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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낮 Aug 21. 2024

사람인 멘토링

노쇼

바쁜데, 멘토링 요청 알림이 왔다.

거절할까 하다가 길게 쓴 멘티의 메시지를 보고 응하기로 했다.

지방대 출신에 경력 부족인데, 좀 더 수련한 뒤 취직할지 나이가 많더라도 신입으로 지원할지 고민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전의 회사에서도 직장생활을 잘 해낸 편은 아니라고.

수락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매력적으로 고칠 방법은 알려줄 수 있지만, 진로의 결정은 개인의 몫이라고. 신문사와 출판사, 잡지사에 똑같은 이력서를 넣지 말고, 맞는 곳을 골라 방향을 정하라고 했다. 비슷해 보이지만 세 군데에서 경력자에게 요구하는 세부적 능력은 차이가 있다고.

멘토링을 수락한 뒤 공개된 자소서와 이력서를 보니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전체적인 수정이 필요해 보였다. 출판사에 근무했던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비문도 너무 많았다.

그런데 노쇼다.

내가 한 말 중에 거슬리는 게 있었을까.

뭘 하고 싶은지 아는 것, 뭘 해야 할지 정하는 것,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찾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나 역시 늘 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그러나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막연히, 혹시 답을 아느냐고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을까. 심지어 40분 만에 말이다. 혹시 그저 그런 편안한 응원을 바랐던 걸까 하고, 짐작만 해본다.


해줄 말을 준비했는데 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몇 가지만 여기에 적는다.


1. 온라인 멘토링에 이력서를 보낼 때 개인 정보는 지우자.

사진과 전화번호 집주소까지 있는 이력서는, 지원한 회사에는 제출할 수 있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주지 말자. 그래서 사람인 앱으로 통화하는 게 아닌가.

세상 의외로 험하다.


2. 편집자가 출판사에 입사를 지원한다면 최소한 맞춤법 검사기라도 돌리자, 제발.

그리고 출판사는 임원도 편집자 출신이 대부분이다. 흔히 틀리는 걸 봐도 어~ 할 텐데,

창의적으로 틀리게 쓴 문장들은 좀 당황스럽다.


예) 적합히 단문으로 작성하겠습니다.

단어를 적합하게 써야 한다. 자기가 문장이 어딘가 어색하다면 사전에서 '활용' 부분을 참고하자.


적합-하다(適合하다)「형용사」 일이나 조건 따위에 꼭 알맞다

활용:  적합하여[저카파여](적합해[저카패]), 적합하니[저카파니]


3. 자기소개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포트폴리오다.

그래서 예전 출판사는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만으로 지원자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새는 요구하는 게 더 많아졌지만.

한 단락에는 한 주제가 담겨야 하고, 글 전체에는 관통하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첫 단락에 문장력 얘기를 쓰다가 갑자기 "저 사실 사진도 잘 찍어요" 하는 내용을 넣은 뒤,

몇 단락 뒤에 갑자기 사진을 어디에서 배웠는지가 나오면 안 되는 것이다.

심하게는 이력서를 포트폴리오처럼 만들었는데, 목차와 내용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중간에 제목을 바꾸면서 목차 쪽은 수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편집자는 이런 실수를 고치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완성도 낮은 포트폴리오를 보낸다면 좋은 출판사에서(혹시 나쁜? 출판사라면 상관없을 수도.. 있나?)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멘토링 시간은 짧지만 그래도 나는, 대체로 2번과 3번의 내용을 많이 지적해 주는 편이다. 미리 받은 자기소개서에 수정 사항을 체크해 두고, 위치를 옮길 내용과 꼭 고쳐야 할 표현들을 알려준다.

한 지원자에게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각기 다른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다고 알려주자 깜짝 놀란 적도 있다.

편집자에겐 이런 거 보는 게 일.  


4. 내가 쓴 글에 대해 지적받는 게 불편하고 기분 나쁘다면, 편집일은 고통일 것이다.

남의 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쓴 문장도 여러 사람에게 지적받는 게 편집자의 일상이다.  


5. 편집자는 꽤 어려운 글도 읽어야 하니까, 출판사에서 학력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선에서는 학력보다는 실무력이다. 학력 때문에 자신 없어하는 모습은 더 마이너스 요소라고 할 수 있다.


6. 실제로는 해줄 수 없는 말_편집 일은 박봉임에도 많은 역량을 요구하는 편이다. 선반 정리처럼 반복되기도 하고, 정품 검수 과정처럼 지난하기도 하다. 다른 일은 다 재미가 없어서, 그나마 책 관련된 일은 괜찮은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면 진짜 재미있는 일을 더 열심히 찾아보라고 하고 싶다.



+(8/27)

노쇼 건인데도 멘토링 포인트가 지급됐다. 사람인이 보기에도 일방적인 노쇼라 그 사람은 환불을 못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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