하는 것들은 듬성듬성 빠진 부분들이 이리 저리 보인다. '나비'를 읽다 보면 어쩌면 제대로 된 전체 연보를 원치않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든다. 유진오의 중편소설으로 '수난(受難)의 기록'(1938)7이라는 작품이 있다. 나비는 그 이듬해 1939년 작으로 알려져있는데, 이 소설 둘다 묘하게 주인공이 카페의 여급이다.

*재조일본인 여급소설, 김효순, 강원주 편역, 역락, 2015, 초판 1쇄

일본교양총서3/식민지 일본어 문학.문화 시리즈 36. 이 책은 일본인 작가들이 조선에서 발행되던 일본어 잡지 '조선과만주朝鮮及満洲'와 '조선공론朝鮮公論'에 실은 단편소설들 중 여급소설로 분류되는 것들을 번역 편집한 책이다. 유진오의 '나비'와 '수난의 기록', 혹은 이상의 '환시기', 박태원의 '천변풍경' 중 하나꼬의 이야기 부분들이 대단히 유사한 분위기를 풍긴다. 카페의 여급은 모두 팜므파탈이면서 우울한 지식인들이 의지하는 마돈나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유진오의 이런 일견 염세적인 작품들이 재발행이 되지 않는 것은 역시 헌법의 기초자라는 고고한 선생님의 이미지떄문인가 하고 생각했다. 실제 내가 처음으로 읽은 유진오의 글은 사회원로의 모습이었다.

*젊은 知性人들에게, 유진오, 신암문화사, 1980, 1판1쇄

이 책의 부제는 '이 시대에 던지는 원로 석학의 감동적 충언!!!'이라고 느낌표를 세개나 사용하고 있다. 청소년기에 선친의 서재에 있어서 읽었는데 어인 일인지 여기까지 따라왔다. 내용은 지금 보면 그다지 감동도 교훈도 없지만 표지의 사진이 그냥 아버지 생각을 나게 해서 갖고 있는 책이다.  

 

이 사회의 베이스라고 모두 우러르는 헌법의 아버지 선생님의 모습과 30년대말의 되는 일 하나 없는 염세주의 지식인 모습 그 사이 어딘가 지점에 화상보라는 책이 있다.

*화분화상보기타, 이효석, 유진오, 한국문학전집8, 민중서관, 1973, 10판

이 책은 '화상보華想譜'때문에 오래 수소문하고 기다린 끝에 구할 수 있었던 책이다. 원래 1판은 1959년이다. 화상보는 석주명에 대한 책과 같이 읽으면 의외로 호오!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한국의 르네상스인 석주명, 윤용택, 궁리, 2018

부제는 '나비박사 석주명의 삶과 사상'인데 나비 외에도 다양한 지식인 석주명을 조명하려고 한다. 아무튼 한국문학전집에 화상보와 같이 묶여진 이효석은 유진오와 늘 같이 묶여서 '동반자그룹'으로 읽혀지기는 하는데 사실 결이 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메밀꽃 필 무렵만 옆으로 제쳐두면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며'의 모던보이와 노령근해를 방랑하는 인테리겐차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화분, 한국대표문학선집, 이효석, 홍진출판사, 1975, 1판1쇄

여기는 모던보이 이효석의 한쪽 측면인 화분花粉과 벽공무한碧空無限이 실려있다. 화분은 1972년에 하길종 감독의 영화로도 각색되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는 1939년의 원작이 1972년 영화보다 ‘모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판본 노령근해 1931년 동지사 오리지널 디자인(복원본), 이효석, 소와다리, 2016, 1판1쇄

 이 책은 루바시까를 입은 또다른 이효석의 북방에 대한 로망이랄까 러시아에 대한 작품들이 실려있다. 소장용 복원본이라는 점에서 이상선집과 대조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효석유진오 외, 20세기 한국소설 08, 창비, 2006, 초판5쇄

뭐 어쩔 수 없는 시장관행이라고는 해도 그다지 좋은 셀렉션은 아닌 책이라고 생각한다. 표제의 작가인 이효석의 메밀꽃, 합이빈, 산협, 그리고, 유진오의 김강사와 창랑정기가 실려있다. 여기까진 그냥 평범한 고등학교 국어시간용 한국근대소설선인데, 대신 그 다음에 이무영, 백신애, 박화성, 박영준의 글이 하나씩 실려있다.

*나의 시베리아방랑기, 한국문학 BEST 작가 작품, 백신애, 문학공감대, 2017

백신애의 1939년 국민신보에 실린 글을 전자책으로 발행한 것인데, 창비에 끼어져있던 단편소설 '꺼레이'나 '적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대책없는 발랄함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실제 '꺼레이'의 저본이 이 글 같은데 꺼레이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친다. 내가 읽은 책 중에 여기 비견할 만한 것은 19세기 초반의 여류시인 금원 김씨의 호동서락기 정도뿐인것 같다.

러시아가 근대 문학과 조선 지식인층에 미친 영향은 정말 다대한 것 같다. 이들이 주로 근대 문학을 접하게 된 메이지 일본에서 예를 들어 모리 오가이의 '무희'같은 서구를 무대로 한 책이 당시 현실 세상 저너머 유럽의 한복판을 무대로 하고 있다면, 하얼빈과 해삼위(블라디보스톡)의 러시아는 손에 닿는 구라파였던 것일까. 도쿄 외국어학교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함대훈의 글들은 그런 점에서 좀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러시아문학과 조선문학, 함대훈, 온이퍼브, 2018

함대훈이 1933년에 썼다고 되어있지만 그 외의 서지사항이 너무 부족하여 좀 실망이었다. 함대훈이 러시아문학에 대해 기초반 요약강의처럼 정리한 글이다.

*순정해협, 함대훈, 포르투나, 2020

'조광'지에 1937년 연재되었던 장편소설 순정해협은 화상보와 무정, 그리고, 부활 등등이 막 섞여있는 느낌의 소설이다. 이 원작의 영화가 있었다는데 보고 싶은 영화 중의 하나이다. 정작 소설에는 청요리 접시의 꽃당근처럼 '고오리키의 룸펜窟' 연극 구절이 잠시 등장하는 정도 외에는 러시아문학과 별로 접점이 안보이는 것 같은데, 실은 종결부는 소설 '부활의 내용이 재현'되었다고 평하는 것을 다음 '시베리아의 향수'에서 보았다.  

 *시베리아의 향수, 김진영, 이숲, 2017, 1판1쇄

부제 '근대 한국과 러시아 문학, 1896-1946'의 이 책은 이효석, 백신애, 함대훈 같은 일련의 러시아 로망을 정면으로 연구한 책이다. 근대 러시아 관련 책들을 소개할 때 다시 소개하겠다.

이 시기 외국 문학의 영향이라는 점에서 추리소설은 대단히 흥미로운 장르이다. 추리문학 자체가 장르물로 일종의 순문학의 하위 취급을 당해와서인지 제대로 인정도 연구도 그리고 책으로 나와 있는 것도 별로 없다. 그런데 불쑥 2009년 전후 김내성의 추리소설들이 갑자기 우후죽순 재발간되어 나왔다.

*마인 - 삽화본 특선, 김내성, 정산미디어, 2009, 초판

이 책은 그해 쏟아져 나온 서너 종의 '마인' 중에서 1939년 조선일보 연재 중의 삽화를 개제했다는 것을 특징으로 들고 나온 책이었다. 세계(라고 하지만 실은 구미를 의미하는)를 돌고 온 무용가 '공작부인' 주은몽의 도착으로 시작하는 '마인'은 어찌보면 조선 지식인의 로망이었던 것인지, 유럽에서 격찬받은 성악가 '동양의 꾀꼬리' 김경아의 경성 도착으로 시작하는 '화상보'와 흡사하다.

*연문기담, 김내성 걸작 시리즈 추리편, 김내성, 페이퍼하우스, 2010, 1판1쇄

연문기담은 김내성의 초기 작품인 타원형의 거울이나 연문기담부터 기타 단편들이 엮어져 있다. 책 말미의 해설에 의하면 이들 초기 일본어 추리잡지에 개제되었던 일본어 작품들이 에도가와 란포의 눈길을 끌어 와세다 대학 선배였던 그와 교류하면서 조언과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근대 조선문학들은 일본 근대 문학의 영향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데가 있다. 일본에서 배운 근대, 그 프로토타입 서구에 대한 경외, 그런데 조금은 손에 닿을 듯한 러시아에 대한 로망, 그러나, 조선 혹은 만주를 떠도는 제국의 이등시민의 현실은 시궁창이랄까, 우울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할 지경이다.

*Intimate Empire, Nayoung Aimee Kwon, Duke Univ. Press, 2015

나는 이 책을 이 우울함의 겉과 속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읽었다. 원래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된 책을 정기인, 김진규, 인아영이 다시 전면 수정을 하였다고 할 정도로 번역하여 친밀한제국 -  한국과 일본의 협력과 식민지 근대성, 권나영 작, 정기인, 김진규, 인아영 역, 소명출판, 2020으로 출판되었다. 한국어 번역본은 아직 읽지못했다. 이 책은 이광수가 쓴 '愛か’(사랑인가)라는 재미있는 단편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는데, 이게 내용이 지금 봐도 정말 퀴어하다.

*愛か, 李 光洙, 青空文庫, 2020
원전: '白金學報 제19호, 1909. 디지털본 출전: '外地'の日本語文学選3朝鮮、新宿書房、1996  

아오조라문고青空文庫 Aozora Bunko는 저작권이 만료된 일본어 문학작품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디지털 아카이브이다. 태블릿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앱도 제공이 되고 있는데 마치 예전 문고본같은 디자인으로 작가별, 제목별로 검색하여 근대 문학 작품들을 읽을 수 있어서 종종 이용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게도 지금 얘기하는 이 시기의 조선인 작가들이 일본어로 쓴 글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있다. 위의 Intimate Empire를 읽고 이광수의 일본어 작품을 도대체 어디서 볼 수 있나 하고 찾다보니 아오조라문고에 이미 올라와 있었다. 이상, 이효석, 김사량, 이광수 등이 작가명단에서 찾을 수 있는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광수의 '사랑인가'는 아무리 다르게 해석하려해도 너무 퀴어문학이다. 이효석의 '화분' 역시 아무리 다르게 해석하려 해도 역시 퀴어문학이다. 20세기 전반 반도의 카나리아들은 이루지못할 여러가지 꿈들을 우울하게 내뱉었는데, 그나마도 이후의 '민족' 담론에 덮여져서 들려지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던수필, 방민호 엮음, 향연, 2005, 초판 4쇄

이 책은 '새로 가려 뽑은 현대 한국의 명산문'이라는 부제로 여러 근대 작가들의 수필을 엮어 모은 것이다.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 테마북으로 소개가 되었다고 광고문안이 띠지에 적혀있다. 기획의 의도는 대체로 아오조라문고의 한국문학 버전인데 다른 곳에서 찾아보지 못한 산문들이 꽤 많이 있다. 언젠가 한국어문학도 아오조라문고처럼 누구나 관심갖으면 찾아 읽을 수 있는 아카이브가 있으면 좋겠다.

탐정 이상처럼 이 시기를 끌어서 무대로 사용한 소설들은 더 있는 것으로 안다.

*碑銘을 찾아서 - 京城, 쇼우와 62년, 복거일, 문학과지성사, 1989, 10쇄

식민지 청년의 우울을 80년대까지 대체역사로 끌어 비추어 보인 소설인데, 청년기 왠일인지 마음이 바닥을 칠 무렵 좋아했던 책이다. 오히려 경성탐정 이상처럼 식민지기를 다시 해석해본다는 굳빠이 이상류의 소설은 결국 손이 가지않아 더이상 목록을 늘릴 수 없다. 이미 충분히 이번 글이 길어졌으니 마무리하자. 다음에 이어갈 책 목록은 그런데 해외에서 발견한 한국인들은 어라? 활기가 넘치는데...라고 할까.



* 커버 이미지 사진은 1928년 경성제대 조선인 학생들의 실질적인 학생회였던 문우회文友會 단체 사진.
(사진 출전: 경성제국대학, 이충우, 다락원, 1980) 

1. 모뽀: 모던뽀이의 당시 줄임말이다. 보통 모던뽀이-모던껄의 조합으로 사용된다. 1930년 11월 잡지 별건곤 34호의 '가을거리의 男女風景'이라는 글 중에 "소위 모뽀라는 도련님...新調의 양복, 옷포켓에 느러트린 무새손수건 한쪽으로 기우러질 듯하게 가만히 언즌 최신형 겨울 모자 청천바탕에 붉은 점박힌 넥타이 이만하면 되엇다는 듯키 대로로 橫行闊步하는 꼴"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원래 일본 근대의 モボ・モガ 즉 モダンボーイ, モダンガール를 줄여부르던 표현을 수입한 것이다.

2. 영 인디아나 존스 연대기: Young Indiana Jones Chronicles 인디아나 존스 영화 시리즈의 프리퀄로 주로 1차대전 전후의 어린 인디아나 존스가 어떻게 세계를 다니며 고고학자(?)가 되었는지 수많은 실제 인물들과의 조우와 인연들을 모험에 엮은 TV 시리즈이다. 한국에서도 잠시 방송해줘서 기억하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분명 해줬었는데.

3. 한국근대소설연구, 창비신서 142, 이주형, 창비, 1995에 상당히 흥미있는 설명들이 있다.

4.도준카이 아파트 同潤会アパート:  일본 내무성이 1924년 설립한 동윤회/도준카이 同潤会가 다이쇼 말기부터 쇼와 초기까지 도쿄, 요코하마 등지에 건설한 철근 콘크리트조의 아파트 주택을 총칭하여 부르는 표현이다. 이후 재개발로 모두 사라졌고 1926-27년 지어진 당시의 시부야아파트먼트 일부가 보존운동으로 오모테산도 힐즈 쇼핑몰의 일부로 남았다고 한다.  

5. 신경 新京: 유진오의 春秋, 1942에 실린 소설인데 소설의 무대 신경은 지금의 창춘長春으로 당시 만주국 수도였다.

6. 유진오, 이효석는 '동반자작가'로 분류되었다. 카프에 가담은 하지않았으나 이념과 작품의 성격들이 궤를 같이한다는 의미였다. 동반자의 범위는 사람마다 다른데, 당시 카프가 인정한 동반자들이라고는 유진오, 이효석 두 명뿐이라고도 한다.

7. 유진오의 '수난의 기록'은 전반부는 1938년 잡지 삼천리에 연재가 미완으로 실렸고, 1940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나온 그의 작품집 '봄'에 후반부를 포함한 전체가 실렸다고 한다. 이 전반부가 너무 재미있어 전체 소설을 찾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아직은 마저 읽지 못했다. 그러다 이 '봄'이 정작 여기 하바드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것을 찾았고 언젠가 보스턴에 가면 방문해서 마저 읽어보려고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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